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포식자

03 그 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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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포식자


모든 것이 무너진 날이었다.

“…“

그녀가 조직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며칠간 외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조직 내부의 사정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그동안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조직을 맡아 줄 사람이 있었으니까.

전정국.

그가 있었기에 마음 편히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조직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도, 어린 나이에 조직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정국은 그녀의 편에 섰다.

그녀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했고, 불만을 품은 간부들을 조용히 정리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는 그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믿었다.

“…”

차에서 내린 그녀는 건물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상했다.

평소라면 입구부터 자신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이던 조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앞에는 낯선 차량 몇 대가 세워져 있었고, 출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의 얼굴도 익숙하지 않았다.

“……“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정국이 알아서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

그녀가 입구에 서 있던 남자를 불렀다.

”정국이 어디 있어.“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고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묘하게 거슬렸다.

”못 들었어?“
”……“
”전정국 어디 있냐고.“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안에 계십니다.“

그녀는 더 묻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자신이 가장 믿었던 사람이 그 모든 일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

조직 내부는 이미 정리된 뒤였다.

반란에 가담하지 않는 이들은 대부분 쫓겨나고, 그녀의 아버지 때부터 자리를 지켜 온 감부들 역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국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익숙해야 할 공간이 낯설었다.

몇 년을 드나들던 복도인데도 어쩐지 남의 건물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녀는 걸음을 멈춰섰다.

복도 끝에서 마주친 조직원 하나가 자신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남자가 돌아봤다.

“너 나 몰라?”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없는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그제야 그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언가 잘못됐다. 단순히 조직 내부의 분위기가 달라진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부터가 이전과는 달랐다.

마치 더 이상 자신을 이곳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

그제야 확인한 화면에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대부분 같은 사람이었다.

박지민.

조직 내에서 정보 수집과 보안을 담당하던 인물이었다. 뛰어난 해킹 실력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조직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까지 다를 수 있었고, 그녀가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연락이 잦은 편이었지만, 이 정도로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온 적은 없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를 확인하려던 순간.

지이잉 -

다시 한번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지민이었다.

그녀는 별다른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다.

“왜. 무슨 일인데.‭”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것은 평소와 다른 다급한 목소리였다.

“너 지금 어디야.”
“나? 조직 왔는데.“
“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이어 지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지금 당장 거기서 나와.”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뭔 소리야.”
“설명할 시간 없어. 일단 밖으로 나가.”
“야, 박지민.”
“……”
“무슨 일인데 그러냐고.“

지민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불길했다.

”…“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 조직원들이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제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이제 네 조직 아니야.”
”……“
”전정국이 다 뒤집어 놨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뭐?”
“그러니까 제발.”

지민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정국이 마주치기 전에 나와.”

그녀는 천천히 복도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

자신이 없는 사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전정국.

왜 하필 그 이름이 나오는 건지.

그녀가 이곳에 돌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

그녀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렸다.

전정국.

그 이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국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

7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배신했다니.

“하…”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적어도 정국의 입으로 들어야 했다.

”…“

복도를 지나는 동안 몇몇 조직원들이 그녀를 알아보고도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머릿속에는 온통 오직 한 사람 뿐이었다.

”전정국.“

그녀는 곧장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

정국은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한쪽 팔로 눈을 가린 채, 누군가 들어왔다는 사실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왔어요?”

그는 느긋하게 물었다.

“…”

평소와 다를 거 없는 목소리였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갔고, 이제 와서 그녀가 돌아온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

정국은 그제야 팔을 내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뭐야, 왜 그렇게 봐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남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도 그의 배신을 믿지 못했던 자신이 우스워질 만큼, 정국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

그런 그녀의 시선에도 정국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벌써 들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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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도 여주의 그 날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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