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사천 뷰 특별편) 전정국


철썩, 철썩. 파도 치는 소리가 귀에 한가득 울리는 한 가을날.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천재 마법사, 전정국이 태어났다.



태어났다기보단 어딘가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이 아마 맞을 것이다.

그냥 어느 날부터인가, 해변가에서 한 갓난아기가 가만히 물에 떠 이곳 저곳을 부유하고 있던 것을 미르렌 부부가 보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둔 것이지.

그 날부터 정국은 한 성숙한 소녀와 함께 미르렌 부부의 집에서 자라났다. 아니, 거의 자립했다.

태어날 때부터 마력이 가득하여 모든 능력을 자유롭게 부리던 그는, 네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유리 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었다.

예를 들면 물 위를 걷기라던지.

아니면 친구와 함께하는 살아있는 불의 체험이라던지.


어린 전정국
…재미없어.


어린 박지훈
할 줄 아니까 재미라도 없지, 난 불 계열인데 그거 못 해.


어린 전정국
이것도 저것도 다 재미없어.

지훈은 정국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 하는데 왜 난리래. 둘은 매일 아무도 다치지 않는 해변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연습해보곤 했다.

그렇게 좁은 유리 섬에서 칠 년을 살았다.

다행히 외롭지는 않았다, 지훈이 늘 옆에서 마법을 도와 주고 함께 했으니까.

다행히 지훈의 성격이 워낙 무념무상하고 쿨해서 그런지,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느끼진 않았다. 지훈의 눈에 정국은 그냥 좀 세고 귀여운 친구 정도였으니.

다섯 살이 된 한 여름날, 정국이 그렇게 말했다.


어린 전정국
또 무슨 마법이 있을까?


어린 박지훈
순간이동이라는 게 있대. 사람들은 텔레포트라고 불러.


어린 전정국
…아아, 그건 뭐 하는 능력이야?


어린 박지훈
한 번에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래.

정국은 그 마법에 흥미를 가졌다. 근거리 텔레포트를 오래간 연습하여, 장거리까지 가능해졌을 때. 그 때가 정국의 나이로 겨우 일곱이었다.

그리고 하루는, 지훈이 매우 아파 앓아누워 정국이 짧게 치유해주고 떠나갔던 날.

잔뜩 웅크리고 앉은 아이를 발견했다.


어린 전정국
…너, 누구야?

눈이 밝은 선홍색으로 물들어서, 꼭 자를 대고 자른 것만 같은 검은 단발머리를 한 소녀는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누가 보면 예쁘게 그려진 벽화인 줄 알고 지나칠 만한 풍경이었다.

허나 정국의 눈엔 예화의 주위에 붉은 먼지들이 한가득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붉은색, 붉은색이라. 정국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어린 전정국
야.


어린 한예화
…으응?


어린 전정국
누구냐니까.

아이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일어나서는, 길가로 천천히 걸었다. 정국에게 대답을 해 주지도 않고서.

정국은 천천히 땅 위에 둥둥 떠 그녀를 따라 날아갔다. 마치 유영하는 인어처럼, 바다 한 가운데를 헤엄쳐가듯이 중력을 무시하듯이 천천히 공기를 뚫고 날았다.


어린 한예화
…난 엄마를 찾아야 해.


어린 전정국
…….


어린 한예화
나보고 저주받은 애래, 봐. 엄마도 안 계시고 아빠는 나 안 봐줘. 너 나랑 친해지기 싫지?

예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국에 눈 한가득 구슬들을 달고서는 애써 주먹을 쥐고 행군하듯 걸었다.

정국은 예화의 심리 상태를 대충 알 수 있었다. 한창 애정이 필요한 시기, 일곱 살에. 엄마가 없이 버틴다는 건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왜 이 아이에게 붉은 먼지들이 떠도는지 알 수 있었다.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닐까, 정국은 가만히 짐작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정국이 예화를 능력으로 돌려세웠다.


어린 한예화
이게 무슨,

그리고는 눈물을 간단하게 닦아내주었다. 손을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어린 전정국
그런 거 물어본 적 없어.


어린 한예화
…….

예화는 방금 정국이 눈물을 닦아주었음에도 여전히 펑펑 울고 있었다. 입술은 꾹 깨물어 자국까지 남겨두고서는.

얘 진짜 이상해, 정국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손으로 예화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직접, 따뜻한 체온이 아이의 볼에 닿도록.

닦아 주면서 정국이 작게 말했다. 원체 말을 길게 하는 걸 싫어했다, 그는.


어린 전정국
엄마가 있고 없고, 그런 거 아니었어. 이름 물어봤어.


어린 한예화
…왜?


어린 전정국
도와주려면 이름을 알아야 하니까.

아이의 선홍빛 눈이 일순간 반짝였다. 정국은 잠깐 머리를 짚고 비틀했으나, 다시 분홍빛 머리를 쓸어올렸다.


어린 한예화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어린 전정국
너 너무 시끄럽게 힘들어해.

정국은 허공에 떠 다니는 붉은 먼지 하나를 집었다. 한 어린아이의 악에 받친 울음소리가 일순 들리더니, 사라져버렸다.

정국은 무의식적으로 잠깐 눈살을 찌푸렸지만, 예화는 무엇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뜬다. 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리는 들렸을 것이다.


어린 전정국
네 고통이야. 다 들리고 다 보여.


어린 한예화
…….


어린 한예화
- 엄마…?

예화는 입 밖으로 한 마디도 뱉지 않았지만, 정국은 가볍게 예화의 마음을 읽어버렸다.


어린 전정국
뭐라고 해?


어린 한예화
…응?


어린 전정국
너희 엄마가, 뭐라고 해?

예화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지만, 정국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가만히 예화를 바라보았다. 조용하게,

한참 그렇게 있다 결국 예화가 포기하듯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더니 말한다.


어린 한예화
…말했어.


어린 전정국
…….


어린 한예화
엄마가 나한테 나가 죽으라고 말했다고!

예화는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정국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예화의 붉은 눈에 빨려들어갈 것처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나서 외쳤다.


어린 한예화
넌 사기꾼이야! 우리 엄마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야!

정국은 그 말 사이에서 예화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마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 속의 예화는 몸을 웅크리고 흐느끼고 있었다. 예화는 그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어린 한예화
- 나한테 현실을 가르쳐주지 마, 제발 부탁이니까… 꿈을 꿀 수 있게 해줘. 난 아직 어리니까, 그림자 같은 엄마를 의지하게 놔둬 줘.


어린 한예화
- …부탁이야, 나에게 말 걸지 말아줘.

그렇게 할게. 정국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예화는 신경질적이게 눈물을 닦고는 제 집으로 달려가, 벨라의 품에 안기어 왕왕 울었다.


벨라
예화야, 예화야 왜 그래.


어린 한예화
언니이…….

여덟. 대륙의 중심이 되는 실런 제국에서 황녀의 대관식이 있다고 하였다.

갈 생각은 없었지만, 지훈이 같이 가기로 해놓고선 갑자기 가족끼리 루이아의 남단 구경을 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혼자라도 구경하기 위해 유리 섬에서 실런의 중심부까지 텔레포트한 정국이었다.

그는 곧바로 황실로 향했고, 그 자리에서 황녀와 한예화를 만났다.

황녀는 초록빛의 눈, 예화는 붉은빛의 눈인 것이. 꼭 독약과 회복제의 만남 같았다.


전정국
마인드킹에 시섬.

확실히 눈을 마주치고 사용하는 정반대 계열의 마법이긴 한데,

정국이 가만히 앉아 예화를 관찰하고 있을 동안, 몇 년에 걸쳐 내려오지 않았던 신탁이 내렸다. 한 저주받은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 이여주
저주받은 건 쟤 아니에요?

정말 놀랍도록 일그러진 인성이었다. 정국이 이마를 짚으며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 이후 예화는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고, 정국은 일어나서 조용히 여주와 눈을 마주쳤다.

흑색 눈과 밝은 녹색 눈이 예쁘게 마주했다.

다음 순간, 정국은 텔레포트하여 예화의 앞으로 향했다.

예화는 온 몸에 붉은빛 먼지를 휘감은 채 달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정국은 그저 마법을 연습하며 살았다. 장장 구 년 동안씩이나, 아무것도 안 하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만큼 조용히 살았다.

마법 기술만큼 쓸데없이 명석한 두뇌 덕에 공부는 미르렌 부부가 시키는 대로 깔끔히 끝을 냈다. 학교에서 시키는 것도 급우들보다 배로 빨리 마무리했다.

얼굴도 어느새 점점 훈훈해져 갔고, 길거리를 걷던 시녀들의 눈 앞에 정국이 나타나면 그 날은 운이 좋을 거라는 얘기까지 돌 즈음이었다.

그러던 중, 미르렌 부부의 딸이 가르치는 아이가 친구를 따라 비아의 신설 학교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국이 그 사실을 바로 지훈에게 전했다.


박지훈
유토피아?

정국은 그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박지훈
글쎄, 이름 하나는 끝장나게 잘 지었네. 근데 갑자기 거긴 왜?


전정국
벨라 히얼리아네 아가씨가 간대.


박지훈
…뭐, 그 아가씨한테 관심 있어?

정국은 그저 눈빛으로 미쳤냐는 표정을 지었다. 지훈은 그저 머리를 짚었다. 아무 기운이 없는 것 같아도, 정국은 떼를 쓰고 있는 거였다. 같이 가자고.


박지훈
그래, 좋아. 근데 니가 더 배울 게 있냐? 마법진 마스터로 취직하지 왜.


전정국
좀.


박지훈
살면서 전정국이 애마냥 조르는 것도 처음 보네. 그래, 가자. 가. 짐은 니가 리프트해주는 거겠지?


전정국
내가 그리핀이냐?


박지훈
그래서, 거기까지 가는데 캐리어는 내가 알아서 들어라? 안 가, 새끼야.

정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지었다. 결국 그렇게, 소꿉친구의 싸움은 지훈의 승으로 막을 내렸다.

바로 다음 해부터 그들은 유토피아로 편입했다.


전정국
아마도,

정국은 계단을 가만히 걸어올라가다 멈췄다. 태형과 예화가 신이 나서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기에.

그 자리의 예화는 그 누구보다 신이 나 보였다.


전정국
박지민, 민윤기, 김태형.

정국은 가만히 그 자리에서 투명화했다.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멀쩡히 살아서.


한예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까!

슬프게도, 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태형의 마음까지 다 보이고야 말았다.


김태형
- 아, 진짜 귀여워.

거슬린다니까, 정국은 붉은 입술을 세게 물었다. 비릿한 철 맛이 혀에 감돌다가는 침 사이로 사라졌다. 서서히, 서서히….

사천 뷰 끝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육천 뷰로 달려가네요ㅜㅜ 다들 작가는 관전중 열심히 홍보해주시기…!

언젠가 제 작품이 인기가 많아질 때까지, 독자 여러분들에게 열심히 기대야겠네요.


아참, 「인예와 애기님들」 채팅방에서 독자의 애칭을 「애기/아가」로 하는 게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왔어요. (혹은 예기)

예기랑 애기랑 아가랑 뭐가 더 나은 지 골라주시구요, 채팅방 비밀번호는 inye입니다!

작가의 스포와 흥 넘치는 일상, 또 작가와 독자의 친목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니 많이들 놀러오세요! 히히!

앗참, 그리고 제가 뱀파이어 + 늑대인간 판타지물로 또 신작을 낸답니다. 나오면 꼭 봐주시기로, 저랑 약속해요.

독자 여러분들 늘 너무 감사드리고 사랑해요,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