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사연애] 귀공자

17화. 귀공자 박원빈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원빈이 친구들과 함께 복도를 걸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원빈과 눈이 마주쳤다.

"누나."

"수업 끝났어?"

"네. 누나는요?"

"나도."

 

예전처럼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서로 너무 가까이 붙어 있지는 않았다.

같은 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우리 둘이 정한 비밀연애의 방식이었다.

 

"그럼 먼저 갈게요."

"응."

 

원빈은 친구들과 함께 먼저 걸어갔다.

잠시 뒤 휴대폰이 울렸다.

 

누나.

 

응?

 

오늘 카페 갈 거죠?

 

당연한 걸 물어보네.

 

그럼 끝나고 연락할게요.

 

나는 피식 웃었다.

학교에서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둘만 있으면 누구보다 티를 내는 사람이었다.

 

 

*

 

 

수업이 모두 끝난 뒤.

학교 근처 카페에서 원빈을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원빈이 내 앞에 음료를 밀어줬다.

"이거."

"내 거야?"

"네."

"어떻게 알았어?"

"맨날 이거 마시잖아요."

 

나는 컵을 받아들며 웃었다.

 

"너 이런 건 진짜 잘 기억한다."

"누나 건 잘 기억해요."

 

괜히 마음이 간질거렸다.

잠시 후 원빈이 테이블 위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주변을 한번 살피고 그 손을 잡았다.

 

"사람 보는데?"

"여기 우리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싫어요?"

"아니."

 

원빈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럼 됐어요."

 

 

*

 

 

며칠 뒤.

종강을 기념해서 과 술자리가 잡혔다.

 

이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원빈은 동기들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도 친구들과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귀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가끔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는 정도.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였다.

자리를 자연스럽게 바꿔 앉다보니 원빈이 내 옆자리로 왔다.

나는 원빈을 바라봤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잔이 비어 있는 걸 보고 무심코 입을 열었다.

 

"빈아, 너 물 좀 마셔."

 

순간.

원빈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몇 명도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원빈이라고 불렀다.

가끔 둘만 있을 때나 메시지를 보낼 때만 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하필 사람들 앞에서.

 

"잠깐만."

 

옆에 있던 여자 동기가 나를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

"어?"

"빈아라고 했잖아."

 

나는 애써 웃었다.

 

"아, 그냥..."

"근데 왜 빈이라고 불러?"

"그냥 친해서."

 

대충 넘기려고 했는데 여자애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도 친한데 아무도 그렇게 안 부르는데."

 

그 말에 주변에서도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네."

"원빈 별명 있었어?"

"나는 처음 듣는데?"

"박원빈 너 빈이라고도 불려?"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원빈은 그저 나를 처다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물컵만 만지작거렸다.

그때 옆에 있던 성찬이 나와 원빈을 번갈아 바라봤다.

 

"잠깐."

"왜."

"너네 둘이 뭐 있냐?"

"뭐가?"

"아니, 이상하잖아."

 

성찬이 원빈을 가리켰다.

 

"얘 원래 여자애들이 뭐라고 해도 별로 신경 안 쓰잖아."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너한테는 처음부터 말도 잘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빈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그냥 친한 거라니까."

 

내가 얼버무리자 성찬이 피식 웃었다.

 

"친한 거?"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뭔데."

"너네 사귀어?"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방금까지 떠들던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을 바라봤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원빈을 바라봤다.

원빈도 나를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 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원빈이 잠시 내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저희 사귀어요."

 

순간 테이블이 뒤집혔다.

 

"미친!"

"진짜였어?"

"언제부터?"

"야 박원빈 너 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둘이 언제부터 사귄 건데?"

"그래서 맨날 둘이 따로 만나고 그랬구나?"

 

나는 얼굴이 뜨거워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특히 아까 그 여자 동기는 놀란 표정으로 원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네."

 

원빈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성찬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너 완전 숨겼네?"

"누나가 비밀로 하자고 해서."

"누나?"

 

누군가 바로 반응했다.

 

"얘 지금 누나라고 했어?"

원빈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나는 결국 웃음이 터졌다.

 

"너 왜 그렇게 당황해."

"아니..."

 

원빈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성찬이 그 모습을 보고 폭소했다.

 

"야 박원빈 얼굴 빨개진 거 처음 본다."

"그만하세요."

"아니 진짜 신기해서 그래."

 

주변에서 계속 놀리자 원빈은 고개를 숙이고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런 원빈을 보다가 괜히 마음이 간질거렸다.

 

그리고 테이블 아래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원빈의 손등에 내 손끝이 닿았다.

 

원빈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작게 웃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원빈도 아주 작게 웃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내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숨길 필요도 없었다.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한동안 우리를 놀렸다.

 

"야 김여주, 박원빈 잘 부탁한다."

"뭘 잘 부탁해."

"아니 귀공자님이 우리랑은 말도 잘 안 하더니 여자친구한테는 완전 다르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귀공자.

처음 원빈을 만났을 때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잘생긴 얼굴에 늘 깔끔한 옷.

말이 없고,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

나도 처음에는 정말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내 옆에 있는 원빈은.

"누나."

"응?"

"오늘 집 같이 가요."

"당연하지."

 

내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있었다.

나는 원빈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근데 너 이제 귀공자 이미지 끝났네."

"왜요?"

"오늘 얼굴 빨개진 것만 해도."

"누나 때문에 그런 건데."

"그래도."

"저는 괜찮은데."

 

원빈이 내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누나 남자친구인 게 더 좋아서."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사람들은 박원빈을 귀공자라고 불렀다.

차갑고, 까칠하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내가 알게 된 박원빈은 전혀 달랐다.

낯을 많이 가려서 오해받는 사람이었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보다 서툰 사람이었고,

한 번 좋아한 사람에게는 끝까지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빈아."

"네."

"가자."

"네."

 

내 손을 잡고 웃으며 걷는 내 남자친구였다.

처음에는 귀공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드디어 완결입니다!!

장편은 여기서 처음 써 봐서 걱정됐는데...ㅎㅎㅎ 그래도 잘 마무리 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ㅎㅎ

그럼 저는 또 다른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Histoires populaires auprès des fans de Won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