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 CACHÉE : Carte cachée

ESPER : Médium [01]

으스스한 분위기 속 어두운 표지판에 쓰인 글자, 통제 구역 S-1.

이곳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새까만 무리의 까마귀들이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보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파스슥–

여자는 이미 말라 비틀어져 버린 낙엽을 밟으며 주위를 걷기 시작했다.

김여주

"아, 까마귀 새끼들이 진짜. 싹 다 말려 죽이기 전에 조용히 해라."

아무리 말을 험악하게 해도 까마귀들은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들을 터.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울러대는 까마귀들에, 여주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다 멈칫, 다시 손을 거두었다.

한서준

— 또 애꿎은 생명 없애는 거 아니지? 한 바퀴 돌았으면 얼른 돌아와.

김여주

"…또라니. 누가 보면 진짜 없앤 줄 알겠어."

한서준

— 너, 허구한 날 손 뻗어서 위협하잖아. 바로 자책할 거면서, 무슨.

김여주

"…됐어. 앞으로는 확실한 신고 아니면 받지 마. 오랜만에 일찍 자려고 했더니 이게 뭐야."

여주가 무엇을 하는지 귀신 같이 알아채 빨리 돌아오기나 하라는 서준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렸다.

서준과 여주가 함께 한 지 어언 3년째. 서준의 말에서 여주를 잘 아는 듯한 말투가 나왔다.

그런 그를 알기에 여주는 뜸을 들이며 말을 돌렸고, 지금 바로 돌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인이어의 전원을 껐다.

김여주

"하아…."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장소, 매일 같은 일.

6살 때부터 이곳에 지내 온전히 자유란 것을 누려본 적 없는 여주는 익숙하고도 지겨운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밖을 대충 돌아보고 온 여주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서준에게 인사도 없이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검은 소파, 검은 벽지, 검은 테이블, 검은 의자까지.

책이나 화분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블랙인 이곳은 여주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서준

"뭐 수상한 점은 없었고?"

김여주

"다 알면서 묻지 말지? 힘 빠지는데."

발 밑에 있는 담요를 끌어와 얼굴까지 다 덮는 여주를 보며 서준은 보고 있던 책을 탁 덮었다.

한서준

"잠깐 일어나 봐. 할 얘기 있어."

김여주

"중요한 얘기 아니면 내일 해. 나 지금 피곤해."

한서준

"중요한 얘기야. 잠깐이면 되니까 일어나 봐."

서준은 책 사이에 껴 두었던 서류를 꺼내 여주의 바로 앞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누워있던 여주는 서준의 인기척을 느끼고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여주의 시선이 향한 곳은, 꽤 두께가 있는 서류뭉치들.

이게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니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턱을 까딱인다.

한서준

"이번에 우리 학교로 전학오는 애들 중에 네가 알아야 하는 애들 정보."

김여주

"뭔 애들이 이렇게 많이 와. 학교가 폭파되기라도 했나 봐?"

한서준

"어. 폭파됐어. 그래서 다 우리 학교로 넘어오는 거잖아. 뉴스도 안 보고 사냐?"

김여주

"…뭐?"

뭐 이런 신박한 개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거지.

구라치지 말라며 웃어넘기려 했는데, 서준이 서류나 보라며 손짓한다.

한서준

"드디어 반정부가 미쳤어. 국가 몰래 생체실험이라도 했는지 동물들이 능력을 쓰면서 북쪽 특수학교 학생들을 공격했다고 하더라고. 그 과정에서 학교가 폭파됐고."

김여주

"민간인이랑 특수학교 학생들은 건들지 않기로 한 거, 암묵적인 룰 아니었어?"

한서준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거지. 반정부군이 선을 넘기 시작한 거야."

서준의 말을 들으며 여주는 조용히 서류를 넘겨 읽었다.

남학생 일곱 명의 이름과 나이, 능력, 특이 사항 등 여주의 입장에선 별로 궁금하지 않은 정보들이 쓰여있었다.

하지만, 그런 여주의 눈을 사로잡은 무언가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클래스.

이 서류에 담긴 일곱 명 모두가, S클래스였다.

김여주

"…뭐야, 얘네는?"

이 정도 거물 급이면 수상하지 않을 래야 수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에 던지듯 올려놨다.

한서준

"너와 같은 S클래스. 걔네, 북쪽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애들이래."

김여주

"그니까, 얘네들 정보를 왜 나한테 주냐고."

한서준

"그야, 우리 가디언에 들어올 거니까."

김여주

"…뭐?"

가디언. 특수학교 학생들 중에서 고위 클래스의 학생들을 뽑아 만든 단체.

A급 이상이라면 자신이 원할 때 가디언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자신이 원할 때 가디언을 나갈 수 없다.

가디언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죽음 뿐.

반정부군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가디언의 숙명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디언에 북쪽 S클래스 애들이 합류하다니….

분명 국가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지만, 열네 살 때부터 가디언의 일을 시작한 여주에게는 끔찍한 소리였다.

김여주

"…걔네들이 들어오고 싶대?"

한서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 뿐인데."

김여주

"…선배가 좀 말해주면 안 돼? 가디언 부장이잖아."

한서준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나는 그냥 허수아비 부장이지. 실질적으로 일은 다 너가 하고 있잖아."

김여주

"…그래도."

한서준

"그리고, 국가에서 그런 인재들을 놔주겠냐? 무려 S클래스야, S클래스. 전세계에 1% 정도 있을까 말까 한 애들이 일곱 명이나 된다고."

김여주

"……."

한서준

"뭐… 너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에 여덟 명이지만."

서준의 말을 끝으로 여주는 양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안다. 다 알고 있다. 북쪽 애들이 가디언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국가에서는 S클래스인 나와 그 애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서준에게는 힘이 없다는 것도. 다 안다.

지금도 저렇게 틱틱대며 말하지만 서준이 자신을 꽤나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더 무리하게 말할 수 없었다.

김여주

"…알겠어. 내일 아침에 대충 읽어 볼게. 피곤해. 잘래."

여주는 어두운 낯빛으로 다시 담요 안으로 몸을 숨겼다.

서준은 그런 여주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편히 쉬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여주에게 서준이 해 줄 수 있는 건… 혼자 있을 시간을 주는 것뿐이었다.

한서준

"…잘 자. 내일 아침은 호출 없을 테니까 바로 교실로 가고."

조금 잠긴 서준의 목소리와 함께 가디언실의 문이 닫혔다.

다음 날, 서준의 말대로 교실에 온 여주는 자리에 앉자마자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오랜만에 교실에 온 반 분위기는 시끄럽고, 시끄러웠으며, 정말 시끄러웠다.

하긴, 학생들 입장에서만 봐도 조금 이해는 갔다.

학교 내에 유일했던 S클래스 김여주와, 이번에 학교가 합쳐져 전학오게 된 북쪽 S클래스 세 명이 같은 반이라니.

한 반에 S클래스가 네 명이나 생기자 반 애들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애들까지도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

김여주

"하아…."

여주는 한숨을 쉬며 창가 쪽에 앉아있는 소문의 인물 세 명을 바라봤다.

왼쪽부터 김태형, 박지민, 전정국이었던가.

밤새 잠이 오지 않아 서류만 붙들고 읽었더니 어느새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버렸다.

지금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저들이 가디언이 된다면 얼마나 더 난리가 날까.

벌써부터 한 5년은 늙은 것 같은 기분에 여주는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김태형 image

김태형

"……."

박지민 image

박지민

"뭐 하냐, 김태형."

김태형 image

김태형

"저기, 쟤 맞지? 남쪽에 유일한 S클래스. 이름이… 김여주였던가."

태형의 시선 끝에, 눈을 감으며 노래를 듣고 있는 여주의 모습이 보였다.

지민은 태형을 따라 여주를 바라보며 이내 시선을 돌리며 "평범하게 생겼네."라 답했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국은 묵묵히 휴대폰 게임만 할 뿐이었다.

김태형 image

김태형

"우리 말고 S클래스를 보는 건 처음인데. 어때, 전정국. 좀 뭔가 색다르지 않아?"

전정국 image

전정국

"……."

김태형 image

김태형

"아, 뭔가 색다르지 않냐고. 새끼야."

전정국 image

전정국

"……."

태형의 반복된 물음에도 여전히 답이 없는 정국.

이런 정국을 평소에도 겪어 왔던지라 태형은 정국의 머리를 가볍게 한 대 치곤 다시 시선을 여주에게로 돌렸다.

"음, 김여주라…."

"까칠해 보이는 친구네–."

바람을 쐐며 다른 이들에게는 한톨의 관심도 없다는 여주의 태도에, 태형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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