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연(氷煙)의 성채

1화: 동토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발밑에서 현실의 장막이 날카롭게 찢어발겨지던 거친 파열음이었다. 자줏빛 불빛의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섬광이 일렁였고, 뒤이어 완벽한 공허 속으로 수직 낙하하듯 끝없이 추락하는 감각만이 이어졌다.

마침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다시 눈을 떴을 때, 온 세상은 고요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겁고 차가운 한기가 살결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나는 새하얀 먼지 같은 눈밭 위에 하늘을 바라본 채 똑바로 누워, 짙고 소용돌이치는 회색 구름으로 가득 뒤덮인 밤하늘을 허망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거대한 소나무들이 마치 어둠 속의 거인들처럼 머리 위로 불길하게 솟아올라 있었고, 나뭇가지마다 서리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상체를 밀어 올려 보려 애썼지만 사지가 마치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았고, 차가운 공기가 허파를 가득 채울 때마다 격렬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 따윈 머릿속에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저기 좀 봐. 눈더미 속에 있어."

윙윙거리며 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깨끗하게 베어 넘기며 나직하고 흔들림 없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얼어붙은 속눈썹 사이로 흐릿하게 흐려진 시야 너머, 빽빽한 수풀 경계 장막을 뚫고 다가오는 두 개의 실루엣이 내 시선에 무겁게 걸려들었다.

가장 먼저 거리를 좁혀온 것은, 거친 겨울 공기마저 순식간에 조금은 덜 공포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차분하고도 흔들림 없는 존재감을 지닌 한 젊은 남자였다. 그는 깊은 미드나잇 블루 색상의 두꺼운 모피 옷을 입고 있었고, 한쪽 어깨 위로는 정교하게 닦인 은색 방어구 조각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추락의 여파로 떨고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동자가 크게 치켜떠졌다. 그는 차가운 한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내 바로 곁의 눈밭 위로 단숨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단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그의 몸짓은 그 어떤 언어보다도 수천 배는 더 크고 확실하게 온 가슴을 울렸다. 그는 손을 뻗어 귀에 대고 있던 화려한 은색 장치의 자그마한 다이얼을 재빨리 클릭했다. 몰아치는 산바람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하여 내 가녀린 숨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자신의 청각 보조 장치를 조절한 것이다. 그는 지체 없이 털 안감을 댄 무거운 망토의 버클을 풀어 내 얼어붙은 어깨 위로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었고, 커다란 두 손으로 내 팔을 단단하게 붙잡아 중심을 잡아주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침내 마주하는 그 순간, 그의 얼굴 위로 무척이나 따스하고 완고한 미소가 눈부시게 번져 나가며 지독한 한기를 단숨에 녹여내려 보냈다. 그는 아래로 손을 뻗어, 얼어붙은 내 손가락 마디 뒷면 위로 안심시키듯 부드럽고 가만히 다정한 원을 그리며 손길을 더했다.

"걱정하지 마."

그 남자는 내 반대편 눈밭 위로 미끄러지듯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어두운 회색 가죽 코트 차림이었고, 셔츠 소맷자락 주변에는 어두운 연기의 얇고 아련한 잔상이 장난스럽게 휘감겨 감돌고 있었다. 이 황량한 숲속 세계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마치 강아지처럼 활기차고 조급한 에너지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은 마주하자마자 순식간에 깊은 걱정으로 잔뜩 조여들었다.

"형, 이 사람 완전히 얼어붙어 가고 있어! 옷 좀 봐, 여기 변방 지대 출신이 절대 아니야."

그가 내 목 주변으로 둘러진 첫 번째 남자의 망토 끈을 잽싸게 고쳐 매어 주며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혼란스러운 패닉이 섞인 다급한 어조였다.

"차원 여행자일까? 시공간 균열을 뚫고 여기까지 날아온 건가? 저기, 내 말 들려? 눈 감으면 안 돼, 알겠지? 여기서 멀지 않은 성채로 데려다줄게. 거긴 엄청 따뜻해. 내가 동쪽 별동의 벽로 불꽃을 아주 강하게 피워 올릴 테니까, 주방에 말해서 따뜻한 물도 좀 끓여오고—"

"현진아, 숨 좀 쉬어라. 네 녀석 패닉 소리가 바람보다 더 크게 들리는구나."

낮고 부드럽게 감기면서도, 두 젊은 남자를 단숨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만들 만큼 완고한 지리적 권위가 실린 세 번째 목소리가 그들의 말을 깨끗하게 가로막았다.

소나무 무리가 만들어낸 깊고 짙은 그림자 속에서 커다란 체구의 한 남자가 성큼 걸어 나왔다. 그는 최고 사령관의 품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위엄 있고 무거운 하얀색 모피 코트를 입고 있었고, 정교하게 제작된 두 개의 은색 인공 와우 장치가 희미한 겨울 불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내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오던 그였지만, 그의 표정은 내비게이션의 시선이 내게 닿는 그 바로 그 자찰 순식간에 봄눈 녹듯 부드럽게 누그러져 갔다.

세 번째 남자는 곧장 내 머리맡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수만 가지 질문을 던지며 나를 번거롭게 만들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격식을 단숨에 내려놓은 채 내 얼굴 가까이 상체를 깊숙이 숙였고, 그의 호흡은 차가운 공기와 맞부딪히며 내 뺨 근처에서 하얀 입김이 되어 가만히 흩날렸다. 눈보라가 한창 몰아치는 한가운데에서 마주한, 마치 순수한 빛이 가득한 오아시스처럼 눈부시고 다정한 태양 같은 미소가 그의 얼굴 가득 피어올랐다.

"이제 안전해."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내 허리 아래로 매끄럽게 파고들어 내 몸의 무게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인도해 자신의 어깨 위로 가만히 기대어 얹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채 나를 자신의 가슴속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고,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 주려는 듯 나를 품 안으로 완전히 끌어당겼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강렬하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달콤했다.
"우리가 널 찾았으니, 그저 편히 쉬어라."

그의 넓은 가슴이 주는 포근한 온기 속에서 마침내 내 눈꺼풀이 서서히 무겁게 잠겨 드는 동안,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묵직한 연기와 얼음의 향취는 흔적도 없이 완전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내가 더 이상 이 차가운 허공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부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절대적인 안도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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