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또 다시,
서른아홉. 내가 나일수 있는 이유


석진은 일주일 휴가를 신청했다.

그에게 긴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동안 그는 아무말도 없이 듣기만 했다.



김석진(김비서)
그래서 그냥, 그렇게 아미는 버려진채 있는거네요.


신여주
네......?


김석진(김비서)
실종상태인거잖아요 아미. 왜 안찾아요?


신여주
찾기 위해 일하는거예요. 조금이라도 그녀의 흔적에 가까워지려고.



김석진(김비서)
.......

여주의 말에 석진은 잠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석진이 없는 동안 여주는 많은 걸 버벅댔지만, 노력했다.

상처받은듯한 그에게 보답하는 길은 자신이 아미의 위치에서 그녀의 일들을 잘 처리해놓는거였고. 또 아미가 하려던 일을 이어가는 것 뿐이라 생각했기에.

어쩌면 실제로 아미의 모습을 보고 그녀와 시간을 나눴던 석진이기에 더 충격이었을거다. 어린시절 헤어져 그녀를 찾던 제이홉보다 훨씬 더. 훨씬 더- 그가 아파보였다.


새벽 2시. 제이홉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여주는 침대 헤드에 기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무려 영상통화다.


신여주
제이홉씨.


제이홉
네.


신여주
내가 누구예요?


제이홉
신여주?

그가 불러준 이름에 여주는 힘없이 웃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화면속의 홉이 그녀와 같은 자세로 앉으며 물었다.



제이홉
무슨 일 있었어요?


신여주
네.


제이홉
무슨일.

말해보라는듯, 들어줄께-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다.

어느새 이렇게 깊숙히 들어왔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깊은 눈으로 날 봐줬을까.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려주는 제이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여주
제 비서요- 잘생기신 분.


제이홉
네.


신여주
그 사람한테 얘기했어요. 아미와 나의 관계? 나는 아미 아니라고.


제이홉
......믿어요?


신여주
믿더라구요.


제이홉
대단하네.

담담한 제이홉의 반응에 여주는 작게 웃었다.


신여주
근데 그 사람...엄청....슬퍼했어요.


제이홉
......


신여주
왜 아미 안찾고 있냐고 뭐라고 했어요. 저한테. 일주일 휴가도 냈어요. 저는 지금 아는게 없어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제이홉
그래서 우울해요?


신여주
그런건 괜찮은데. 그냥....제이홉씨가 생각났어요.


제이홉
........


신여주
당신도 슬펐을텐데.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미를.....이제 만날수 없을거라고........



제이홉
여주씨.


신여주
내내 모른척, 아닌척 하고 있었나봐요 나. 아니면, 내가 진짜 이 세계에 살던 신여주라고 생각하고 싶었나? 모르겠어요ㅡ 아미의 자리를 뺏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니....기분이. 이상해요.


제이홉
.......


신여주
제이홉씨는.....무슨 기분으로 날 봤어요....?

한참동안 서로 마주보며 말이 없었다.


제이홉
......처음에는 신기했고.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곧게 여주를 향해 있었다. 흔들림없이.


제이홉
내가 찾던 아미가 이런 얼굴이었구나. 이렇게 컸구나. 당신이 나한테서 "정호석"을 보듯이.


신여주
........



제이홉
그런데 나한테는 그냥 신여주더라고.


신여주
........


제이홉
막무가내로 우리집에 뛰어들어와서 살겠다던 신여주. 나를 보면서 정호석을 떠올리며 울던 신여주. 그냥 당신.


신여주
.......


제이홉
나한테 아미는, 어린시절의 모습이 전부고. 그냥 추억이고 그래요. 내가 혼자 두고 온 동생같은. 먹먹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렇다고 당신이 원망스러운건 아니야.

여주의 눈에서 눈물이 고여 뚝 떨어졌다.


제이홉
여주씨는요?? 나보면, 아직도......정호석, 생각하나?

아니. 아니요.

여주는 고개를 저었다.

호석이한테 너무 미안한데.

나는- 이제. 제이홉이. 당신이 좋아요.

대답하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여주를 핸드폰 속 그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제이홉
왜 울어요- 가서 안아주지도 못하는데.


신여주
빨리와요.


제이홉
여주씨. 나는, 당신이 아무것도 안해도 상관없어요.


신여주
.......


제이홉
아미의 억울함? 실종, 뭐 그런거. 아미한테는 미안한데, 나한테 지금 여주씨가 더 소중해져버려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당신이 신여주니까.


신여주
........그래도 되는거예요....? 나 이렇게.... 신여주인척....신여주로 살아도 되는걸까요.......?

필사적으로 모른척 하던 죄책감을 마주했다.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이곳이 나의 세상인것처럼. 소중해져 있었다.

눈물을 닦아내며 마주친 시선에 여주가 웃었다.


신여주
미쳤나봐. 어떡하지, 제이홉씨?


제이홉
왜- 왜요?


신여주
너무 보고싶어요 제이홉씨가.



제이홉
.......


신여주
다음 투어가 어디라구요?


제이홉
....금방가요. 이제 일본 하나 남았는데.


신여주
보고싶다.



제이홉
.......


신여주
진짜 미치게. 안기고 싶어요ㅡ 지금.


서울중앙병원 1302호. VIP실.

여주와 윤기가 들어섰다.


신여주
회장님, 안녕하세요. 신여주입니다.

정근수회장
콜록.콜록....! 아 이거...신구현회장 따님 아닌가?


신여주
몸은 좀 어떠세요?

정근수회장
나이들면 이렇게 한두군데 아프고 그러는거지. 허허.

처음 기업모임에서 뵈었을때보다 수척해진 모습에 여주는 그저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정근수회장
이 늙은이 병문안을 다 오다니.... 고맙기도 한데 그것보다 걱정이 좀 되는구만. 무슨 부탁이있어서 온건가?


신여주
.....네. 죄송합니다. 이런 시기에 오는게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밖에....

정근수회장
괜찮으니 할 얘기 있으면 해봐요.

여주는 윤기를 보았고. 윤기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백에서 여주는 화장대에서 찾아낸 편지와 사진이 담긴 봉투를 정회장에게 내밀었다.


신여주
혼자 계실때 봐주세요.

봉투가 넘겨졌다.

병실에 틀어진 티비애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깔린 타이밍에 흘러나온 뉴스속보에 윤기와 여주의 시선이 동시에 티비로 향했다.


뉴스
".....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미 심하게 부페가 된 이 사체에서는 작은 약병과 함께....."


떨리는 시선으로 뉴스를 듣고 있던 여주가 윤기를 돌아보았다.

아미다.

왠지 모르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약병. 그녀와 함께 발견되었다는 그 약병을 보는 순간, 한동안 잊고 있던.

교회 옆 호석의 묘앞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작가의 말] 제이홉과 여주에게는 이제 서로가 "누군가의 대신.대타"가 아닌 그들 자체가 되었어요. 대신이라고 생각하던 자리가 서서히 자신의 현실이 되면서 갖게 된 여주의 죄책감도 알려드리고 싶었고.... 아미와 직접적인 추억을 갖고 있던 석진옵과

추억속 아미로만 그리워했던 제이홉의 차이도 보여드리고 싶었고. 알리고 싶었던게 많았던 이번 화 ㅋ 정회장과의 병원 만남은 다음회에 조금 더 자세하게 적어보려고 해요

벌서 40화더라구요?! 깜놀. 뭐 풀어낸것도 없는데ㅠ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구독자분들, 읽어주신 한분한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