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droit où j'ai revu mon ex-petit ami était la même scène ?
미니몽
17 1
Kim So-jung
일곱 번째 밤

10:24 PM
[2020년 3월 9일 월요일, 여자친구 제1아지트 1층 회의실]
쾅-!
또다시 거대한 충격음이 울렸다.
천장에 달린 조명이 흔들리고, 선반 위의 유리컵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어둠 속에서 붉은 비상등만 깜빡였다.
경보음 : 외부 침입 감지. 외부 침입 감지.
혜정은 소정의 손을 붙잡은 채 얼어붙었다.

이혜정
밖에 누가 있는 거에요?
소정은 대답하지 않고 회의실 문 쪽을 바라봤다.
예린이 허리 뒤쪽에서 접이식 곤봉을 꺼냈다.

정예린
소정 언니, 정문 쪽은 제가 확인할게요.

김소정
작은비랑 같이 가.

김소정
절대 정문 밖으로는 나가지 말고.

황은비
네.
작은비가 예린의 뒤를 따라가려 하자 예원이 팔을 붙잡았다.

김예원
작은비야.

황은비
왜?
예원이 작은비의 귀 뒤쪽에 작은 통신기를 끼워주었다.

김예원
다치지 말고.
작은비는 잠시 예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황은비
나 안 다쳐.

김예원
아까도 그렇게 말했잖아.

황은비
아까는 안 다쳤잖아.

김예원
그러니까 이번에도 다치지 말라고.
작은비가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은비
알았어.
예린과 작은비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큰은비는 태블릿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정은비
소정 언니, 외부 카메라가 전부 먹통이에요.

정은비
전원이 끊긴 게 아니라 누가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어요.

최유나
비상 발전기는?

정은비
작동은 하는데 보안망이 잠겨서 전환이 안 돼.

김소정
풀 수 있어?

정은비
해야죠.
큰은비는 긴장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정은비
제가 못 풀면 오늘부터 정보 담당 그만둬야겠네요.

최유나
그런 말 하지 마.
유나가 큰은비의 옆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최유나
전력 계통은 내가 볼게.

최유나
넌 침입 경로 찾아.

정은비
응.

정은비
유나야, 지하 배전반부터 확인해줘.
소정은 혜정의 손을 놓고 코트 안쪽의 검은 장부를 확인했다.

김소정
예원아, 혜정이 데리고 지하 대피실로 내려가.

이혜정
잠깐만요.
혜정은 자신도 모르게 소정의 소매를 붙잡았다.
소정이 내려다보자 혜정은 뒤늦게 손을 놓았다.

이혜정
죄송해요.

이혜정
그런데 언니는요?

김소정
난 여기 있을 거야.

이혜정
밖에 위험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김소정
그래서 내가 남는 거야.
혜정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원이 혜정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김예원
가자.

김예원
아래가 더 안전해.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예린의 목소리가 통신기로 들려왔다.
정예린 : 소정 언니, 정문 셔터가 거의 뜯겼어요.
정예린 :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이에요.
황은비 : 뒤쪽 담장에도 두 명 있어요.
황은비 : 내부 구조를 아는 것 같아요.
소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김소정
구조를 안다고?
황은비 : 네.
황은비 : 사각지대만 골라서 움직여요.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혜정은 멤버들의 표정을 차례로 살폈다.
누군가 이 집의 구조를 백야에게 알려준 것이 분명했다.
*
10:29 PM
[제1아지트 1층 복도와 현관]
현관 셔터가 안쪽으로 크게 휘어져 있었다.
예린은 벽에 몸을 붙인 채 밖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정예린
작은비야, 왼쪽 둘 보여?

황은비
네.

황은비
오른쪽 기둥 뒤에도 한 명 있어요.

정예린
내가 앞을 막을 테니까 넌 뒤쪽으로 돌아.

황은비
언니 혼자 세 명을요?
예린이 작게 웃었다.

정예린
왜?

정예린
나 못 믿어?

황은비
그게 아니라 다치시면 소정 언니한테 제가 혼나잖아요.

정예린
그럼 안 다치게 도와줘.
셔터 아래쪽으로 검은 장갑을 낀 손이 들어왔다.
예린은 곤봉 끝으로 그 손을 강하게 밀어냈다.
침입자
윽!

정예린
남의 집에 들어올 때는 초인종부터 누르는 거야.
밖에서 욕설이 들렸다.
곧이어 셔터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작은비는 신발장에서 공구함을 꺼내더니 굵은 철선을 셔터 손잡이에 빠르게 감았다.

정예린
그걸 언제 챙겼어?

황은비
집에 있는 건 다 어디에 쓰는지 알아둬야죠.

정예린
역시 생존력 하나는 최고네.

황은비
칭찬은 나중에 해주세요.
작은비가 철선을 난간에 고정하자 들리던 셔터가 중간에서 멈췄다.
예린은 생긴 틈 사이로 들어오려는 침입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남자가 중심을 잃은 순간, 예린의 곤봉이 바닥을 내리쳤다.
쾅!
남자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정예린
다음에는 바닥 말고 다른 데 맞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건물 뒤편에서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비의 표정이 굳었다.

황은비
언니, 뒤로 들어왔어요.

정예린
회의실로 돌아가자.
두 사람이 몸을 돌리는 순간, 통신기에서 큰은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은비 : 예린 언니, 2층 복도에 한 명 들어왔어요!

정예린
벌써?
정은비 : 그리고 그 사람, 바로 서재 쪽으로 가고 있어요.
작은비가 예린을 바라봤다.
검은 장부를 보관하던 금고가 있는 곳이었다.

황은비
처음부터 장부가 목적이었네요.
*
10:32 PM
[제1아지트 지하 대피 통로 입구]
예원은 벽장 안쪽의 숨겨진 버튼을 눌렀다.
책장이 옆으로 움직이며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이혜정
이런 곳이 있었어요?

김예원
원래는 우리도 자주 안 써.
혜정이 계단을 내려가려던 순간, 2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
누군가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소정은 혜정을 자신의 뒤로 밀었다.

김소정
예원아, 먼저 내려가.

김예원
언니도 같이 내려오세요.

김소정
내가 막을 테니까 가.

이혜정
안 돼요.
혜정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혜정을 바라봤다.

이혜정
언니 혼자 남으면 안 되잖아요.

김소정
혜정아.

이혜정
저 때문에 온 사람들이면 제가 숨어 있는 동안 언니가 위험해지는 거잖아요.
소정은 잠시 혜정을 바라보다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김소정
잘 들어.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김소정
저 사람들은 너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소정은 코트 안쪽에 넣어둔 장부를 손으로 눌렀다.

김소정
이걸 찾으러 온 거야.

이혜정
제가 가져온 장부요?

김소정
그러니까 네 잘못 아니야.

이혜정
그래도 제가 안 가져왔으면-

김소정
그러면 저 사람들이 먼저 찾았겠지.
소정은 혜정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김소정
미안해할 시간 없어.

김소정
예원이 따라 내려가.
그때 복도 끝에서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손에는 짧은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침입자
장부 내놔.
소정이 혜정의 앞을 완전히 막아섰다.

김소정
자기 물건 찾겠다고 남의 집까지 쳐들어오는 게 너희 방식이야?
남자가 달려들었다.
소정은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남자의 손목을 쳐냈다.
쇠파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바로 소정의 어깨를 밀어 벽에 부딪치게 했다.

이혜정
언니!
혜정이 앞으로 나가려 하자 예원이 허리를 붙잡았다.

김예원
가면 안 돼!

이혜정
소정 언니가-

김예원
소정 언니 믿어.
소정은 남자의 팔을 잡아 비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 순간 남자의 주머니에서 작은 무전기가 떨어졌다.
무전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전기 : 목표는 여자애가 아니다.
무전기 : 장부만 회수해.
혜정의 시선이 무전기에 고정됐다.
'여자애가 아니다.'
그 말은 백야가 아직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모른다는 뜻이었다.
혜정은 무언가를 깨닫고 소정을 향해 외쳤다.

이혜정
소정 언니!

김소정
왜?

이혜정
저 사람들, 제가 누군지 아직 몰라요!
소정의 표정이 변했다.

이혜정
무전에서 여자애가 목표가 아니라고 했어요.

이혜정
제 얼굴은 봤어도 이름이나 집은 모르는 것 같아요.
소정은 쓰러진 남자의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김소정
예원아, 혜정이 데리고 내려가.

김소정
지금 당장.
이번에는 예원도 망설이지 않았다.

김예원
가자, 혜정아.
혜정은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봤다.
소정은 복도에 홀로 남아 무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
10:38 PM
[제1아지트 지하 통제실]
지하 통제실은 여러 대의 모니터와 통신 장비로 가득했다.
큰은비는 화면을 빠르게 넘기고 있었고, 유나는 열린 배전함 앞에 앉아 전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은비
예원아, 소정 언니는?

김예원
위에 계셔요.

정은비
혼자?

김예원
금방 내려오실 거에요.
유나가 작은 드라이버로 전력 장치를 조정했다.

최유나
큰은비야, 30초 뒤에 보조 전력 들어갈 거야.

정은비
응.

정은비
들어오면 보안망부터 분리할게.
혜정은 통제실 구석에 서서 화면을 바라봤다.
먹통이던 카메라 몇 대가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는 현관에서 침입자들과 대치 중인 예린과 작은비가 보였다.
또 다른 화면에는 2층을 수색하는 복면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큰은비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멈췄다.

정은비
이상해.

최유나
왜?

정은비
이 사람들 움직이는 경로가 너무 정확해.

정은비
서재 금고뿐만 아니라 지하 통제실 위치도 알아.

김예원
여기까지 내려온다고요?

정은비
응.

정은비
계단 쪽 센서에 두 명 잡혔어.
혜정은 화면을 살피다가 한 남자가 벽 쪽을 더듬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손이 향하는 곳에는 대피 통로를 여는 버튼이 있었다.

이혜정
저 사람, 입구를 알아요.
큰은비가 화면을 확대했다.

정은비
어떻게 저 버튼 위치까지......
유나가 배전함 문을 닫으며 일어났다.

최유나
지금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최유나
탈출해야 해.
예원은 혜정을 바라봤다.

김예원
혜정아, 뛰는 데 문제없어?

이혜정
네.

이혜정
무릎은 괜찮아요.

김예원
안 괜찮으면 말해야 해.

이혜정
조금 아프지만 뛸 수 있어요.
유나가 혜정의 어깨에 자신의 겉옷을 걸쳐주었다.

최유나
밖에 비 와.

최유나
입고 있어.

이혜정
유나 언니는요?

최유나
난 차에 여분 있어.
큰은비가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했다.
꺼져 있던 아지트의 조명이 한꺼번에 켜졌다.
동시에 현관과 2층 복도에서 방화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정은비
됐어!
큰은비가 짧게 환호했다.

정은비
일단 침입자들 동선은 끊었어.

정은비
5분 정도는 벌 수 있어.

최유나
잘했어.

정은비
유나야, 나 지금 좀 멋있었지?

최유나
응.

최유나
나중에 충분히 말해줄게.

정은비
나중이 언제인데?

최유나
일단 살아서 나간 다음.
큰은비가 입을 다물었다.

정은비
그렇지.

정은비
그게 먼저지.
*
10:44 PM
[제1아지트 지하 통제실]
소정과 예린, 작은비가 통제실로 들어왔다.
예린의 소매가 조금 찢어져 있었고, 작은비의 손등에는 붉은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예원이 곧바로 작은비의 손을 잡았다.

김예원
다쳤잖아.

황은비
이건 다친 것도 아니야.

김예원
피나는데?

황은비
긁힌 거야.

김예원
긁혀서 피나는 걸 다쳤다고 해.

황은비
나중에 치료해.
소정은 멤버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김소정
다 모였지?

정예린
네.

정예린
뒤쪽 통로로 나가면 돼요.

정은비
언니, 셔터는 길어야 4분 버텨요.

김소정
제2아지트로 이동한다.
작은비가 혜정을 바라봤다.

황은비
쟤도 데려가요?
혜정의 표정이 굳었다.
소정이 작은비를 돌아봤다.

김소정
당연한 걸 왜 물어?

황은비
지금 저쪽에서 노리는 건 장부잖아요.

황은비
장부만 들고 가면 쟤는 여기에-

김소정
작은비야.
소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작은비는 입을 다물었다.

김소정
혜정이도 같이 간다.

황은비
네.
혜정은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예린이 혜정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예린
겁먹지 마.

정예린
작은비가 원래 말을 좀 세게 해.

황은비
예린 언니.

정예린
왜?

정예린
틀린 말 했어?

황은비
저 말 부드럽게 했는데요.

정예린
아까도 그 말 했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큰은비가 피식 웃었다.
소정은 비밀 통로의 철문을 열었다.
통로 끝에는 후문 밖 골목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김소정
예린이가 앞장서.

김소정
유나랑 큰은비가 중간, 예원이랑 혜정이는 뒤쪽.

김소정
작은비는 나랑 마지막에 간다.

이혜정
저도 할 수 있는 거 없어요?
소정이 혜정을 바라봤다.

이혜정
계속 보호만 받는 건 죄송해서요.

김소정
지금 네가 할 일은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따라오는 거야.

이혜정
그게 도움이 돼요?

김소정
많이.
소정이 혜정에게 손전등을 건넸다.

김소정
앞사람 놓치지 마.
*
11:03 PM
[아지트 뒤편 골목 이동 차량 내부]
일곱 사람은 비를 맞으며 골목 끝에 세워둔 차량 두 대에 나눠 탔다.
예린이 운전석에 앉고 소정이 조수석에 탔다.
혜정과 예원, 큰은비가 뒷좌석에 앉았다.
유나와 작은비는 뒤따르는 차량에 탔다.
차량이 출발하자마자 멀리서 제1아지트의 경보음이 다시 울렸다.
혜정은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뒤를 돌아봤다.

이혜정
집을 저렇게 두고 가도 괜찮아요?

정예린
괜찮진 않지.
예린의 평소 밝은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정예린
그래도 집보다 사람이 먼저잖아.
큰은비는 노트북으로 추적 신호를 확인했다.

정은비
현재까지 따라오는 차는 없어요.

김소정
계속 확인해.

정은비
네, 언니.
예원은 구급상자를 꺼내 혜정의 무릎을 살폈다.

김예원
바지 걷어볼게.

이혜정
괜찮아요.

이혜정
예원 언니도 피곤하실 텐데......

김예원
피곤한 거랑 치료하는 건 별개야.

이혜정
작은비 언니 손부터 봐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원은 잠시 혜정을 바라봤다.

김예원
너도 다쳤잖아.

이혜정
그래도 저는 많이 안 다쳤어요.
조수석에 있던 소정이 뒤를 돌아봤다.

김소정
혜정아.

이혜정
네?

김소정
남 걱정하기 전에 네 상태부터 말해.

이혜정
정말 괜찮아서......

김소정
네가 괜찮다고 몇 번 말했는지 알아?
혜정은 입을 다물었다.
큰은비가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었다.

정은비
제가 들은 것만 여섯 번?

정예린
난 일곱 번 들은 것 같은데.

이혜정
그렇게 많이 말했어요?
예원이 작게 웃었다.

김예원
응.

김예원
그러니까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혜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릎을 내려다봤다.

이혜정
조금 많이 아파요.

김예원
잘했어.
예원은 상처를 소독한 뒤 붕대를 감아주었다.
혜정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몸의 긴장이 풀리자 갑작스러운 피로가 밀려왔다.
차가 커브를 돌면서 혜정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혜정의 머리가 소정의 자석 뒤쪽에 가볍게 부딪쳤다.
소정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돌려 혜정의 머리 아래에 자신의 접은 코트를 받쳐주었다.
예린이 룸미러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정예린
소정 언니.

김소정
왜?

정예린
아무것도 아니에요.
예린은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띤 채 다시 앞을 봤다.
*
12:18 AM
[2020년 3월 10일 화요일, 여자친구 제2아지트 거실]
제2아지트는 오래된 2층 주택이었다.
외관은 평범했지만 내부에는 필요한 물품이 미리 정리되어 있었다.
혜정은 거실 소파에 앉아 여섯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유나는 창문과 출입문을 확인했고, 큰은비는 새로운 보안망을 연결했다.
예원은 작은비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김예원
손 줘.

황은비
진짜 괜찮아.

김예원
그 말 오늘 금지.

황은비
왜?

김예원
혜정이도 너무 많이 했고, 너도 너무 많이 했어.
큰은비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끼어들었다.

정은비
맞아.

정은비
오늘부터 괜찮다는 말은 하루 세 번까지만 하자.

최유나
그걸 왜 횟수로 정해?

정은비
많이 하면 의미가 없어지니까.

최유나
큰은비 넌 괜찮아?
큰은비는 잠시 멈췄다.

정은비
...... 그럼 나 오늘 한 번 쓴 거야?
유나가 작게 웃었다.

최유나
응.

최유나
두 번 남았네.
긴장으로 굳어 있던 혜정의 입가에도 처음으로 작은 웃음이 번졌다.
소정은 거실 한쪽에서 검은 장부를 펼쳐 보고 있었다.
혜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소정에게 다가갔다.

이혜정
소정 언니.

김소정
응.

이혜정
아까 제가 무전에서 들은 말이 도움이 됐어요?

김소정
도움 됐어.

이혜정
그러면 백야는 아직 제가 누군지 모르는 거죠?

김소정
확실하진 않아.

이혜정
집에 연락은 언제 할 수 있어요?
소정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혜정의 표정에 불안이 번졌다.

이혜정
엄마가 걱정하실 거에요.

김소정
큰은비가 네 휴대전화부터 확인한 다음 연락하게 해줄게.

이혜정
지금 하면 안 돼요?

김소정
네 전화에 추적 장치가 심어졌을 수도 있어.

이혜정
그럼 저는 언제 집에 갈 수 있어요?
소정이 장부를 덮었다.

김소정
적어도 오늘은 안 돼.

이혜정
저를 계속 여기에 두시겠다는 거에요?

김소정
네가 위험하지 않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만.
혜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혜정
아까는 저 사람들이 제 신원을 모른다고 했잖아요.

김소정
지금부터 찾기 시작하겠지.

이혜정
그래도 이렇게 아무 설명도 없이-

김소정
설명하면 받아들일 수 있어?
혜정은 말을 멈췄다.
소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김소정
미안해.

김소정
겁주려는 게 아니야.

이혜정
저도 언니들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요.
소정이 혜정을 바라봤다.

이혜정
저를 구해주셨고, 다들 다치면서도 지켜주셨으니까요.

이혜정
그런데 무서운 건 사실이에요.

김소정
알아.

이혜정
저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냥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혜정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소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혜정의 젖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정리해주었다.

김소정
오늘 밤만 버텨.

이혜정
그다음에는요?

김소정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
*
02:20 AM
[제2아지트 주방과 거실]
큰은비가 보안 점검을 끝낸 뒤에야 일곱 사람은 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컵라면과 편의점 주먹밥, 생수가 놓였다.
예린은 젓가락으로 라면을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예린
오늘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네.

최유나
언니, 낮에는 드셨어요?

정예린
응.

정예린
소정 언니가 회의 전에 김밥 사주셨어.

정은비
저는 두 줄 먹었어요.

황은비
언니가 제 것까지 먹었잖아요.

정은비
네가 안 먹는 줄 알았지.

황은비
화장실 다녀온 거였어요.

정은비
그러니까 표시를 해놨어야지.

황은비
김밥에 이름을 써놔요?

김예원
다음에는 포스트잇 붙여놓자.

황은비
너까지 왜 그래.
혜정은 컵라면 뚜껑만 만지작거렸다.
유나가 혜정 쪽으로 참치 주먹밥을 밀어주었다.

최유나
먹어.

이혜정
입맛이 없어서요.

최유나
그래도 조금은 먹어야 약도 먹지.

이혜정
약이요?
예원이 작은 진통제를 꺼냈다.

김예원
무릎 아프다고 했잖아.
혜정은 여섯 사람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주먹밥 포장을 열었다.

이혜정
다들 원래 이렇게 같이 밥 드세요?

정은비
시간 맞으면.

정예린
보통은 소정 언니가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

김소정
누가 들으면 내가 밥 못 먹게 하는 줄 알겠다.

정예린
다 같이 먹자는 좋은 뜻이시죠.

정은비
근데 소정 언니가 제일 늦게 오시잖아요.

최유나
그래서 기다리다 보면 배고파.

김소정
앞으로 먼저 먹어.

정은비
진짜요?

김소정
응.

정예린
큰은비야, 저 말 믿으면 안 돼.

정예린
먼저 먹으면 서운해하실걸?

김소정
예린아.

정예린
죄송합니다.
예린은 사과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혜정은 그 모습을 보며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무서운 조직의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평범한 가족 같았다.
혜정은 주먹밥을 한입 먹었다.

정은비
맛없어?

이혜정
아니요.

이혜정
맛있어요.

황은비
아까부터 계속 눈치 보는데, 그러지 마.
혜정이 작은비를 바라봤다.

황은비
먹으라고 줬으면 그냥 먹어.

황은비
미안해하지 말고.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작은비는 혜정 쪽으로 젓가락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이혜정
감사합니다, 작은비 언니.
작은비의 손이 멈췄다.

황은비
작은비 언니?

이혜정
다들 그렇게 부르시길래......

이혜정
싫으세요?

정은비
난 큰은비 언니겠네?

이혜정
네.

이혜정
괜찮으시다면요.
큰은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비
난 좋은데?
작은비는 라면을 한입 먹으며 시선을 피했다.

황은비
마음대로 해.
예원이 혜정에게 작게 속삭였다.

김예원
좋다는 뜻이야.

황은비
다 들려.
*
02:42 AM
[제2아지트 2층 손님방]
간단히 샤워를 마친 혜정은 예원이 준비해준 큰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예원은 혜정의 무릎과 손목을 다시 치료했다.

김예원
내일 아침에는 멍이 더 진해질 수도 있어.

이혜정
네.

김예원
어지럽거나 속 안 좋으면 바로 불러.

이혜정
예원 언니도 이제 주무세요.

김예원
응.

김예원
너 자는 거 보고.
혜정이 이불을 덮자 예원은 침대 옆 조명을 약하게 줄였다.

이혜정
예원 언니.

김예원
왜?

이혜정
다들 정말 안 주무시는 건 아니죠?
예원이 눈을 깜빡였다.

이혜정
밤에 계속 이런 일을 하시면 언제 주무시나 해서요.
예원이 작게 웃었다.

김예원
우리도 자.

김예원
오늘이 특별한 거야.

이혜정
다행이에요.

김예원
걱정했어?

이혜정
조금요.

김예원
오늘은 다들 새벽에 잘 거야.

김예원
내일은 늦게 일어날 거고.
그때 열린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김소정
예원아, 작은비 손 좀 다시 봐줘.

김예원
네, 언니.
예원은 구급상자를 들고 방을 나갔다.
소정은 문을 닫으려다가 혜정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혜정
소정 언니.

김소정
왜?

이혜정
아까 한 말......

이혜정
믿어도 돼요?

김소정
무슨 말?

이혜정
저를 살려주겠다고 한 거요.
소정은 잠시 혜정을 바라봤다.
그리고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김소정
응.

이혜정
언니가 위험해져도요?

김소정
그런 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이혜정
왜요?
소정은 대답 대신 혜정의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려주었다.

김소정
자.

김소정
오늘 10시까지는 아무도 안 깨울 거야.

이혜정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김소정
불 켜둘까?

이혜정
조금만요.
소정은 침대 옆 조명을 그대로 둔 채 문 쪽으로 걸어갔다.
혜정은 멀어지는 소정의 등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이혜정
언니.
소정이 다시 돌아봤다.

이혜정
오늘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소정의 표정이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

김소정
잘 자, 혜정아.

이혜정
안녕히 주무세요.
문이 조용히 닫혔다.
혜정은 이불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낯선 방과 낯선 사람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검은 장부.
눈을 감으면 주차장에서 자신을 붙잡았던 남자와 깨진 유리창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보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손을 놓지 않았던 소정의 모습이었다.
*
03:20 AM
[제2아지트 1층 임시 통제실]
혜정이 잠든 뒤, 소정은 임시 통제실에서 검은 장부를 다시 펼쳤다.
큰은비는 피곤한 얼굴로 화면을 확인했고, 유나는 따뜻한 차 세 잔을 가져왔다.

최유나
소정 언니, 이제 조금이라도 주무세요.

김소정
이것만 보고.

정은비
언니, 그 말 지난 한 시간 동안 세 번 하셨어요.

김소정
그래?

최유나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최유나
내일 혜정이한테도 다시 물어봐야 하잖아요.
소정은 장부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 순간 소정의 손이 멈췄다.
지금까지 비어 있던 마지막 장 한쪽에 희미한 글씨가 나타나고 있었다.
습기에 젖으며 드러난 문장이었다.
'장부를 읽을 수 있는 일곱 번째 사람이 열쇠다.'
큰은비가 문장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정은비
일곱 번째 사람......

정은비
혜정이를 말하는 걸까요?
유나는 2층을 올려다봤다.

최유나
우연히 장부를 주운 사람이 어떻게 열쇠가 될 수 있어?
소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장부를 덮은 뒤, 혜정이 잠든 방이 있는 2층을 바라봤다.
단순히 잘못된 장소에 들어온 목격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야는 장부를 되찾기 위해 여자친구의 아지트까지 공격했다.
그리고 장부는 일곱 번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정의 눈빛이 깊어졌다.

김소정
내일부터 전부 다시 확인해.

정은비
혜정이에 대해서도요?
잠시 침묵하던 소정이 낮게 대답했다.

김소정
응.
소정은 장부 위에 손을 올렸다.

김소정
저 아이가 대체 누구인지.
2. 침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