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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기, 마지막 금메달, 마지막 고백






















한적한 수영장.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레일 끝과 끝을 오가며 헤엄치기를 반복한 석진은 수영장 벽면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시계를 보더니 물 밖으로 나왔다. 벌써 시간은 밤 9시경. 수경과 수모를 바닥에 둔 채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제 머리칼을 수건으로 털고 있었을까.






"석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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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누나."



다정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에 의해, 석진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뒤를 돌았다. 뒤를 돌기도 전에 이미 누군지를 대충 직감했던 석진. 아무 말 없이 제게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향해 말간 웃음을 내비쳤다.


"밥은, 먹었어?"

"아직. 누나는?"

"나도 아직. 씻고 나와, 같이 밥 먹자."


오늘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수영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복 차림의 그녀의 정체는 이여주. 여주는 석진에게 물었다. 그럼 그런 거 아니라며 짐 챙긴 석진이가 탈의실로 들어가겠지. 코치님, 우리 뭐 먹을 거야?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둘의 대화로 유추했을 때, 둘의 사이는 코치와 선수의 관계인 듯 보인다. 합을 꽤 오래 맞춰온 모양인지, 말도 놓고.

석진이 생각해 보겠다며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기자, 두고 간 건 아무것도 없는걸 확인하고 난 뒤에야 여주는 수영장 밖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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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몇 분 후, 제 짐을 챙겨 문화 센터 밖으로 나온 석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옆으로 왔다. 핸드폰 보고 있던 여주는 놀라서 말하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왔네?

누나 배고플까 봐. 망설임 하나 없이 대답한 석진이는 여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먼저 발걸음을 이끌었다. 여주는 늘 한결같이 저 자신을 배려하는 석진의 말투에, 웃음을 띠고.

얼마나 급하게 왔으면, 머리조차 젖어있길래 여주는 석진의 앞머리 살살 털어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뭐 먹을까.




"이 근처에 고깃집 있는데 거기 갈까?"

"가 봤어?"

"응. 나름 괜찮던데."

"좋아, 그럼 거기 가자."



우리 선수님 곧 경기니까 든든하게 먹여야지. 오늘은 내가 살게. 단번에 석진의 제안을 승낙한 여주는 그의 머리에서 손을 내렸다. 앞장 서라며 손짓한 여주는 들뜬 발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









치익치익, 불판 위에 올린 육즙이 자글자글한 고기가 한창 익어갈 때 즈음. 두 사람은 그 위로 투명한 소주잔을 맞부딪혔다. 두 개가 서로 부딪힘과 동시에, 서로의 잔 속 액체에는 파도가 일렁였다. 그 과정에서 살짝 넘친 건 불판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고.

자기 쪽으로 잔을 가져간 두 사람은 조심스레 입에 대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똑같은 투명한 액체를 삼킨 두 사람인 반면에 여주는 미소를, 석진은 서운한 표정을 띠고 있다.


"기분이라도 내보겠다는 거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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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해야 힘이 나지."


초록빛의 사이다 병을 잡더니 다시금 제 빈 소주잔으로 따르는 석진이었다. 여주는 그런 석진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정작 자신은 초록빛의 소주 병을 잡았고. 그러자마자 적당히만 마시라는 석진의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다시금 부딪힌 두 사람의 잔. 이제서야 익어가는 고기를 확인한 여주는 이번에는 잔을 그대로 내려놓더니 집게로 석진의 접시에 고기를 놔주었다. 많이 드세요, 선수님~


"···예선 경기 몇 일 남았더라."

"다음 주 화요일. 딱 7일 남았네."


그때까지 달려야 한다, 알지? 여주의 물음에 코 찡긋하며 대답을 대신한 석진이가 지은 미소. 알게 모르게 떨리고 있던 입꼬리였다.

아무 말 없이 소주잔에 술을 따른 뒤에 제 입에 술을 털어 넣은 여주. 오늘 유독 쓴 것 같다며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생각난 말이 있는 모양인지 입을 달싹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너."

"······그렇지."



이제 곧 해방인데, 무사히만 마무리 짓자. 끝나면 너 이제 나 안 봐도 돼. 시원섭섭한 표정의 여주가 석진을 향해만큼은 세상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그런 여주 가만히 지켜보던 석진이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나 이번 올림픽 마치고 은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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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나 못 보는 건가."



어딘지 모를 공허한 눈빛의 석진. 그의 시선은 여주를 향하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하는 대답이 아닐까 봐 차마 눈을 못 마주치고 있는 중인 거지.

그런 석진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아무런 대답 없이 쓴 웃음만 내비친 여주. 여주도 마찬가지로 애꿎은 테이블 모서리에만 시선을 두는 중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우리가 계속 보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네가 선수가 아닌 이상, 나도 코치가 아니니까. 나긋나긋한 어조로 속삭이다시피 말한 여주. 그제서야 시선을 거둬 석진에게로 옮겼다. 물론, 가끔은 볼 수 있겠지만.

석진은 지금 제 앞에 놓인 소주잔에 담긴 사이다마저 원망스럽다. 올림픽이 끝나면, 예선을 다 치르고 결승까지 간다면, 메달을 목에 건다면. 이제 완전히 끝나는 사이가 되는 건가 싶어서.


·

·

·

그래. 석진은 여주를 홀로 좋아하고 있다.












···























다음 날,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수영장으로 출석 도장을 찍은 석진.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기 전 준비 체조에 한창이다. 그의 옆으로도 연습에 한창인 출전 선수 몇 명들이 꽤나 보이고.

이 넓은 공간 안에서 여주를 찾다가도, 보이지 않으니까 오늘은 좀 늦게 오나 보다 생각했다. 이내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아무렇게나 두고선, 바로 자세 잡더니 물에 빠지는 석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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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레일 끝과 끝을 꽤나 여유롭게 오고 가던 석진. 자유형으로 헤엄친지 왕복 다섯 번정도 되었을까, 시작점과 정 반대 끝에 있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어두운 필터가 씌워진 수경 너머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늘 좀 늦었다, 언제 왔어?"


이내 수경을 벗은 석진이 여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온 지 얼마 안 됐어. 여주는 다행이라며 옷 좀 갈아입고 온다고 말하자, 그새 장난 하나 떠오른 석진이 여주의 팔목을 붙잡았다.

여주는 하얀 반팔 티셔츠에, 짧은 기장의 검정 반바지 입은 상태. 한 마디로 뽀송뽀송한 사복 상태다, 이 말이야. 여전히 물 안에 있는 석진이가 여주 손목을 잡으니, 여주는 대충 알아차렸다. 야, 너 설마.


"···하지 마? 하지 마라 진짜···ㅋㅋㅋ"

여전히 여주 손목만 잡고 있는데, 은근하게 석진이가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에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쳐보지만··· 석진이 힘을 어떻게 이기겠어. 다른 사람들 시선도 있고 그래서 소리는 못 지르고.


"나 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올게,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한 적 없는데."

"···야, 네가 지금 나···!"


풍덩, 미끄러운 바닥으로 인해 석진이가 많은 힘은 안 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대로 빠져버린 여주. 빠지는 찰나에, 그 와중에 여주 다칠까 봐 순간적으로 허리 감싼 석진이 여주 상태 확인하기 급급했다.

물론, 여주도 명색이 수영 선수 코치라 물에 빠져 죽을 일이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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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ㅋㅋㅋ"

"···아 진짜 김석진···ㅋㅋㅋ"


석진은 애초에 정말 빠뜨리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여주가 발을 헛디뎌 정말 빠져버리니까 덩달아 당황했으면서도 이 상황이 웃기다.

난데없이 물에 빠져서 찝찝한 이 상황이 분하기는 한데, 또 어이없어서 화는 안 나오고. 웃기만 하던 여주가 석진이 어깨 밀치면서 제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긴다. 나 이따가 집에 입고 갈 옷 없다고···.


"내 옷 줄게, 내 거 입고 가."

"그럼 너는."

"벗고 가야지."


미쳤나 봐.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  석진의 말 떨어지기 무섭게 그로부터 멀어진 여주가 그대로 물 밖을 빠져나갔다. 그런 여주 뒤따라 물에서 나온 석진이는 여주 멈춰세우더니 마주 선채로 자기 수건 둘러주고.

그리고··· 이 상황이 괜히 낯 뜨거워 티는 안 나지만 시선이 방황 중인 여주. 석진이는 수영하다 나와서 상의 안 입고 있지···, 자기는 흰 반팔티 입어서 비치는 걸 아니까 석진이가 수건 둘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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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갈아입고 와."


···정말 빠뜨릴 생각은 없었어. 석진이 말하니까 안다며 고개 끄덕이는 여주. 내가 자진해서 빠진 거 맞아. 미끄러져서···. 멋쩍게 웃어 보이더니 그대로 탈의실로 호다다다 들어가 버리는 여주였다.






···







그렇게 정확히 일주일 뒤, 올림픽 개막식. 그리고, 자유형 200M 예선까지. 석진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물론 준결승까지도. 이번이 석진에게는 마지막 기회이자 경기라, 폐가 닳도록 최선을 다 했다.

그래서일까, 세계 신기록이라는 결과를 남기기도 했다. 원래라면 100M, 50M 부문에도 출전을 했을 터, 하지만 이 또한 석진의 선택이었다. 한 가지에만 쏟고 싶다는.

그리고 오늘은 대망의 결승.

오늘이 지나면, 석진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오늘 아침, 여주가 석진에게 말했다.


"다치지 않게만 하자, 오늘."


계속 그 말을 머릿속에 되뇌이던 석진. 그에게는 오늘 목표가 있었다. 준비하는 순간에도, 수영장으로 걸어나가는 순간에도, 그 모습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순간 조차도 결심하고 또 결심한 목표.

그는 오늘, 반드시 메달을 목에 걸고 여주에게 진심을 전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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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경기를 펼쳐야 할 2레인 앞에 선 석진. 전광판으로 큼지막하게 나오는 제 이름과, 모습을 보다가도 이내 관중석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을 여주를 찾아 시선을 굴렸다.

마침내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중이던 여주와 시선이 마주친 석진. 긴장한 건지 굳어있는 여주의 표정을 보고선, 긴장 풀라는 듯 생글생글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런 석진의 미소 본 후에야, 그래도 잠깐이나마 웃게 된 여주였고.

석진은 그와 동시에 준비 자세를 취했다. 옆에 서있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상체를 숙여 준비하는 동안, 석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제 스스로 잡생각을 지우려는 노력과 같았다.

그렇게 조금이 지났을까. 수영장을 한가득 메우는 신호탄 소리에, 동시에 물로 빠지는 8명의 선수. 이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석의 사람들도, 각자의 안방 1열에서 응원하는 국민들도, 이 상황을 중계하는 해설 위원들도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승리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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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선수···!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100M를···! 두 번째로 찍으며 경기를 이어갑니다."

"이 정도만 유지하면, 메달의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막···!! 첫 번째로 150M 지점을 통과합니다!!!"


중계 현장, 경기 관중석 너나 할 것 없이 들뜬 분위기가 공간을 메웠다. 해설 말대로 석진이 첫 번째로 치고 나가는 상황인데, 그 옆에 있는 선수들과 막상막하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

여주는 차마 두 눈 뜨고 경기 상황을 지켜볼 수 없었다. 주변에 응원하러 온 석진의 지인들과 함께 앉아있는 상황에서···

경기는 끝이 났다. 여주를 기준으로 주변에서는 환호 소리가 들려왔으며, 여전히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여주는 생각했다. 지금 내 옆에서 환호 소리가 들린다는 건···

눈을 뜬 여주에게, 시야 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석진의 금메달을 알리는 1위 기록이 떠있는 전광판. 그제서야 비로소 마음 놓아졌던 여주가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석진이 있는 밑으로 내려갔다.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여주는, 후련한 마음으로 경기를 끝마쳤을 석진에게 달려갔다. 하마터면 또 미끌미끌한 바닥으로 인해 넘어질 뻔도 했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달렸다.

그렇게 마침내 제 시야에 석진이 들어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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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봤어? 나···"


경기를 막 끝내고, 젖은 제 몸을 닦지도 않은 채 여주를 먼저 반기는 석진. 여주는 망설임 없이 그런 석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이 모습 또한 화면 너머로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고.

돌발 행동으로 인해, 하려던 말조차 잊어버린 석진. 제 허리를 끌어안고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주에, 조금은 당황했다. 게다가 눈물을 보이기까지 하는 여주. 자기 옷이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석진을 안고만 있었다.


"······수고했어. 정말 많이 수고했어."

"······."

"진짜 잘했어, 너···."


갑작스러운 여주의 눈물, 그리고 칭찬까지. 석진은 자기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옛 기억들에 괜히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자기도 조심스레 여주를 안자, 고개를 들어 석진을 바라보는 여주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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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마음 아프다."

"······석진아."


조금 뜸을 들이던 여주가 말했다. 나는 이게 지금··· 우리의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울먹이며 물기 젖은 목소리로, 게다가 떨면서까지 속삭이는 여주에, 석진이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다시금 팔에 힘을 줘 여주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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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누나."

"······어?"


내가 먼저 좋아했어. 우리 끝 아니야. 제 품에 안겨있는 여주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여주는 석진이었음을.







···







Epilogue




"질문 마지막으로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사실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표하고 계신데요, 혹시 생각이 바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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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쉽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말 마지막으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한 마디만."


저에게 아낌없는 응원 보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 ··· 그냥 무조건적으로 감사했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국민 여러분들 덕에 좋은 성과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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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더할 나위 없이 많이 사랑하는 코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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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수영 국가대표,,, 🏊 좋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