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앞으로 일 주일, 나는 악녀로 성장한다!



한예화
좋아. 할 말이 뭔데?

박지훈은 당당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앗, 꽃사슴한테서 후광이 갑자기. 사람이 교복을 입으니까 존나 멋있네.

지은이는 당당하게 장소를 제공해주고도 영문을 몰라 토끼같이 끔벅거리기만 했다.


박지훈
…너, 간다고 선언한 날이 일 주 남았어.

앗챠, 그걸 내가 얘한테도 말했었나? 안 했나? 아니지 했었나 보다.

그나저나 온 날이 며칠 안 지났는데 벌써 나가겠다고 한 날이 일 주 남았다니, 난 진짜 인생을 스펙타클하게 사는 게 맞나 보다.

내 세계는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예화
나가야 하는구나. 드디어.


박지훈
왜, 여기가 그렇게 맘에 안 들디? 난 너 편하고 좋았는데.


한예화
여기가 맘에 안 든다기보단… 내가 맘에 안 드는 거지.

악녀가 된다는 것은 개고생이 틀림없으니, 나는 내 일만 하고 자연스럽게 스토리라인에서 빠진다.

그게 내가 예정해놨던 일이었으니 난 예정대로 이행할 생각이었다.


한예화
그거 말해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박지훈
더 있어.


이지은
예화 학교 나가게?


박지훈
씁. 조용히 해.

앗, 이쁜 지은이가 치명타를 입었다! 지은이는 시무룩해졌다!


박지훈
전정국,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은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각인까지 했다면서.


박지훈
그리고 김태형… 걔는 지금 교내 쓰레기로 낙인찍혔거든.


한예화
…응? 아니, 김태형이? 아니 내 새끼…!

아차, 여기는 내가 작가가 아니잖아! 뭘 내 새끼야, 내 새끼가. 정신 차리자.

이 세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생각되면서도 가끔씩 헷갈리는 부분이 몇 있었다. 하긴, 한국에서 십육년을 살았는데.

나는 몇 초간 심호흡을 하고 재빨리 말을 바꿨다.


한예화
아니, 김태형 그 개새끼가 쓰레기로 낙인 찍혔다고? 잘 됐네. 근데 그게 왜?

이렇게 말하면 내가 쓰레기같나? 에에이, 아무렴 뭐 어때.

박지훈은 가만히 있다가 째려보듯이 나를 올려다봤다.



박지훈
그게 니 진심이야?


한예화
뭘… 뭐가 진심이야?


박지훈
너, 김태형 좋아하던 거 아니었어?


한예화
아니 뭔! 뭔 소리야! 내가 걔를 왜 좋아해! 경을 칠 일이네, 진짜!

뜬금없이 훅 날아들어온 화살덩어리에 나는 소파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오버액션이었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 놈의 소문이라는 건 왜 이렇게 희한하게 퍼질까? 물론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내가 그 사건들의 중심에 서 보니 발 없는 말이 얼마나 썩을 놈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한예화
나한테 걔는, 그냥 어, 소설 속에 있는 남주인공 같은 거라고. 존나 잘생겼지만 건들 수 없는.


박지훈
그럼 전정국은?


한예화
…존나 잘생긴 두 번째 남주인공?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으려니, 박지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여서 재빨리 수습을 했다.


한예화
그러니까, 저기 왜, 게임에 보면 모든 남자들이 악녀가 나쁜 거 알면서도 걔한테 잘해주잖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거.


박지훈
…게임.


한예화
…연애를 하는 척하는 연극 있잖아.


한예화
아무튼, 거기 나오는 남자들 같은 존재라고 걔네는. 나한테 잘해줘봐야 여주인공은 정해져 있다니까.


한예화
걔네는 여주인공이 머리카락 넘기는 것만 봐도 환장해. 여주인공이 물건 하나 빌려달라고 해도 미친다고.

아, 옛날에 내 친구가 어장술에 빠져든 때가 생각나서 감정이 격해진다.

내가 평소에는 짓지도 않는 진중한 표정으로 (어차피 한예화라 모든 표정이 진중해 보이겠지만) 그런 말을 하니 박지훈이 눈을 내리깔았다.

상당히 심기가 거슬리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난 내 말을 지껄이는 자신감 넘치는 여신님이니 어쩔 수 없지.


한예화
그러니까… 나에게 호감이 있어 봐야 여주인공에게 가지는 호감이랑은 다른 거란 소리야.


박지훈
예를 들면.


한예화
너 길 가다 이쁜 목걸이가 있어. 보고 뭐라 그래. 와, 이쁘다. 그러지?

박지훈이 턱을 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예화
나한테 하는 이쁘다가 그런 의미라고. 그럼 너 좋아하는 사람 보면 뭐라 그래, 이쁘다 그러지? 말은 똑같은데 뜻은 다르다니까.


박지훈
안 해봐서 모르겠네.


한예화
…모솔이야? 불쌍해.

따지고 보면 한예화도 모솔이긴 하지만 (누구의 삼엄한 경비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으니까 보류.

아, 아닌가? 박지훈도 따라다니는 여자애들 많았을라나?


박지훈
그래서, 니 좋다는 남자가 둘이나 붙어도 만족이 안 되디?


한예화
걔네의 좋다는 그 좋다가 아니라니까 글쎄.


박지훈
아, 모르겠다 썅. 야. 그냥 준비해.


한예화
뭘 준비해? 일주일 뒤에 나갈 걸 지금부터 해?


박지훈
잘릴 명분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니 선택이고 니 맘이니까, 도와줄라니까 준비해보자고. 뭐가 필요한데.

허걱, 지훈 갬동쓰.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감동이다, 하며 웅얼거렸다. 살짝 연기도 섞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곧 박지훈이 징그럽다며 욕을 한 다발 쏟아붓는다.


한예화
어라, 귀 빨개졌대요.


박지훈
닥쳐, 개새야.


한예화
넹.

그럼 뭐가 필요하지? 그냥 깽판치고 어차피 내 몸 된 거 한 몸 바쳐 오지게 까이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손끝으로 턱 부분을 더듬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문득 김남준과 정호석의 존재에 대해 여태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마법의 엑스트라 김남준과 엄청난 능력의 조연 정호석이라니. 딱 써먹기 좋… 아니 친구로써 좋군.

나는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의 포즈로 박지훈 앞에서 가슴을 펴고 선언했다.


한예화
내가 나가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오지.


박지훈
자세 뭐세요?


한예화
여기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무나, 마이 꽃사슴. 오케이?

박지훈은 벌떡 일어난 나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물었다.


박지훈
진짜 궁금했던 건데, 꽃사슴이 뭐냐?

아, 맞네. 여기는 인간 빼고 모든 생명체가 다르구나. 헉, 설마 졸귀의 대명사 야옹이님도 안 계신가…?

나는 꽃사슴을 표현할 수 있는 가히 완벽한 말을 찾다가 말했다.


한예화
티브루아 대륙을 한참 벗어나서 도착하는 신대륙에 사는 동물이야.


박지훈
…어떻게 생겼는데?


한예화
눈이 크고, 다리가 네 개에, 자그마하고 갈색인 데다 등 쪽에 하얀 무늬가 있지.

대강 설명은 했지만, 아무래도 박지훈이 뭔가 더 물어볼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말을 인터셉트했다.


한예화
그 하얀 무늬가 꽃 모양이야. 그럼 나는 이만 용사님 찾으러. 빠잉.


한예화
일주일, 일주일이라.


나는 주머니에서 아직도 처음 그대로 아름다운 목걸이를 꺼내서, 옷자락 끝으로 살짝 닦았다.

더러워지지도 않고, 뭔가 물들어있지도 않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한예화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보이려나?

흐음, 흐으음. 철들 사이로 반짝거리는 야광석을 들여다보자…

역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정호석이나 찾자.

걷고, 걸으니 벌써 플러번을 한참 벗어나 레임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도착한 참이었다. 분명 리플럽 기숙사를 지나왔는데도 정호석은 보이질 않았다.

김남준이 레임이었던가? 아무래도, 위 층까지 올라가야 되려나.

그렇게 생각한 찰나에 익숙한 금발 머리 뒤통수가 모퉁이를 도는 모습이 보였다.


한예화
엇, 저거 김석진!

확실히 같은 곳에서 왔지만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이 곳에 살았던 김석진이라면 좋은 방법도 알려줄 것이다.

나는 재빨리 김석진을 뒤쫓아 리플럽 쪽으로 들어갔다.

금발 머리 뒤통수는 옆에 단발 머리 아이도 하나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강다다가 머리를 잘랐나? 확실히, 조지안이 숏컷하는 장면도 원작에서 쓰긴 했지. 갑자기 머리스타일 바꾸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닌데.

라테아르, 는… 김석진이랑 접점이 없고. 아무래도 강다다가 단발을 했나 보다.

바깥까지 따라오니 슬슬 힘들고 쟤네도 멈출 생각을 않아서, 내가 그들을 불러서 멈춰세웠다.


한예화
김석진!

김석진은 고개를 돌리지는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강다다가 있는 건 옥의 티지만, 내 뒤통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오지게 쳐맞았는데 더 깝치겠어?

나는 슬슬 아물기 시작한 뒤통수의 딱지를 만졌다.


한예화
내가, 사실 여태까진 같은 데서 온 사람이라 미안해서 못 말했는데, 나 이제 유토피아 나가.


한예화
니 도움이 진짜 꼭 필요해. 김태형도 날 도와주긴 했는데… 소원 담보로 하니까 좀 불편한 감이 없지가 않아가지구.


한예화
나가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줘. 최대한 빨리!

빠르게 내 요점만 정리해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서 있는 애가 낄낄거리고 웃는다.

뭐, 뭐지? 강다다가 설마 또 나대려는 건가? 하고 한 발 내딛었는데, 아니었다.

그러니까 강다다가 나대려고 하는 게 아니라… 김석진이 아니었다.

완전한 백금발은 아니지만, 노란 머리인 녀석이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라테아르 카프
도망가는 거야? 김태형은 쓰레기 만들어 놓고? 아~ 처음부터 니 목표는 우리 정국이였니?


아메리 카프
존나 이쁜 년이 김태형이랑 꽁냥대는 이여주 밀치고, 벌 받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니. 역시 박지민 때문일까~


아메리 카프
라탈. 얘, 지금 꼬시고 다치니까 도망갈라는 거 맞지?

그게 아닌데! 미쳤나 보다. 전달이 제대로 잘못 됐다.


라테아르 카프
그러게 말이다, 아멜. 이렇게 쓰레기 같은 기집애가 유티 학생이라니 치욕스러워~


아메리 카프
병신같이 도망가면 다 끝날 줄 알고 학교 나가려는구나.


한예화
제대로 모르면 닥쳐. 난 일이 있어서 나가는 거라고!


라테아르 카프
하하. 야, 니가 소문의 근원지를 모르는구나? 이여주랑 김태형 붙어다니는 거 다 내가 찾았는데.


라테아르 카프
정국이 옆에 틈만 나면 나타나서 소꿉친구 행세하고 들러붙는 니 년 맘에 안 들었는데 잘 됐네. 나간다니.


라테아르 카프
그래도 그냥 나가게 보내줄 순 없지~ 유티의 소식망인 우리가 일 좀 해줘야겠다. 그치 아멜?

…좆됐다.

안녕하세요 애기님들 인예입니다~ 만우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사실 인애기 채팅에는 오늘 안 올라온다고 말씀드렸는데ㅋㅋ 만우절이니까요. 히히.

드디어 지안이나 다다, 류컬스같이 직접 공격 악역이 아닌, 뒷담 악역 쌍둥이가 등장했네요!

사실 지안이는 악녀인데도 제 취향에는 굉장히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부터 조연 파티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기본 베이스라고 생각했던 호석이, 남준이, 벨라, 심지어 몇 분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바티안까지 스토리에 참여해요.

앞으로 뒷담과 악녀와 배신과 복수로(?) 가득 찰 즐거운 이야기 작가는 관전중!

좋은 하루 좋은 오늘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