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빙의글] 세 번째 결말

13화. 같이 지는 무게

퇴근길, 동민이 다시 그 질문을 꺼냈다.

 

"…그쪽은요. 이사급 결재 라인이라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안 답해 주셨잖아요."

 

더 미룰 수 없는 질문이었다.

숨 한 번 고르고 입을 열었다.

 

"…운학 씨랑, 몇 주 전부터 같이 캐고 있었어요. 성호 실장 쪽, 그 위에 누가 있는지."

 

동민이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때, 자료실에서 둘이 붙어 있던 것도."

"네. 그거였어요."

"…그럼 그날 제가 괜히 질투한 거였네요."

 

씁쓸한 웃음이 섞여 있었다.

기분이 나쁜 웃음은 아니었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요. 증거도 없이 동민 씨가 믿는 사람을 의심하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알아요, 그 마음. 저도 그쪽 지키려고 똑같이 숨겼으니까요."

"저도 알아요. 그래서 더 미안했어요. 똑같은 이유로 숨기고 있으면서, 저만 억울해하고 있었던 거니까요."

 

서로 다른 이유로 숨겼던 게,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

 

 

 

동민이 잠깐 걷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운학이도 같이 봐요. 셋이 따로 가는 거보다, 맞춰 가는 쪽이 나아요."

"그건 안 돼요."

 

대답이 너무 빨리 나갔다.

동민이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

 

"왜요."

"…그냥, 사람이 늘수록 위험도 늘어나니까요."

"그런 식으로 피하지 마세요. 방금까지 운학이랑 같이 캤다고 하셨잖아요. 사람이 늘어서 위험한 게 문제면, 저부터가 이미 늘어난 사람이에요."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선뜻 수긍이 안 됐다.

 

"…저 못 믿으세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왜 유독 저만, 이 안에 끼워 주기 싫어하세요."

 

동민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계속 서운해할 거였다.

그리고 그 서운함은, 세 번 다 자신이 만들어 낸 거였다.

 

"…앉아서 얘기해요. 긴 얘기라서."

 

근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가로등 불빛이 멀어서 서로의 표정이 반쯘 어둠에 가려 있었다.

그게 오히려 말을 꺼내기 편하게 만들었다.

 

"…저 사실, 이번이 세 번째예요. 똑같은 삶을 세 번째로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동민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믿기 힘든 말을 들으면 다들 그렇게 멍해지는 걸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처음 두 번은, 동민 씨랑 저 둘 다 이 사건 때문에 죽었어요. 처음엔 차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다리 위에서, 두 번째는 정산일에 뺑소니로요. 둘 다 동민 씨가 저를 감싸다가 같이 죽었어요."

 

목소리가 떨리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혼자 감당하려고 했어요. 좋아하는 마음은 다 보여 줘도, 이 사건만큼은 동민 씨를 떼어놓고 싶었어요. 운학 씨를 끼운 것도, 동민 씨까지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돌아간 길이었어요."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바람 소리만 들렸다.

믿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민의 얼굴에서 먼저 떠오른 건 의심이 아니라, 뭔가 맞아 들어간다는 표정이었다.

 

"…그 장면들이, 그거였어요."

"…네?"

"저한테 자꾸 스치던 장면들요. 차, 브레이크, 깨지는 유리.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거죠, 지금."

 

둘 다 같은 순간을 품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마주 보고 확인했다.

 

"…그럼 왜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셨어요. 저도 이미 겪은 일이라면서요."

"겪은 건 맞는데, 기억하는 건 저 혼자였으니까요. 동민 씨는 그냥 느낌으로만 아는 거고.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저 하나니까, 책임도 저 혼자 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왜 혼자 질 책임이에요. 저도 똑같이 두 번 죽은 사람인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뜻 대답이 안 나왔다.

 

"…저 못 믿으세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뭔데요. 두 번이나 저 때문에 먼저 죽었다고 하면서, 세 번째는 왜 혼자 또 그 자리에 서려고 해요."

 

말문이 막혔다.

동민이 다가와, 손을 잡았다.

 

"…혼자 그 긴 시간을 다 짊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두 번이나 저 먼저 보내고, 그러고도 또 혼자 버틴 거잖아요. 저는 기억도 못 하는 걸, 그쪽 혼자서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참아 왔던 게 그 손길 하나에 한꺼번에 무너졌다.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그동안 혼자, 얼마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동민이 그대로 끌어당겨 안았다.

 

품에 기댄 채로, 세 번의 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그 한마디에 눈물이 더 터졌다.

동민이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고만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숨이 가라앉았다.

 

동민이 이마를 맞대 왔다.

 

"…이제 혼자 안 둬요. 뭘 겪었든, 뭘 또 겪게 되든."

 

그 말끝에 이마에 먼저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술이 닿았다.

 

짧은 입맞춤이었는데도, 세 번의 생을 통틀어 가장 선명한 순간이었다.

처음 두 번의 생에서는 이렇게 다 알고도 끝까지 함께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숨기지 않고, 피하지 않고, 서로의 무게를 나눠 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은 저한테 하는 거 아니에요. 같이 가는 거예요, 이제."

 

그 말을 듣고서야, 정말로 혼자가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드디어 오해가 풀리고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스토리 이해가 잘 되시나요???

궁금한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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