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이천 뷰 특별편) 이여주 Ⅱ


거짓말처럼, 여주와 연서가 별장에 머문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화재가 일어났다.

연서가 촛불을 팔로 쳐서 떨구는 바람에, 집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달려오는 하인들과, 수많은 기사들 사이에서 여주는 목을 놓아 울었다.

아침에 조금 내려가 엄마의 무덤을 보며 혼잣말하고 있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이 퉁퉁 부어 울고 있는 여주에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연서와 가까운 여주가 아니었으면 듣지 못 했을, 아주 작고 힘이 빠진 목소리.


이연서
…살, 려주세요.


어린 이여주
언니? 연서 언니!

여주는 불이 자신에게 튀는 것도 고사하고 불타 떨어진 문을 뛰어넘어갔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이글거리는 불길 사이에서, 다섯 살 짜리 여자아이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져있는 연서를 보자 그 마음은 바뀌었다.


어린 이여주
언니, 빨리 나가자… 빨리….

여주는 힘을 주어 연서를 잡아당겼다, 연서는 비틀거리다가 여주에게 말했다.


이연서
…여주야, 이건 여주 잘못이 아니야. 언니 잘못이야.


이연서
언니가 불을 떨어트린 거야, 언니 실수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어린 이여주
아니야, 언니,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해줘. 제발….

여주가 연서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여주는 별장 밖 마당에 내동댕이쳐졌다.

연서의 능력은 벤데타 텔레포테이션이었다.

죽기 전,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에 단 한 번 쓸 수 있는 기술.


어린 이여주
…언니!

그리고 텔레포트하자마자, 연서는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의식이 흐려져가는 그 때까지 여주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여주가 살아남기를 기도했던 연서.

여주의 기둥과도 같았던 그녀는 더 이상 여주의 곁에 없었다.

그을린 종이왕관을 품에 꼭 안고 쓰러져 죽어버린, 가엾은 연서를 품에 끌어안고 목놓아 우는 여주를 본 한 하녀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녀 하나가 죽었다고 황녀가 울면 안 된다고.

그들에게 능력이 안 좋은 전 황녀는, 시녀 하나보다도 못 한 존재였다.

하녀와 하인들은 여주에게 하녀 하나가 죽든, 하인 열 몇 명이 죽든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주에게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속된 가르침으로써.

첫 번째는 한 새의 죽음.

여주는 눈물을 글썽였지만 펑펑 울어버리진 않았다.

두 번째는 한 여린 적군의 죽음.

여주는 소리 내어 울었지만 대성통곡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나 둘씩, 죄인과 토끼, 그리고 몇몇 사형수들을 죽여들어가면서 여주에게서 감정을 빼앗아갔다.

그렇게 일 년을 살아 일곱 살, 여주는 몹시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다홍색 눈빛에 검은 단발 머리를 가진, 실런의 한 빈민가 아이.


어린 한예화
- 칠 월에, 나랑 생일 똑같네. 여주야!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한 예쁘게 우거진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잃었다기보단, 길이 없었다. 아무리 걸어도 나무들만 보여서,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예쁘게 반짝거리는 연분홍색 드레스는 낙엽이 가득 묻었다.

그 때, 그 울창한 숲이 제 집인 양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았다.


어린 이여주
…넌, 누구니?

그 아이는 저를 돌아보았다. 빨갛게 빛나는, 반짝이는 눈.


어린 한예화
앗, 황녀님이시구나. 제 이름은 한예화에요.


어린 이여주
이여주야.


어린 한예화
황녀님 존함이, 이여주이신가요?

소녀는 귀엽게 격식을 차린 자세로 공손히 인사를 했다.


어린 이여주
편하게 반말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겠어.


어린 한예화
앗, 정말요? 아아니, 정말?


어린 이여주
응.

여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을 내밀어보였다. 악수를 하자는 모양새로.


어린 한예화
일곱 살인 한예화야, 잘 부탁해!

손을 맞잡았다. 황궁에서도 밖에서도 거친 활동을 안 하여 부드러운 손에, 조금 더 크고 거칠거칠한 아이의 손이 닿았다.


어린 한예화
으응, 참. 생일 몇 월 며칠이야?

아이는, 예화는 밝은 미소로 말을 꺼내었다.

별자리 점을 안다며 가르쳐주겠다고 한 말이었다. 별, 별이라.

여주는 연서까지 죽어버린 그 날부터, 별을 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 레일리와 엄마, 연서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말한 자신의 생일에 놀란 표정을 지은 예화가 여주를 바라본다.


어린 한예화
칠 월에, 나랑 생일 똑같네 여주야!


어린 이여주
그래?


어린 한예화
응응. 신기하다.

예화는 별자리 점 외에도 예쁜 차를 만드는 방법, 꽃들을 예쁘게 정리하는 방법 등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여주는 문득 궁금점이 생겼다.


어린 이여주
그런데, 그런 건 누가 다 알려주는 거야? 엄마? 아님, 아빠가?


어린 한예화
으응….

예화가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어린 한예화
우리 엄마는 내가 다섯살 때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 버렸어. 엄마가 나더러 그랬거든, 저주받은 애라고. 악마한테 씌였다고 그랬어.


어린 한예화
내 눈은 태어날 때부터 빨간색이었거든.

저주받은 아이. 문득 여주는 엄마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너도 그렇구나, 너도 저주받은 아이가 되어버렸구나.


어린 한예화
그렇지만 난 엄마가 언젠간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해. 착한 사람이니까.


어린 이여주
…응.

엄마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야, 여주는 뒷말을 꾹 삼켰다.


어린 한예화
아빠는 나를 떠나 있어. 그러니까 잠시 동안만. 내가 다 크면 우리 아빠도 나를 봐주시겠지, 지금은 조금 바쁘시거든. 우리 아빠가.

여주의 아버지, 황제도 바쁜 걸로는 제국의 제일이었다. 여주는 예화에게 웃었다.


어린 이여주
나랑 똑같네.


어린 한예화
응?


어린 이여주
우리 엄마는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어. 아빠는 늘 너무 바쁘셔서 날 봐주실 수가 없어.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아빠도, 너희 아빠도.


어린 이여주
우리가 다 커서 멋지게 되면 돌아올 거야.

여주는 소녀가 특이하게 느껴졌다. 친절하고, 착해서. 자신의 말을 다 이해해주는 것만 같아서. 여태껏 봐온 하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린 이여주
그럼, 누가 알려준 거야?


어린 한예화
벨라.


어린 한예화
내 유모인데, 엄청 착하고 마음씨가 고운 언니야. 늘 나한테 뭐든 알려주고, 같이 놀아주고 재워줘.


어린 한예화
내 집은 정말 좁거든. 그래도 유모는 신경을 쓰지 않는 거 같더라구.

…레일리…, 여주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착한 사람도 없었는데.


어린 이여주
좋겠네.

문득, 여주가 손목의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가 잔뜩 박힌 시계를 바라보았다. 돌아가야만 할 시간이었다.


어린 이여주
가봐야 할 거 같아, 황녀의 축복을 그대에게. 이건 형식적 인사고, 잘 가. 예화야.


어린 한예화
…황녀님.

예화는 우물쭈물거리며 여주를 바라보았다. 여주는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린 한예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여주는 머릿 속으로 되뇌였다. 나는 저주받은 아이이기에, 누군가를 곁에 둔다면.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어린 이여주
…그러길 바래.


어린 한예화
여주야, 잘 가!

마음 속까지 따뜻해지는 인사에 여주는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따뜻하지만 날카로운무언가가 목까지 치고 올라왔다.

안 돼, 이여주. 울면 안 돼. 황녀의 예법 십 일 쪽을 기억하잖아. 이런 곳에서 울면 안 돼

여주는 무뚝뚝한 얼굴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다과를 들었다. 황제와 저녁을 먹고, 예법 수업까지 완벽하게 들었다.

큰 하얀색 침대에 엎어지는 순간,

여주는 울음을 터트렸다.

조용하고 규칙적인, 들이쉬는 숨소리만 들리도록.

여덟, 정식으로 황녀의 자리에 오르는 날이었다.

살짝 우그러진 반지와 그슬렸지만 먼지 한 톨 없는 종이 왕관을 품에 끌어안은 소녀는, 금빛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린 이여주
언니, 연서 언니. 내가 언니의 꿈을 이루었어. 자랑스럽지?

그렇게 생각하며 연서의 두 유품을 내려두고 의자에 앉자,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심부에는.


어린 이여주
…한예화?

그녀가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활짝활짝 웃어주고, 박수를 치는 그녀가.

여전히 비슷한 옷과 외모를 가지고서 제일 앞 쪽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예정되지 못한 신탁은, 여주에게 크나큰 피해를 안겨줄 것만 같았다.

여주의 생일을 가진 사람은 황녀가 될 수 없고 저주받은 아이라는 사실.

황제 뿐만 아니라 하인들과 하녀도 전부 술렁거리기 시작했지만, 황제는 더했다.

그는 덜덜 떨며 화에 받치어 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주는, 그 때, 깨달았다.

예화는 나와 함께 같은 편에 서서 웃고 울 사람이 아니구나.

어쩔 수 없이 깨져서 물고 뜯어야만 하는 관계이구나.

하필 생일이 똑같은 이유가, 나의 구차한 변명을 위해서구나.

여주는 손가락을 들어 예화를 가리켰다. 완벽하리만치 무표정하게.


어린 이여주
쟤가 저주받은 아이 아니에요?

예화가 뛰어나갈 때 그녀의 눈에 담겨있었던 감정은, 증오도 질투도 악도 아닌.

슬픔이었다.

친구가, 존경하는 황녀가 자신을 미끼로 사용했다는 슬픔.

조금은 슬프지만, 갈라서야만 했다. 어차피 이렇게 미리 떨궈놓지 않으면 나중에 죽음이니까.

그 때, 분홍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한 소년이 일어섰다.

마법 영재의, 어린 나이부터 엄청난 고등 마법들을 사용한다는 그 아이였다.

전정국.

잠깐 여주를 바라보던 그는, 잠시 후 바로 예화에게로 사라졌다.


어린 이여주
…뭐지.

그리고 열네살의 하루, 어느 여름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인드 킹을 써 몰래 데려온 지민 뒤에 한예화가 서 있었다.

우린 여기서 빠빠이 해야겠네.

지난 날의 황녀는 네가 잊어야겠네.

여주는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난 연서 언니에게 보답해줘야만 하거든.

난 연서 언니가 못 이룬 꿈을 이뤄줘야만 하거든.

난 레일리와 엄마와 언니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아야만 하거든.


어린 이여주
저주받은 아이의 보호를 받는 앤, 얼마나 불쌍할까?

그 말을 할 때의 여주는 훈련받은 무표정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비웃음을 걸치고 있었다.

연서를 향한 사랑과, 엄마를 향한 사랑, 레일리를 향한 사랑이.

잘못된 환경, 잘못된 교육으로 비틀어져버려서.

여주는 다시 돌아가지 못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여주
…언니.

연서의 하얀 반지가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에 비친다.


이여주
내가 언니가 못 이룬 걸 다 끝내줄게.


이여주
나 인기 많고 잘생긴 애들 다 홀리고 다녀. 다들 나만 보면 정신 못 차려.


이여주
언니, 나 예쁘지?


이여주
언니, 나 잘 크고 있는 거지?

여주가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쓴다. 턱없이 작은 왕관을 쓰고, 태형이나 윤기에게 하듯 환하게 웃는다.


이여주
언니,



이여주
나 저주받지 않은 거지?

여주가 저주를 정말로, 어디 판타지 영화에서 나오듯이 '받은' 건 아니에요.

둘째 황녀가 첫째 황녀가 되면서,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 거죠.

물론 그 전, 둘째 황녀일 때 죽은 사람들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에요.

연서의 죽음은 정말 연서의 실수였고요, 뭐 여주 때문에 조금 겁을 먹었긴 하겠지만요.

엄마의 죽음은 황비라서 받는 질타와 피해의식, 우울감이 극으로 치달아서 된 자살이에요.

레일리의 죽음은 쓸모 없는 둘째 황녀와 황비를 암살하려고 보냈던 독이 잘못된 사람에게 들어간 케이스구요.

여주가 개싸이코라는 사실은 아주 슬프게도 변하지 않지만… (안습)

그냥 이런 비참한 과거사가 있었던 캐릭터다~ 라고만 알아두셨음 좋겠네요.

태형이, 정국이, 지민이, 윤기 과거사도 천천히 진행해야죠.

삼천 사천 오천 육천 뷰 목표로 할까요. 희희.

아참.


홍보… 해주실 분을… 구해용….

그 그냥 아무 데나 작가는 관전중 추천이나 홍보 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갈갈.

협박은 아니구 그냥요…

나름 나중에 독자분들과 옾챗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사람이 많이 안 모여서요

(인무룩.)

아무튼, 작가는 관전중! 이 작가는 연애중! 이 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히 오천 삼백 자 달성했어요. 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