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 단편 모음
화면 너머의 딸기 샴푸 향

정화랑
2026.07.24Vues 1
내 인생 최고의 차 안 카라오케 타임을 45분 동안 달린 후, 우리는 사촌 형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그냥 평범한 공원이 아니었다. 나와 사촌 형이 매년 여름마다 하던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바로 '공원 스피드런'.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우리는 늘 공원의 코스를 누가 더 빨리 통과하는지 내기를 했고, 저녁을 먹으러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었다. 누군가 특별한 사람... 내게 가장 특별한 사람과 이 소중한 추억과 장소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번에는 차까지 달리는 레이스였다. 어릴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설렘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수줍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 그네 사이를 지나서, 계단으로 올라갔다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서, 저 징검다리를 건넌 다음에 차까지 다시 뛰어오는 거야. 준비됐어?"
그녀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셋, 둘.... 하나!"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그냥 져줄까? 아니면 이기고 승리의 뽀뽀를 해달라고 할까? 그것도 좋아해 주려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팔린 탓에, 그녀가 벌써 마지막 장애물에 다다랐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다급히 뒤쫓아갔지만 그녀가 간발의 차로 차를 먼저 터치했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깔깔거리더니, 이내 숨이 차는지 길가에 주저앉아 차에 몸을 기대고 헐떡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우승 기념 선물로 뭘 갖고 싶으십니까?"
"밥. 나 배고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비행 진짜 길었단 말이야."
"내가 이거 보여주느라 너무 신나서 밥 먹이는 걸 깜빡했네! 미안해."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징징거렸다.
"괜찮아. 우리 집에 가서 배달 시켜 먹을까? 돌아가는 길에 뭐 먹을지 고르자."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배달 앱에는 먹을거리가 넘쳐났고, 한국 음식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그녀에게 딱 하나를 고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 휴대폰 화면을 계속 스크롤하며 고심했다. 맛있는 게 보일 때마다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가도, 이내 지금 당장 당기는 게 아니라며 마음을 바꾸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오랜만에 먹는 친숙한 음식인 짜장면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다른 메뉴는 내일부터 도전하겠다'면서 말이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신나서 몸을 들썩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피곤해 보였지만 그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 진짜 얘한테 세게 감긴 게 틀림없다.
"나 음료수 좀 더 줄 수 있어? 어디 있는지 잘 몰라서." 그녀가 입안 가득 짜장면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만 삐끗하는 바람에 식탁 위에 있던 소스며 음식이 그녀의 하얀 셔츠 위로 몽땅 쏟아지고 말았다. 우리 둘 다 충격을 받은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지둥 패닉에 빠지자, 도리어 그녀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래서 흰옷을 입으면 안 된다니까. 내 짐은 아직 호텔에 있어서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나는 급하게 휴지를 쥐여주고는 갈아입을 만한 옷을 찾으러 내 방으로 급히 뛰어갔다.
"내 침대 위에 셔츠 하나 올려놨으니까 일단 그걸로 갈아입어! 내가 여기 지른 사고 얼른 치우고 있을게."
그녀가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갔다.
"이 옷은 어떻게 해?" 잠시 후 돌아선 내 눈앞에, 그녀가 얼룩진 셔츠를 들어 올린 채 서 있었다.
대답을 하려던 찰나,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담하고 커 보였기 때문이다. 나한테도 오버핏으로 넉넉한 셔츠였는데, 그녀가 입은 걸 보니 이 옷이 얼마나 거대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의아한 듯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뺨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에서 젖은 셔츠를 받아 들고 세탁실로 향했다. 너무 귀여워서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아 혼자 소리 없이 큭큭 웃었다.
거실로 돌아오니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장시간 비행에 시차 적응까지 겹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거리를 좁혔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멋있게 어깨에 팔을 올리려고 폼을 잡는데, 그녀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나 안고 싶으면 그냥 안아도 돼. 안 그러는 척 연기 안 해도 되거든?"
내 꼴이 스스로도 웃겨서 헛웃음을 짓다가, 결국 그녀를 내 품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기며 소파에 편하게 기대누웠다. 우리가 이렇게 화면 너머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한 공간에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딸기 샴푸 향기, 부드러운 머릿결, 내 품에 더 편안하게 파고드는 기분 좋은 무게감, 그리고 서서히 차분해지는 그녀의 숨소리... 그야말로 지고의 천국이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정수리에 살포시 입을 맞추고, 나 역시 더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