작가는 관전중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김태형 image

김태형

…한예화?

너 왜 여주 언니 말고 내 이름을 부르냐, 당황스럽게.

민윤기가 나에게서 떨어지고, 김태형이 조용히 나를 보다 여주 언니를 바라본다.

그리고선 갑자기 눈이 커진다.

김태형 image

김태형

여주야, 여기서 뭐 해?

역시 마법의 여주인공 버프. 아주 놀라운걸?

나는 가만히 어버버하며 말을 꺼내는 여주 언니와 김태형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런데 민윤기가, 응? 그냥 지나간다?

이여주가 눈 앞에 있는데 그냥 지나간다고? 이야, 대단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여주 언니에게 뺨 때린 것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하려고 가던 때였다.

여주 언니의 웃음이 살짝 뒤틀린 듯 보이더니, 민윤기가 다시 돌아와서는 김태형을 살짝 밀어낸다.

민윤기 image

민윤기

왜 자꾸 싫다는 애한테 난리냐.

김태형 image

김태형

넌 왜 자꾸 여주한테 붙어있는데?

이여주 image

이여주

어어, 윤기 가는 거 아니었어…?

민윤기 image

민윤기

널 두고 내가 왜 가. 하여튼 이여주, 너무 착해빠졌어.

오~ 민윤기 태세 변환 우디르~

이여주 image

이여주

앗, 으응.

김남준 image

김남준

어라, 한예화? 여기서 뭐 해.

어, 넘치는 우수함 김남준이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얘네 구경…?

김남준 image

김남준

재밌어?

무우지 무우지 재밌어. 이것은 마치 라잌 막장드라마. …라고 말은 하고 싶지만, 얘네가 막장드라마를 알 리가 없으니.

한예화 image

한예화

글쎄, 조금?

나는 우리가 눈 앞에 있는데도 찰지게 말싸움을 하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당황한 듯 두 손을 기도하는 것처럼 쥐고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던 여주 언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여주 언니는 빠르게 김태형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다음 순간 김태형이 나에게로 날아와 나를 껴안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아니, 시발, 갑자기?!

으아악 살려주세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맛이 읎어요! 진짜! 진짜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구 발버둥을 치는데, 뒤의 철골에 가만히 앉아있는 전정국이 보였다.

나는 이때다 생각하고 전정국에게 빠르게 눈신호를 보냈다. 텔레파시를 쓰려고 노력도 하면서.

미친, 님! 나 좀 도와줘!

전정국 image

전정국

싫은데.

쟤 저 정도면 마음 읽는 데 천재라니까. 화성인 바이러스는 뭐 하나, 전정국 안 데려가고.

나는 온갖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전정국에게 사인을 보냈다.

잠깐 태형이를 바라봤는데, 눈이 청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뭐지? 얘 눈 파란색 아니었어? 높은 데라 빛 때문에 그런가,

무표정해서 아무 반응도 없을 듯한 김태형에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님아 저 한 번만! 진짜 한 번만 도와줘!

전정국 image

전정국

싫다니까.

한예화 image

한예화

너 지금 나 안 도와주면 큰 불운을 당하게 될 것이야!

나는 일단 알고 있는 수학 용어를 아무거나 다 던졌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막 선형 디오판토스 방정식이 시험에 나오고! 순열과 조합! 다항함수의 미분법!

전정국 image

전정국

으.

아싸, 나는 자연스럽게 미러 속으로 쏙 떨어져있었다.

찰방 찰방. 난 지금 미러를 물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치료 안 받는다며.

한예화 image

한예화

아 제발 해 줘 제발. 부탁이야.

난 오늘 박지민이 올 줄은 몰랐지, 진짜로 몰랐지.

어린애처럼 목 치료해달라고 떼 쓰고 있는 차도녀 한예화의 꼴을 상상하니 웃음이 정말 절로 나온다.

근데 뭐 어째, 이대로 기숙사 들어가면 큰일인데.

전정국 image

전정국

박지민?

한예화 image

한예화

그냥 치료 좀 해 줘, 빼애액. 빼애애애액.

온 힘으로 떼를 쓰며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자 전정국이 한숨을 깊게 쉰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아, 그래.

아싸!

물에 대한 생각을 푸는 순간, 미러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악, 내 허리!

전정국 image

전정국

…아우, 진짜.

전정국은 나를 마치 친오빠처럼 귀찮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 왜, 뭐, 어쩌라구요.

내 목이 푸른 빛으로 휘감기고, 눈을 감고 십 분쯤 기다렸을 때에야 치료가 끝났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와, 아싸!

전정국 image

전정국

박지민은 누군데?

한예화 image

한예화

…갑자기…?

전정국한테 박지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서 겨우 짧게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짧아서 문제지만.

한예화 image

한예화

룸메이트.

생각해 보니 그러네. 여기는 남자 여자 기숙사 방 안 가르나? 둘이 같이 써?

상상도 못한 정체다, 진짜.

전정국 image

전정국

…룸메이트한테 보내줄게, 그럼.

또 전정국의 눈이 붉게 빛난다. 익숙한 감각에 눈을 감았다 뜨자마자 기숙사 침대 위다.

그리고 문으로 안 들어가서인지 내가 온 지 모르는 박지민은 이상한 목걸이 하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박지민 image

박지민

…씨발, 씨발.

아, 그냥 목걸이가 아니구나. 다이아의 눈부신 반짝임에 놀라 저렇게 욕을 남발할 리는 없지. 응.

난 조심조심 박지민과 옆에 있는 목걸이를 쳐다보려고 노력했다.

저게 뭐시여, 코스프레 목걸이인가?

내가 목걸이를 더 자세히 보려고 내려가려던 순간, 박지민이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박지민 image

박지민

나 없을 동안 무슨 짓 한 거야, 한예화.

한예화 image

한예화

으어…

…억, 존나 놀랐네!

박지민은 화가 난 건지 운 건지 아니면 화가 나서 우는 건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속으로 나무아미타불까지 외웠다. 이 화난 룸메이트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허허. 미치겠네.

한예화 image

한예화

뭐가.

박지민 image

박지민

니 주변에, 좆같은 남자들이 왜 이렇게 많냐고!

박지민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 귀가 윙윙 울리도록.

…내 주변, 응? 뭐지? 박지민이 이렇게까지 질투의 화신인 설정이었나? 뭐지?

그래, 박지민은 깊은 설정이 없긴 했다. 얘네의 비밀 스토리 같은 거야 난 모르니까. 그렇다고 애가 이렇게 집착적이냐.

박지민 image

박지민

내가… 내가 없으면, 아무나 막 만나고 다녀, 한예화?

한예화 image

한예화

무슨 소리야?

박지민 image

박지민

김태형은 널 왜 끌어안고, 민윤기는 왜 널 함부로 만지고, 전정국은 목을 치료하려고 왜 널 눕히기까지 하는데.

박지민 image

박지민

무섭다고, 씨발. 뺏길까 봐 무섭다고.

박지민 image

박지민

왜 자꾸 사라지려고 해. 내가 싫어? 그래서 막, 막 친해지고, 막, 전처럼…

아니, 내가 너네 사이에 있던 일을 어떻게 아냐고!

드라마에 나오던 악녀들은 무슨 상황이 닥치던 슬기롭고 지혜롭게 해결하던데 난 왜 숨이 턱턱 막히냐.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려고 먼 산을 봤다.

한예화 image

한예화

그런 거 아니야. 박지민.

대체 너네는 무슨 관계냐. 사귀진 않잖아.

박지민 image

박지민

걔한테 니가 왜 친절하게 대해?

아니, 걔 누구?

박지민 image

박지민

걔한테, 왜 니가 생긋생긋 웃어 줘? 왜, 왜 어깨를 토닥여줘?

박지민 image

박지민

그 새끼 꼬리 흔드는 걸 왜 니가 도와줘, 한예화?

박지민 image

박지민

걔, 순한 양 탈 쓰고 나를 죽이려고 했던 애야. 쓰레기라고. 벌써 잊어버렸어? 그 때를?

그 때를 내가 봤어야 기억하고 말고 하지, 지민아…

한예화 image

한예화

…지민아.

박지민 image

박지민

나를 잊어버렸어, 한예화?

한예화, 너 참 힘들게 살았구나. 집착과 질투로 가득한 지민이 받아주느라 수고 많았어.

한예화 image

한예화

돌아온 날부터 이러지 말자, 자꾸 나한테 열 내지 마.

박지민 image

박지민

도망가려고 하지 마. 날아가려고 하지 마.

한국에 있었으면 엄청난 스토커로 길러졌을 인재야.

박지민은 고개를 푹 떨구고 나에게 계속 중얼거리듯 말을 걸었다.

대체 한예화가 얘한테 뭘 해 준 걸까.

박지민 image

박지민

사라지려고 하지 마, 나한텐 네가 필요한 거 알잖아.

정호석을 찾아가야겠다.

걔는 「메모리얼」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 과거의 기억을 보여줄 수 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마냥.

그럼 얘네 사이에 대체 뭐가 있는지 알겠지.

나는 정호석을 메모하려고 펜을 집었다.

그리고 종이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이미 이 층 침대 위로 올라와있는 박지민이 바로 눈 앞에 보였다.

박지민 image

박지민

안아 줘.

한예화 image

한예화

어?

와, 진짜 잘생기긴 했네.

박지민 image

박지민

안아 줘. 죽을 만큼 아파도 괜찮으니까, 내가 여기서 죽을 수 있을 만큼 안아 줘.

박지민은 내가 팔을 뻗기도 전에 내, 아니 한예화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래, 내가 꼭 한예화와 너의 추억을 찾아 와 줄게. 박지민아.

개인적으로는 지민이와 예화가 있을 때, 또 예화와 여주가 있을 때, 마지막으로 예화와 정국이가 있을 때가 제일 쓰기 재밌는 거 같아요.

00이가 알지 못하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독자님들에게 상상하게 하는 것도 좋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