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이 기분은 뭐야 어떡해!

김석진을 빼고도 금발 머리가 유티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전달 과정에서 엄청난 흠이 생겼다.

난 내 입으로 대표 뒷소문 악역들인 카프 쌍둥이에게 개 쩌는 특종을 넘겨준 것이다.

시발, 몸으로 때려맞는 건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있다지만은 내가 떠들어버린 건 답이 없잖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뱀이 되어 스르륵 기어들어가고픈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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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아르 카프

도망치는 거야, 한예화? 이렇게 좋은 학교를 개판으로 만들어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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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아르 카프

이기적이네.

말도 안 돼, 너네 나랑 같은 편이잖아. 차마 입으로 담을 수는 없었지만 모든 스토리 바탕대로라면 너네는 나와 함께 이여주를 때려잡아야 할 운명이라니까.

라테아르와 아메리는 내 표정이 썩어가는 걸 순수히 자기를 욕해서 기분이 더러워진 거라고 생각했는갑다.

그럴 리가 없지. 난 지금 악녀와 악녀가 싸우는 모먼트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난 이런 마음으로 너와의 마법학교를 쓴 게 아니었는데. 하,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작가 슈가프리로써의 태도가 너무 남아있었다.

순간 학교에서 들었던 강의의 한 부분이 기억났다. 내 상태가 궁금하면 나를 주관적으로 바라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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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아르 카프

찔렸구나? 아무 말도 못하는 거 봐. 그래서, 언제 가는데? 우리 소문 때문에 힘들어하는 면상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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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아르 카프

그리고 정국이가 너를 떠나 떠돌아다니다 내게 오는 거. 그건 내 목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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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 카프

참, 걔가 대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따라다니는 건지. 역시 라탈 너도 강한 사람만 선호하네.

그러게. 사기캐의 어느 부분이 좋은 건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만들어놓고도 이해가 안 되는데 넌 어련하겠니?

아메리는 쓸데없이 잘생기게 만들어진 얼굴을 당당하게 쭈욱 펴고 나에게 걸어왔다.

분명히 백 칠십 삼(아메리의 키)이면 꽤 작은 키라고 생각했는데 한예화가 백 육십 팔이라는 키에 구두까지 신고 다니다 보니 키가 비슷하다.

흠, 잘생긴 악역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보는 기분이란 이런 거… 아니, 이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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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나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도망치는 거 아니야. 정해져 있는 운명을 부술 순 없지.

여기도 신이 있나? 우선 종교적인 면을 잠시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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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 카프

뭔 소리야? 그딴 소리 하기엔 면목이 없을 텐데. 옥상에서 떨어지고 나서 뭐 접신이라도 했나? 아님 어디 갔다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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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래, 접신했어.

신인지 뭔지가 나랑 한예화를 바꿔 놨으니까 만났다면 만난 걸지도 모르겠네. 나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메리가 사알짝 웃었다. 눈썹 끝이 픽 흐트러지면서 올라갔다.

김태형 같은 웃음 느낌이 아니라 약간, '뭐야, 이 또라이는.' 같은 느낌인데. 너 왜 그래. 리틀 박지훈이니? 어떻게 웃음을 닮지.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이내 내가 숨어있던 기둥 뒤편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팔을 어정쩡하게 편 강다다가 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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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다

하하. 재밌네! 지랄 발광해대길래 끼워줬더니 효과가 있구나, 카프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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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아르 카프

너야말로, 강다다. 지금은 팔이나 부러진 주제에 아가리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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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다

닥치지, 카프? 그나저나 접신이라니 저런 또라이가 또 있을까! 이걸 학교에 퍼트리면 순식간에 뇌 돌아간 여우년이 되겠지?

어떻게 이걸 이 타이밍에 듣지? 나는 슬슬 뒷걸음을 쳤다. 잘못했다간 또 미러 쪽으로 가게 될 텐데, 혹여 전정국에게 떨어지기라도 할까 겁이 났다.

만약에 떨어지면서 내 몸이 공중에서 싱숭생숭 슥삭 되기라도 하면… 아, 악녀 사망은 안 돼요.

아무튼 강다다가 슬슬 내게로 고개를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인지라, 나는 재빨리 양 팔꿈치를 허리에 갖다대고 주먹을 쥐었다.

여차하면 고냥 토껴버려야지.

내가 발뒤를 들고서 뛰려고 할 때에, 타이밍 맞게 강다다가 내 쪽으로 손을 확 뻗는다. 쟤의 능력이야 물론 한 시간 돌리는 게 땡이지만, 한 시간 돌리면 내가 이여주한테 또 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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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이여주한테 욕을! 또!

아 그건 좀. 무튼 난 그냥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살짝 비틀거렸다가는 떨어질 수도 있는 그 길 위를 마구 달리다 보니, 미러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걔네 싸우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안 오지 않을까! 아직은! 강다다가 오면 정당방위로 눈 마주쳐 죽여버릴 심산으로 나는 미러 속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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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라이프 이즈 노 빠꾸! 흐읍,

푸우욱, 느릿하게 가라앉는 내 몸을 공기물이 받춰주었다.

열정적으로 여기저기를 바라봤는데도 전정국은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이런, 내가 지역 특산물 악역 세트를 받아버릴 줄은 몰랐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간담.

내가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자 강다다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미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팔 할은 전정국의 탓일 게다.

그런데 지금 거의 바로 떨어져도 자연스러울 느낌인데… 전정국을 부르기에는 시간 사이의 텀이 너무 짧다. 암만 그래도 소환 마법인데 좀 힘들지 않을까?

나는 양 손을 꽈악 쥐었다. 나는 여름성경학교를 나왔지, 여기서 신 정도는 나를 구원해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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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아르 카프

야, 내려가자고!

그럴 리가 없지. 껄껄. 나는 코를 쥐어막고 뛰어들 태세를 하고 있는 라테아르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아니야, 얘.

근데 왜 라테아르가 내려오는 걸까? 몸 쓰는 일(비록 강다다도 비커라는 무기를 사용했지만)은 강다다가 만렙으로 보이는데.

게다가 아메리라는 건장한… 은 내가 좀 양심에 찔리네. 아메리라는 연약한 남성도 있는데.

그래, 연약한 사람은 뭐 보호해줘야 하는 법이지, 아니 그렇게 치면 한예화도 보호는 해야 하잖아!

내가 게슈탈트 붕괴(일시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생소하게 느끼게 되는 현상)를 겪고 있는데,

푸우욱,

큰 소리를 내고 미러의 정적을 찢듯이 깨버린 건 라테아르였다. 난 일시적으로 그 분홍분홍한 머리칼을 잡아다가 미러 벽에 던져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지금 선빵 쳐봐야 좋을 거 없으니 조금 대기를 탔다가 치고 들어간다.

그 때, 라테아르도 제 딴에 무기랍시고 무언가를 나한테 들이밀었다. 화려한 디자인에 장난감이었던 줄 알았던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기겁했다.

아, 아니. 얘는 또 칼을! 이거 위험해 임마!

하필 또 예쁜 칼을 가져와버린 라테아르가 투우하듯이 냅다 나한테 달려든다. 나는 부욱, 찢어지는 미러의 물공기 사이로 휙 몸을 움직였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잖어요. 아니 나랑 지금 장난 똥 때리나 진짜.

나는 여기에 있는 게 위험한 것이라고 바로 판단하고 헬륨이 받쳐 주듯이 미러에서 날아가 바닥에 내리찍혔다.

내려다본 라테아르는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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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다

얼마나 버텼다고 벌써 올라와?

아 미친, 진퇴양난 님들아.

다리에 힘이 풀린 채로 눈이 마주친 건 아메리와 강다다였다. 얘네도 학교에서 뭐 게릴라 작전 같은 거 배우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효과적으로 빡돌게 만드는 법 백 가지를 줄줄 외우고 있을 리가 없어.

내가 헛소리를 하다가 뒷걸음질로 도망치려 하니 강다다가 내게 짱돌 하나를 던진다.

여기는 이렇게 해도 처벌은 개뿔 욕도 안 먹나 보다. 강다다가 던진 큰 돌… 아니, 그러니까.

…작은 바위라고 하자. 그게 훨씬 더 잘 와닿는다. 무튼 작은 바위가 어깨 아랫죽지에 직통으로 박혔는데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

비록 돌이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어깨가 욱신거렸다. 그 때, 앞쪽에서 박지훈 같은 사람이 보였다.

그래, 우리는 친, 친구니까! 친구가 모르는 하얀 파뿌리한테 쫓기고 있으면 도와주겠지! 그렇게 돌아간 생각 회로에 도와달라고 요청을 할 심산으로 내가 그를 불렀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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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넌 애들한테 원한을 너무 많이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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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전정국 걘 별 생각 없이 사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김태형이랑 이여주는? 난 뭐고 김남준은 뭐야. 게다가 한예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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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 얘기 꺼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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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우리 얘기에서 걔 빼면 할 말이 있나? 죽이겠다고 달려들 땐 언제고 나간다니까 기분이 더러운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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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작작 하라고. 확 널 대신 잡아버리려던 걸, 어? 아가리 다물고 있어주니 내가 존나 망부석으로 보이는갑지.

얘네는 왜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거 같지? 자주 듣지 못하는 박지훈의 진지한 맞짱 소리에 나는 조용히 숲 가운데 어색하게 놓인 덤불 사이로 들어갔다.

쌈구경이 재밌대지만 난 지금 숨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내 딴엔 그나마 잘 보이는 자리를 택한 거다.

엄청난 은신력, 씨씨티비력, 또 아늑함까지 삼박자를 갖춘 이런 덤불이 또 있을까. 이럴 때 쳐 줘야 하는 멘트가 있지.

일오팔팔 팔이팔이! 지금 바로 주문하시면 유토피아산 덤불을 원 플러스 원에! 단돈 만 구천 팔백원에 이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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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내 손짓 한 번에 뒤질 새끼가 어딜 기어오르고 지랄이야. 내 태도는 내가 알아서 정해, 전정국 따까리.

알았어, 미안해. 집중할게.

다행히 강다다는 민윤기의 목소리에 공포심을 느꼈는지 다시 돌아간 듯 싶었다. 다시 한 번 민윤기의 가오 넘치는 목소리에 감사를.

나는 이들이 싸우는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그러니까, 아침드라마 느낌으로가 아니라 진짜.

그리고 그 주제 사이에 내 이름은 왜 또 껴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분위기는 누가 봐도 박지훈과 민윤기간의 치정 싸움인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감히 날 두고 전정국을 만나? 자기야 그게 아니라… 꺼져!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어! 찰싹. 넌 나한테 원한을 줬어, 헤어져.

음, 완벽. 드라마 각본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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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왜 못 막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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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이여주? 내가 구할랬는데 김태형의 손이 훨씬 먼저 나간 거 뿐이지. 설마 그걸로 날 까려고 데려온 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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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아니. 한예화랑… 전정국.

생각해 보면 그렇다. 분명 전정국이 미러에서 내 목을 졸랐을 때 민윤기는 날 물로 밀어올릴 수 있었는데. 그는 왜 날 못 살린 거지?

그렇다고 지금 따지자면… 상황도 안 좋게 돌아가고 있고, 저번에 착각해서 앞담을 오지게 까버렸으니 참을 수밖에.

아니 잠깐만, 근데 전정국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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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바닥이 깨질 뻔했어. 아마, 전정국이 눈 풀리지만 않았음 한예화, 반은 덜 다쳤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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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꼴에 친구라고 보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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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야, 정신 차려. 너 김태형 그 새끼랑 친하잖냐. 한예화 때문에 유티에서 김태형 이미지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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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개소리하네. 그래서 왜 못 구했는데, 그 박지민 목걸이 덕에 그대로 떨어졌어도 뒤지진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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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지 딴에 존나게 지키고 싶었나 보지, 박지민이. 난 걔 그냥 순수한 도라이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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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거기에 천천히 떨어졌으니… 그동안 니가 손 하나 까닥해서 물침대 함 만들어주면 그만이었겠지. 왜 못 했어?

머리가 띵했다. 그대로 떨어졌어도 안전했을 거라고? 박지민의 그 반짝거리는 목걸이 덕분에? 그거, 그냥 천연 관전렌즈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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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근데 박지민은 왜 김태형한테 그런 마법을 건 건데? 지가 죽이고 싶었던 거 아냐? 한예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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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박지민같이 대가리 잘 돌아가는 애가 목걸이 준 걸 잊고 있었을 린 없고. 너 그 때 전정국한테선 그 일그러짐 못 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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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래. 김태형한테만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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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박지민도 김태형만 봤겠지. 너무 순해서 탈이야, 태형이는. 연적이 나와도 실실 웃고 자빠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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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시발, 걔가 순하다는 소리를 내가 다 들어보네. 이렇게 보면 참… 너도 똑같은 새끼야, 그렇지 않냐, 꼬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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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꼬맹이 같은 소리하네 키도 비슷한 게? 대가리에 불 싸질러서 정화해주기 전에 다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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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나 잊었냐? 물한테 불을 붙여? 니 머리나 정화해 병신아.

…분명히 민윤기랑 박지훈인데, 왜 이렇게 나랑 전정국 느낌이 나는 거지? 흐음. 한참 유치하게 싸우나 싶더니 박지훈이 다시 한 번 자세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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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나 그 때 온실에 있었잖어, 썅, 봉황이 내려오나 했어 봉황이. 뭐 울긋불긋한 게 바닥으로 팍 꽃히는 거야. 뭔가 싶어서 가보니까 전정국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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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정국이는 거부반응이 심해. 뭐가 지 맘에 안 들면 걔답지 않게 적응 못 하고 불안해하지. 그 때는 특히 더 그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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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떨어지기 직전에, 그 멍청이가 손 뻗었을 때, 걘 검은 안개 같은 한예화 그 새끼의 공포를 봤겠지. 몇 년 전에도 똑같이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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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넌 유리 섬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우리가 좋아하는 삶도 이해 못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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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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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멍청한 한예화가 떨어지면서 외친 거지, 도와달라고. 근데 거기에 수신장애가 생겨 버려서, 니넨 절대 듣지 못했을 잡음이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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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전정국은 눈깔이 돌아갔을 거야. 쟤를 잡아야 된다, 안 잡으면 큰일이 난다면서. 그래놓고 한예화를 바닥에 그냥 메다꽂아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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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좆같은, 씨발 너 우리랑 같이 있었지? 지금 판 가지고 노는 셈 치면서 나한테 이 지랄 하는 거지?

같이 없었는데 저렇게 추리가 된다고? 난 보지도 못 했다. 떨어지는 순간 이여주의 그 표정밖에는 안 보였으니까.

하다못해 그런 점까지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어떻게 저걸 저렇게 상세하게 알아낸 거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민윤기의 반응을 보면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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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널 보는 김태형의 눈빛이 어떤지 알아? 너만 못 보지? 널 내려다 봐,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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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그 순한 애가 널 내려다본다? 말 다 한 거 아냐? 정신 좀 차리고 살지. 아무나 만나고 보고 한다고 해서 니 상태 나아지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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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너도… 전정국이랑 김태형이랑 똑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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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뭐가.

박지훈의 목소리가 많이 심드렁하게 들렸다. 여태까지 열심히 몰아붙였으면서 갑자기 귀찮은 듯 나오는 태도가, 참 저 새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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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너도 한예화 그 년한테 반해서 이 지랄 하는 거냐고 묻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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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반해서 지랄하는 거냐고?

애매모호한 대사에 어리벙벙해 있는데, 작은 비웃음이 들렸다. 박지훈의 목소리인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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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지랄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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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내가 반한 사람 미친 지 얼마나 오랜데, 머저리 같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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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니 눈엔 모든 세계가 사랑 하나로 돌아가지? 아우… 집어치워라. 그리고 좋아할라면 좋아할 만한 애를 좋아해, 이여주 같은 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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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왜 멀쩡한 이여주한테 깝치고 난린데. 건드리지 말라고, 이여주는.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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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멀쩡한 이여주? 돌았구나.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이여주보단 네가 더 멀쩡해. 차라리 네 말마따나 한예화한테 반해서 지랄하지 그러냐.

저벅 저벅 저벅, 점점 줄어드는 발소리가 풀잎 새로 울렸다. 박지훈이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내가 스을 일어나려고 하자 박지훈이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민윤기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꼭, '내가 이겼다' 라고 말하는 사촌동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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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나 같았음 이여주랑 사귈 거 같았으면 차라리 김태형이랑 사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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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아, 괜찮은 사람 하나 소개시켜줘? 전정국 어때, 윤기야.

그렇게 말하고 자연스럽게 박지훈은 다시 걸어갔다. 가면서 가끔씩 어깨가 부들거리는데, 안 들어도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끝까지 엿을 맥이고 가네, 그나저나 진짜 김태형이랑 전정국이 한예화를 좋아한다고? 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한예화는 나였다. 쟤들과 만난 한예화 역시 나고.

박지민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쟤네가 반한 건 한예화가 아니라, 나 그 자체란 소리다. 나의 성격과, 한예화의 외모에.

원작에서 다른 애들이 한예화한테 관심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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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쟤네가 반한 건, 한예화가 아니라 나구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거 같았다. 부끄러워 죽을 거 같다. 한참 노래를 부르다가 음이탈이 생겼을 때의 그 심정처럼.

김태형이, 전정국이 나한테 반했구나.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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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씨발.

민윤기는 한참을 고개 떨구고 있다가 문득 욕을 웅얼거리고 숲을 빠져나가 성으로 달렸다.

나도 이젠 유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왠지 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를 않았다. 전정국이랑 김태형을 마주치면 죽을 거 같다.

연애 상담 하던 친구야, 네가 그 때 이런 마음이었니. '그냥 당당하게 들이대!' 라고 외쳐서 미안해. 엉엉….

미친 거 같아, 진짜.

어쨌든 난 유티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기서 밤을 샐 순 없고, 나에게 악녀 계획은 너무나 상세하게 많이도 남아 있으니까.

가서 생각하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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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야.

시발, 내가 아까전에 마주치기 싫다고 했는데. 어떻게 마법같이 삼 층 올라오자마자 이렇게 마주치지?

나는 숨을 고르며 애써 돌려놨던 상체를 김태형에게 다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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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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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어디 갔다 왔어. 이여주는 내가, 하.

왜 또 잘생겨 보이지? 아니 뭐 잘생긴 게 틀린 건 아니지만 이렇게 심한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싶은데용….

김태형은 내가 용기를 내어 쳐다본 걸 모르는지 상체를 나에게로 훅 숙이면서 말을 건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정말 너무 좁아서 숨소리까지 다 울리는 거 같은데, 마침 감각이 예민해져서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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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냥, 잠깐,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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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얼굴 찌푸리지 말고.

아, 내가 니 얼굴을 안 보려고 인상을 찌푸렸니? 그래 내가 눈을 감으려고… 그래 내가 그랬구나….

후, 미친다. 나는 애써 고딕 양식을 사용해서 잘 지어 놓은 창문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고 들이쉬었다.

고딕은 어쩌구 양식 이후에 나와서 벽이 얇고 날렵한 것이 특징이며, 샬라샬라.

그런데도 이 놈의 큼직한 김태형 눈동자는 내 얼굴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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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예쁜 얼굴인데 왜 자꾸 치울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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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아, 내가 예쁘니? 그렇구나. 아니 내가 안 예뻐, 응. 안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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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안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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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어! 안 예뻐! 원래 이쁜 사람은 찌푸려도 예쁜 법이잖아, 난 찌푸리면 안 예쁘고. 아니 그냥 안 예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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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래.

아, 웃으면서 그렇게 물으시면은 제가 부정을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김태형님.

나는 졸지에 격렬하게 고개까지 마구 도리질해가면서 한예화가 예쁘다는 의견을 부정해버린 꼴이 됐다.

너무 심하게 그랬는지 귀가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뭐, 어차피 악년데 어때. 누가 악녀 얼굴에 욕 하는 걸 뭐라 그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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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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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내가 못생겨서 다행이라고? 뭐, 어디가 다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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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너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면 누구 꼬셔 올 수도 있잖아. 누구 자랑하는 거 생각하면 죽을 거 같은데.

미쳤네. 님 어디 학원 다녀요? 어떻게 오늘따라 내 마음을 자꾸 쾅쾅 치실까.

애기님들이 고대하던 순간이죠, 예화가 정국이와 태형이의 감정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태형이를 좋아하는 강다다, 예수비와 정국이를 좋아하는 라테아르가 예화를 더욱 힘들게 하겠죠?

다들 여주보다 다다랑 라탈을 더 많이 욕하시던데… 여러분 우리 만인의 쓰레기는 여주입니다. 지금 방심하고 계셨다가 나중에 통수 맞으면 힘들어욧!

혹시, "그럼 대체 목걸이는 뭔가요! 천공의 섬 라퓨타인가요!"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설명드립니다.

목걸이는 정령석입니다! 예화 하나를 위해 일하는 벨라가 하루에 한 끼만 먹어가며 약하고 순진한 예화의 보호를 위해 돈 벌어다 맞춘 정령석이에요.

벨라는 자주 등장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나마 비중 있고 떡밥 많았던 캐릭터에게 비유하자면 이연서같은 아이겠네요.

그리고 정국파가 되게 많으셔서 지금 진행이라면 태형이랑 엔딩 나는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요.

여러분, 상대는 인예입니다. 언제 어떻게 관계가 틀어질지 몰라요. 낄낄.

오랜만에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이 나왔네요. 8857자! 좋은 하루 좋은 오늘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