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
10 Lame à souffler lentement (3)


***


홍지수
전 원래 인간이었어요.

지수의 시선은 여전히 여주의 눈을 피하고 있다.

아마 그는 그닥 말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할 때 상대방의 시선을 마주보지 못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홍지수
거의 죽어가던 순간에 그분의 피를 받고 살아났고,


홍지수
뱀파이어가 된 거예요.


홍지수
그래서 전 그분의 모든 말을 거스르지 못 합니다.

많은 것들이 생략된 간단한 얘기다.

그럼에도 지수는 본인의 이야기 자체를 꺼내는 것을 탐탁해 하지 않는 듯하다.


홍지수
이 이야기는 뭐 중요한 건 아니고,


홍지수
우선 그분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이여주
그래요.

여주는 거의 죽어가던 상태였다던 그에게 일말의 위로 따위는 보내지 않는다.

쓸데없는 동정이란 걸 여주 본인도 알기에.

무엇보다도 자기 또한 죽음의 문턱을 사채업자들 덕에 드나든 적이 많으니,

괜한 위로는 자신의 초라함을 더욱 느끼게 해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둘은 아무 말 없이 긴 정적 속에서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어느때보다 긴 낮이다.

***


윤정한
둘이 거실에서 뭐 해?


윤정한
이런 심각한 분위기로.

정한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나른하게 말한다.

그런 그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면 아마 금방 살기로 가득 찬 눈빛을 할 것이다.

그리고 지수를 죽일 것처럼 쳐다보며 왜 막지 못 했냐고 역정을 내겠지.

그 모든 것을 예상한 지수는 잠시 머뭇거리며 아랫입술을 질근 씹는다.


윤정한
뭐 할 말 있어?

무언가 얘기할 게 있어 보이는 지수에게 정한이 먼저 말을 건넨다.

더 이상 머뭇거리기만 할 수는 없어 지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뗀다.


홍지수
아까 김민규가 찾아왔어.


윤정한
김민규?


윤정한
걔가 왜?

한껏 나른하게 풀렸던 얼굴에 짜증이 번진다.


홍지수
…그게.


윤정한
지수야, 나 그렇게 뜸들이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홍지수
김민규가 여주 씨의 비밀을 알게 됐어.


홍지수
김민규가 여주 씨의 손을 낚아채는 걸… 막지 못 했어.

정한은 아무 말 없이 지수를 차갑게 식은 눈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길고 깊은 정적이 묘한 긴장감을 타고 흐른다.


윤정한
그래서 걔가 뭐래?


홍지수
여주 씨의 비밀을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퍼트리는 걸 막고 싶다면 먼저 연락하래.


윤정한
그래?


윤정한
그럼 직접 찾아가 줘야지.

예상과는 다른 그의 반응에 지수는 당황한다.


홍지수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화 안 내?

정한은 지수를 지나치다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다.


윤정한
아가씨 여기 있잖아.


윤정한
안 잡혀갔으면 됐어.

점점 긴장감이 식어갈 무렵이다.


윤정한
근데


윤정한
만약 아가씨 잡혀갔으면…


윤정한
넌 죽었을 거야, 아마.

정한은 지수에게 차가운 눈빛으로 곁눈질하다 그대로 지수를 지나쳐 현관문으로 향한다.

이곳엔 정한이 거실 바닥을 제 슬리퍼로 쓸며 걸어가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그 소리는 지수에게 더한 공포감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눈앞에서 숨죽이고 지켜본 여주에게도.

***

***


전원우
이건 무슨 경우 없는 상황이야?


전원우
정한 형.

정한은 원우의 집 앞에서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뿌연 연기를 내뿜는다.

그러다 원우를 발견하자 담배를 땅바닥에 대충 내팽개치듯 처박고는 성큼성큼 다가간다.


윤정한
경우 없는 상황은 네가 만들었지.


전원우
난 분명히 연락하라고 전하라고 했는데.


전원우
설마 김민규가 내 집까지 찾아오라고 했어?


윤정한
그럴리가.


윤정한
그냥 내가 온 거야.


윤정한
네가 날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정한이 비릿하게 웃는다.


윤정한
이런 방법까지 써가면서.


전원우
근데 형은 지금 우리한테 화낼 자격이 있나?

그동안 아무런 미동도 없었던 원우의 눈동자에 살기가 서린다.

그러자 차갑기만 했던 정한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가 이렇게나 당황했던 적이 있었나,

정한은 완전히 원우에게 동요하고 있었다.


전원우
지금 누가 안 보이지 않아?


윤정한
…뭐가?


전원우
맨날 나랑 붙어다니던 김민규가 안 보이잖아, 형.


전원우
그리고 지금 그 여자는 형 집에 지수랑만 있을 테고?

정한은 눈을 부릅뜨며 원우의 멱살을 틀어쥔다.


윤정한
여주 씨를 어떻게 할 작정이야.


윤정한
설마 인질로 삼으려고?

침착한 살기를 띠웠던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들끓는다.

그러자 원우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친다.


전원우
형, 왜 이렇게 단순해졌어.


전원우
내가 진짜로 김민규 보냈을까 봐?

그 말에 정한은 조금씩 분노를 삭이며 틀어쥐었던 멱살을 거칠게 놓는다.

정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원우는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며 말한다.


전원우
진짜 웃기다.


전원우
겨우 말 한마디로 그 여자가 위험한 줄 알고 그렇게나 화를 내고.


전원우
우리는


전원우
버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