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둥지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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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채웠던 칠흑 같은 어둠이 천천히 꺼져갔다.

수빈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가장 먼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등이 닿아 있는 곳이 축축하고 차가운 흙바닥이 아니었다. 살결을 문지르는 것은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실크 쾌적함이었고, 몸을 누르는 이불은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포근했다.

‘내가… 살아있는 건가?’

수빈은 둔탁하게 울리는 두통을 참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은 천장에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와, 은은한 촛불 빛이 비추는 묵직한 고딕 양식의 인테리어였다. 거대한 창문 밖으로는 달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숲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말로만 듣던 뱀파이어의 저택 내부였다.

“...윽.”

수빈은 놀라 황급히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비 약이라도 당한 것처럼 팔다리가 둔하게 떨렸다.

그제야 수빈은 자신의 차림새를 확인했다.

흙먼지로 더러워졌던 헌터 제복은 온데간데없고, 품이 넉넉한 얇은 흰색 셔츠 한 장만 걸쳐진 상태였다.

“정신이 좀 드나?”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수빈은 흠칫 놀라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 벨벳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앉은 연준이 와인 잔을 들고 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에 담긴 붉은 액체는 술인지, 누군가의 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보다 수빈을 압도한 것은 연준의 눈빛이었다.

달빛 아래서보다 훨씬 더 짙고 투명한 붉은 눈동자. 연준은 긴 다리를 꼬고 앉아, 마치 희귀한 관상용 조류를 관찰하듯 수빈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디… 어디까지 손을 대신 겁니까.”

수빈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며 목소리를 높이려 애썼다.

하지만 본능적인 공포 때문에 목소리는 볼품없이 갈라져 나왔다.

“손?”

연준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준이 한 걸음씩 침대 쪽으로 다가올 때마다, 저택을 지배하는 기분 좋은 장미 향과 차가운 공기가 수빈의 숨통을 조여왔다.

“더러운 옷을 벗겨주고 씻겨준 걸 ‘손을 댔다’고 표현하면 좀 섭섭한데.”

“...뭐라고요?”

“피 냄새보다 흙먼지 냄새가 더 진하길래. 내 저택에 더러운 걸 들일 순 없잖아.”

연준은 순식간에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수빈은 엉금엉금 뒤로 물러서 헤드보드에 바짝 붙었지만, 연준의 기다란 손가락이 수빈의 턱 끝을 가볍게 잡아채는 것이 더 빨랐다.

“흣…”

손가락이 닿은 턱 밑에서부터 서서히 차가운 온기가 스며들었다.

연준은 턱을 살짝 들어 올려 수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겉모습은 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뼈대도 굵은 인간 남자인데, 하얗게 질린 얼굴이나 매끈한 목덜미는 너무나 무해해서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특히, 연준의 손길이 닿자마자 수빈의 하얀 귀가 노을처럼 발그스레 물들어가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헌터 가문의 ‘실패작’ 최수빈.”

연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수빈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어떻게… 내 이름을…”

“네 옷에 달린 은제 표식에 아주 친절하게 적혀있던데. 최씨 가문의 낙인과 함께.”

연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잔인하게 틀어올려졌다.

“궁금해서 사람을 좀 풀어봤어. 그 대단한 헌터 가문에서 제 발로 걸어 나간 수빈이가 사라졌는데, 가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

“재밌게도, 아무도 너를 찾지 않더군. 그 넓은 저택 어디에서도 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안 나.”

수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가문에서 자신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고, 차라리 사라져주는 편이 가문의 명예에 도움이 된다는 것쯤은.

하지만 그 잔혹한 진실을, 자신을 잡아둔 뱀파이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가슴속 깊은 곳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수빈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이자, 연준은 만족스럽다는 듯 수빈의 볼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버려진 거지, 너는.”

“...그만하세요.”

“아무도 찾지 않는 아이라면, 내가 가져도 불평할 사람은 없겠네.”

연준이 수빈의 귓가로 고개를 숙였다.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풍기는 달콤하고 서늘한 숨결에 수빈의 몸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연준은 수빈의 목덜미에 입술을 살짝 가져다 대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수빈아.”

“......”

“이 숲을 나가는 순간, 넌 내 밑에 있는 하급 놈들의 이빨에 갈갈이 찢겨 죽을 테니까.”

연준의 다정한 척하는 음성 뒤로 거역할 수 없는 포식자의 위압감이 묵직하게 깔렸다.

연준은 수빈의 붉어진 귓볼을 살짝 깨물듯 다독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어.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까.”

연준이 문을 열고 나가자, 육중한 나무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외비가 걸리는 묵직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완벽한 감금이었다.

홀로 남겨진 수빈은 긴장이 풀린 듯 침대 위로 허물어졌다. 가문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절망감과, 자신을 옭아매는 연준의 차갑고 다정한 손길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

수빈은 이불을 세게 쥐어뜯으며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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