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내 가슴이 너, 널 갖지 못한다면 멈출 거란다


김태형의 눈은 하늘을 그대로 담은 듯이 푸르르게 빛나고 있었다.


한예화
…그, 좀 내려줄래?


김태형
싫은데.


한예화
야, 이대로 이여주 눈에 걸리면 우리 작전 다 파탄나는 거 알지?

나는 몸을 버둥거렸다. 내려달라는 것처럼, 원래 몸이었다면 차라리 무거워서라도 떨궈줬을 텐데 가벼움 그 자체인 한예화의 몸으로 그딴 건 불가능했다.

심장 뛰는 것도 문제고, 곧 전정국이 튀어오를 것만 같은 것도 문제고.

그런데도 이 자식은 나를 개무시하고 그냥 천천히 안고 날고 있었다. 야! 좀 내려 봐!


한예화
그냥 좀 내려 주면 안 되냐,


김태형
…어쩔 수 없지. 니가 그렇게 싫어하면, 뭐.

김태형은 천천히 땅으로 걸어내려가서 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김태형
다음 교시, 천문학이야.


한예화
근데?


김태형
옥상에서 한다고.


한예화
…근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김태형은 씩 웃더니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나도 같이 돌아보자, 미러에서 방금 나온 듯한 전정국이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김태형이 내 손을 잡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한예화
흐이이이익…!

높은 위치에 오니까, 아무래도, 그, 존나 무섭다.

발 한 번 휘저으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엄청난 높이감이 느껴지고 있다. 다리가 막, 자동으로 덜덜 떨리고, 아주 그냥.

흐미 얘네는 왜 이렇게 높은 데랑 관련된 능력이 많아서.


전정국
한예화!

우리 바로 뒤에서 전정국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높아서 죽겠는데, 쟤까지 나를 부르냐.

나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김태형을 올려다보았다.



김태형
꼴에 그걸 쫓아오겠다고.


한예화
야, 야… 나 좀 신경 써 줄래. 좀 내려갈래. 죽을 거 같거든.


김태형
안 되지, 아가씨.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 새끼야 사람이 죽을 거 같다니까요.

내가 내적으로 온갖 비명과 욕을 내지르고 있을 때, 김태형이 나를 전정국 쪽으로 돌려세웠다.


한예화
허읍!

갑자기 몸이 틀어지니까 그나마 잡고 있던 균형이 흐트러져서 바닥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곧, 나를 감싸안은 따뜻한 팔이 느껴졌다.

그리고 전정국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김태형은 지금… 나를 안고 있다.


전정국
놔.


김태형
왜?


전정국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김태형
난 널 이길 수 없지. 천재 마법사님.

순간, 김태형이 살짝 뒤로 몸을 젖혔다. 그 덕에 내 몸도 뒤로 훅 당겨졌다.

꼭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자세를 하고서, 귀에 김태형이 숨을 불어쉬는 소리가 들렸다.

존나 잘생긴 남자애한테 안겨 있으려니 안 그래도 심장 떨리는데, 이렇게 공포스러운 분위기까지 만들어 주면 어떡하세요…!


한예화
으아아아, 김태형…!


김태형
하지만 예화는 널 이길 수 있지.


한예화
흐어아아아아악!

몸이 바닥으로 훅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토피아의 아래, 비아 제국으로 몸이 곤두박질쳤다. 물론 김태형에게 안겨 있는 상태로.

심장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면서, 입에서 괴성이 정신없이 나왔다.

그래, 이건 롤러코스터야. 롤러코스터라고. 아무것도 아닌 롤러코스터야….


…씨발 그럴 리가 없잖아!

비아에 그대로 쳐박히기 전에 다행히 김태형은 멈춰섰다. 내 심장은 오래달리기 직후처럼 뛰고 있었지만, 얘는 고소공포증도 없나 보다.


한예화
씨발 야, 죽을 뻔했잖!


김태형
괜찮아.

김태형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필 나를 안고 있는 자세라 귓속말이 정말 편해 보였다.



김태형
괜찮아, 아가씨.

그 말을 끝으로, 김태형은 또 다시 하늘로 휘익 날아올랐다. 그래 너 고공행진 잘 한다. 하하.


한예화
으아아아아아아악!

이 새끼는 중간이라는 게 없는지 이번에는 아주 높은 하늘까지 올라간다. 이제 뭐 건물이 보일 것도 없다.

여기는 기압도 없나, 이렇게 날뛰는 능력자들 좀 막을 방법이 진짜 없는 건가.


김태형
걸어가자.


한예화
미쳤어?!

그 높은 허공에서, 김태형은 내 손만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듯이 한 발짝 아래로 향했다.

여기서 얌전히 날아서 옥상으로 가도 뒤질 맛이겠구만 뭐? 걸어가? 얘 나 고문시키는 거 맞지?


김태형
잡아 줄 테니까, 손.


김태형
천천히 걸어가자.


한예화
…내가 높은 데를 좀 무서워하거든?


김태형
이번에 극복하면 되겠네.

아니 얘가 진정한 또라이 아닐까?

이 세계 애들이 존나 잘생긴 이유를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마 인성을 커버 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니 저런 조각상같은 면상으로도 인성 감당하기엔 너무 작은 그릇이다.


한예화
미쳤냐니까.


김태형
씁, 아가씨. 욕.

아니 내가 시발 어디 귀족 아가씨냐! 말을 좀 임마 새끼야! 욕을 좀 하면 어때!

내가 잔뜩 삐졌다는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보자 얘는 그저 웃어넘긴다. 아니, 내가 화가 났다니까. 이 사람아. 어떤 미친 놈이 비행기 지나갈 위치에서 걸어다녀.


한예화
여기 있으면 비행기 안 다니냐?


김태형
밴기? 가끔 드래곤이나 봉황을 볼 수 있긴 해.

이야 클라스가 다른데?

나는 속으로 숨을 오조 오억 번 고르고서야, 겨우 한 발짝을 뗐다.

물론 내 악력의 최대로 김태형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떨어뜨리면 시섬 써서 죽여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김태형
……프흐.

이 새끼 이제 이여주 대상 전용 대사를 한예화한테 막 쓰네. 친구 됐다고 이게 아주 그냥, 악녀랑 여주를 동일 선상에 놓고 취급하려고 하냐.

나 니 뺨 쳐야 되는 악녀라고요, 김태형아.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거의 실눈을 뜬 상태로 조심조심 걸어내려갔다.

그 순간.


한예화
아 시발, 야 이 새끼야! 내려와 개! 새끼야, 아!

김태형이 내 손을 놓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어떻게 놓은 거야 시발!

다행히 내 몸은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심정지 올 거 같았다. 내 심장, 아악, 내 심장. 이것들이 아주 나를 죽일라고 들어. 내 심장….

내가 원망 가득한, 하다못해 눈물까지 조금 맺혀 있는 눈으로 김태형을 바라보자 김태형이 천천히 내 앞으로 내려온다.


김태형
눈에 힘 주지 마, 나 아프다.


한예화
씨발, 아, 미친 새끼야. 제발. 좋은 말로 할 때 손 다시 잡아라.


김태형
그 말들이 좋은 말이면 나쁜 말은 대체 어떤 말이야?

김태형은 내 볼을 톡톡 두드렸다. 건드리지 마라. 나 매우 예민하다. 죽여버릴 테다.


김태형
씨발 개새끼, 넌 뒤진다. 뒤지는 수가 있다. 손 당장 안 잡냐 개 좆같은 새끼야, 이 길가다가 벼락 맞을 새끼. 개같은 새끼.


김태형
이런 게 예쁜 말이야?


한예화
아 제발 손 좀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잡아주세요. 아 진짜. 잠시만, 아 진짜 제 잘못이니까 제발 손 한 번만 잡아주세요.

김태형은 내게 손을 뻗다가, 내가 잡으려니까 다시 거둬들였다.


한예화
뒤질래요?


김태형
손 한 번만 잡아줘 태형아, 해 봐.

와 이 새끼가 이제 나를 참된 멍멍이로 교육시키려고…!

정말 나사가 빠져서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꿋꿋이 참고 곱디 고운 목소리로 정확한 발음을 써서 말했다.


한예화
소온 하안 번만 잡아줘어 태형아~.

됐냐 이 시방새야. 길가다가 개껌이나 밟아라. 바람직한 주인 같은 새끼.


김태형
그렇지.

김태형은 내 손을 잡고는 한 발짝 내려갔다. 나도 따라서 한 발짝 내려간다.


김태형
그걸 여우짓이라고 해. 그거, 내일 나한테 해. 알았지?


한예화
…어어?

와, 이거 신박한데. 남주인공이 가르쳐 주는 악녀 강의! 다들 참석하세요!

그렇게 악녀 박사 김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옥상까지 천천히 내려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린 굉장히 일찍 도착했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행히 오늘 하늘은 더럽게 맑고도 화창하게 개어 있어서, 별 보기엔 완벽한 날씨였다.

좀 추운 것만 빼면. 난 그 생각을 하며 후드집업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열심히 뒤적거렸다.


한예화
…어?

뭔가 짚히는데, 흐음. 흐으음.

내 손에 달려나온 것은 전에 김태형이 선물해 줬던 레몬사탕이었다.

이런 미친, 이게 여기 있었어? 난 빨래할 때 같이 들어가서 못 먹는 줄 알았는데.

사실 준 날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나 있었다. 먹어도 되, 려나. 먹어도 되나. 되려나.


한예화
아몰랑.

난 그냥 그 막대 사탕을 바로 입에 물었다.

입에 넣자마자, 땅에서부터 몸이 십 몇 센티미터 떠서 둥둥 뜬다.

곧이어 들어온 학생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을 한다. 아, 박지훈이네.



박지훈
…뭐냐?


한예화
뭐가.


박지훈
너 몸이 막 둥둥 뜨는데?


한예화
아.

난 잠깐 동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예화
친구가 준, 평범한 레몬 사탕.


박지훈
그으으래.

박지훈은 잠깐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내 옆에 다가와 앉아 공책의 중간 즈음에 있는 페이지를 편다.

그곳에는 「초신성 - 방사선을 일으키는 별의 폭발, 에브게니알런 - 졸음. 한예화한테 질문」이라고 작게 적혀 있었다.


박지훈
이 때 내가 잠깐 졸아서 말인데, 단어 뜻 좀.


한예화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라.


박지훈
아, 예.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이라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해 에브게니알런을 설명했다. 당연히 할 수 있지, 내가 만든 단어인데….

잠시 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김지원
얘들아, 오늘은 초희 쌤 개인 사정이 있어서. 선생님이 대리로 별의 폭발에 대해 이어서 수업….

지원 선생님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아, 나 떠 있지. 참.


김지원
…너 그거 뭐니?


한예화
어, 친구가 준, 평범한 레몬 사탕이요?


김지원
그으래?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가는구나.

지원 선생님의 시선이 저 멀리에서 공중에 둥둥 떠 휴식을 취하고, 아니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뻘짓을 하고 있는 김태형에게로 향했다.


한예화
…네에.

곧, 학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르르 몰려서 들어온다.

그 사이에는… 아니, 조지안?!

쟤는 어머~ 체를 쓰고, 여주에게 탓을 돌리려고 자해에 흡흑끅 하고 우는 데에다 모든 여린 B급 악녀의 특징을 다 가지면서, 민윤기와 김태형에게 어장을 치는 척 하는 여우이다.

여우라기보단 그냥,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미개한 여자아이다~ 라고만 알아두면 될 거 같다.

심지어 어장을 치는 척이다. 그 애들은 일도 관심 없다. 한예화나 이여주랑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 않는 이상.

근데 스토리 라인이 꼬였으니까, 조금 틀어질 수도 있긴 있겠구나.


조지안
어머, 태형아! 윤기도 있네에!

와, 저 말투 들으면 들을수록 진짜 꼴보기 싫다. 나 왜 저렇게 썼냐.


민윤기
으응, 지안아.


김태형
…민윤기, 미쳤냐?


조지안
어우, 나한테 안 말해주구 여기 있음 어떡해! 오늘 들어와서 너한테 인사할랬는데~


민윤기
어차피 친군데 뭐. 빨리 만나고 말고가 뭐가 중요하다고.


조지안
에이, 친구 말구 더 나갈 수도 있잖아아~

…아, 그래서 여기선 둘이 친구시다…?

내가 한창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김태형과 민윤기, 그리고 내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조지안이 나를 바라보더니, 나한테 온다…? 한예화랑 부딪힌 적 한 번도 없는 앤데.

게다가 완전 그 표정이다.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져!」 같은 표정. 뭐야?


조지안
니가 그 불여시라는 애니? 우리 불쌍한 남자애들 다 꼬시고 다닌다는?

…이 새끼 뭐지?

이번 화에선 새로운 악녀, 인소의 대표적인 클리셰를 다 가진 악녀인 「조지안」 (통칭 지안이) 까지 등장했어요!

그런데 지안이가, 여주랑 예화를 헷갈리네요. (원래 여주한테 했어야 했을 대사)

그리고 뼈를 갈아 하루에 두 번 업로드하는 인예님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희희, 옾챗 오시면 작가의 스포도 들으실 수 있답니다. 잡담도 하구요. (비밀번호 inye)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독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