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

08 La lame qui souffle lentement (1)

***

햇빛이 잘 드는 어느 SVT 기업의 부회장실.

한 남성이 넥타이를 고쳐 매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싫증이 날 무렵 누군가 껄렁대며 문을 활짝 열고는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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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뱀파이어한테 이런 대낮에 오라 가라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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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전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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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1분 지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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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원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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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나 낮에는 자야 돼서 깨어 있으면 인내심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거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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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내 심기 거스르지 마.

그는 잠을 자지 못 해 예민함의 극치를 찍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장난기 가득했던 그의 눈에는 지금 살기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원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를 마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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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다음부터는 늦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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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난 낮에도 밤에도 인내심이 좋지 않아, 민규야.

둘 사이에 짙은 정적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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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원우야.

민규는 이제 귀찮고 빨리 자고 싶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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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왜 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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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뭐 윤정한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라도 생각해 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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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어.

졸려서 풀렸던 민규의 눈이 번쩍 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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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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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윤정한이 사람을 데리고 다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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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꽤 아끼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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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그래서 그 여자를 인질로 삼는 게 어떨까 싶은데.

금방 호기심을 담은 민규의 눈빛은 식고, 그는 어느새 원우의 멱살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는 역정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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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내가 바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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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계속 윤정한 주위만 맴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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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그 여자를 먼저 발견한 건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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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근데 윤정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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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홍지수를 인질로 잡았는데도 눈 깜빡 안 하던 윤정한이 그깟 인간 하나 잡는다고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것 같아?

원우는 멱살을 잡혔음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를 하지 않은 채 침착하게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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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뱀파이어인 윤정한이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이유가 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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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그 사람한테 뭔가 특별한 피를 받고 있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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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그러면 그 특별한 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응은 좀 하지 않겠어?

민규는 틀어쥐었던 원우의 멱살을 내팽개치듯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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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여자랑 조금만 가까워져도 화를 냈던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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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바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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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근데 이런 얘기할 거면 밤에 해도 되잖아.

또 다시 민규의 눈빛에 짜증이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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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내가 오늘 밤에 회장님이랑 약속이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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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너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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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뭐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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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아버지는 아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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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이런 대기업 회장님한테 입양된 누구는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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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부회장 자리에서 누굴 개처럼 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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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괜한 트집 잡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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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내 힘으로 올라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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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예, 그러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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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그보다 난 널 딱히 개처럼 부린 적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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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윤정한이 홍지수 부리는 것처럼.

민규는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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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하긴, 홍지수는 개가 맞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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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윤정한을 절대 못 거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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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근데 걔는 개처럼 굴러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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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윤정한의 피를 받고 다시 살아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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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너도 내 덕분에 살았으니까 개처럼 일해 볼래?

민규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원우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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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인간 주제에 까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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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농담도 못 하나.

원우는 여전히 무표정인 얼굴로 제 자리인 듯한 의자에 편하게 기대며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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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이제 그만 가라, 민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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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졸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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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안 그래도 가려고 했다~

그는 껄렁대며 부회장실을 나간다.

부회장실에 혼자 남은 원우는 어쩐지 생각에 잠긴 듯하다.

아마 윤정한의 약점일 수도 있는 그 여자를,

이여주를 어떻게 인질로 잡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

***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점심시간즈음에 일어났던 여주는 티비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에 든 듯하다.

이여주

뭐야, 벌써 저녁이야……?

부스스 일어난 여주는 아득히 깜깜한 창밖을 보며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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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방금 일어난 거예요, 여주 씨?

계속 방에만 있다가 저녁 시간이 되니 거실로 나온 지수가 어쩐지 부스스하고 눈이 자꾸만 감기는 여주에게 다가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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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혹시 당신도 뱀파이어인데 뭐 숨기고… 그러는 거예요?

이여주

전혀요.

이여주

전 사람이에요.

이여주

근데 그냥 요즘 들어 잠이 많아진 것뿐이에요.

여주는 아직도 졸린지 하품을 하며 말을 이어간다.

이여주

원래는 안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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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미인은 잠이 많다잖아.

방금 잠에서 깬 정한이 여주의 옆에 앉는다.

그러자 여주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에너지를 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이젠 거의 일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깨달은 여주는 헛웃음만이 나온다.

이여주

(진짜 에너지만 공급하는 공장같네.)

그래도 여주는 지금이 편하고 좋은 듯하다.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는 사채업자도 없고

외롭지도 않으니까.

절대 그들과 친해지고 싶지도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았던 여주는 어느새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익숙해졌다.

그들이 없으면 약간의 허전함은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