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1화 - 프롤로그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현관 앞에 도착하고도 한참 동안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휴대전화에는 확인하지 않은 연락이 쌓여 있었고, 손에는 아빠의 유품이 든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사흘 동안 울고, 인사하고, 또 울었다. 정작 관이 화장장 안으로 들어갈 때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친척들은 이제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이제 집에 가면 정말 끝이었다.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손이 몇 번이나 미끌어졌다. 대여섯번은 틀린 끝에, 현관문이 열렸다.

 

불이 켜져 있었다. 분명 끄고 나갔던 거실 등이었다.

 

 

“……누구 있어요?”

 

 

너무 울어 몽롱한 기운 속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문을 닫지 않은 채 안을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친척 중 누군가 먼저 와 있는 줄 알았다. 한 손으로 눈을 비비고 거실을 보니, 늘 깨끗하게 걸레질이 되어있던 원목의 마루가 온갖 발자국으로 더럽혀져있었다.

 

섬찟한 기운이 올라오기도 전에, 탁! 하는 소리가 났다. 긴장감에 손에서 종이가방이 미끄러졌다. 안에 들어 있던 손목시계와 사진, 온갖 잡동사니들이 소란스럽게 바닥으로 쏟아졌다.

 

터벅, 터벅.

거실 안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머지않아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나보다 어려 보였다. 검은 옷을 입었지만 모자도,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침입한 것 치곤 되려 평온해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남자가 내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자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늦었네요.”

 

 

낮은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로는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발은 현관 안쪽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남자의 시선이 바닥에 쏟아진 유품으로 향했다.

 

 

“오늘 받은 물건 중에 열쇠 있었죠.”

 

 

남자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경계심이 잔뜩 선 나는 그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데, 남자는 내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도 대여섯걸음정도 떨어져있는 거리. 지금밖에 없어! 몸을 돌려 다급하게 문을 열려고 했으나,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손목이 꺾이고 등이 문에 부딪쳤다. 뒤통수까지 둔탁하게 울렸다.

 

 

“악…!!”

 

 

아파서 벌어진 입에서 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내 손목을 등 뒤로 붙잡았다. 몸을 비틀수록 팔이 더 꺾였다.

 

 

“놔, 놔주세요.”

“열쇠 어디 있어요?”

“무슨 열쇠인지 몰라요.”

“오늘 장례식장에서 받았을텐데.”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내 등 뒤에서부터, 귀를 지나 옆 얼굴까지.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곤 눈을 꼭 감았다.

 

 

“없어요. 그런 거!”

“거짓말하지 말고.”

“진짜, 진짜 없어요.”

 

 

남자의 손이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성적으로 더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주머니를 뒤지고, 목걸이를 한 것은 아닌지 목 뒤를 본다. 셔츠 포켓까지 구석구석. 내가 아무리 힘을 줘도 멈추지 않았다.

 

없다는 것을 안 건지, 남자는 한 손으로 내 양 손을 뒤로 결박하곤 현관문에 날 밀쳤다. 볼이 문에 붙어 눌렸다. 남자는 한 손으로 날 제압한 채, 바닥에 떨어져있는 상자를 발로 걷어냈다.

 

차례차례 서류나 사진들이 치워지곤, 가장 아래에 있던 흰 봉투가 드러났다.

 

아빠의 변호사가 날 따로 불러내서 건넨 봉투였다. 나는 그 안에서 작은 열쇠와 쪽지 한 장을 발견했었지.

 

내가 언젠가 열쇠를 주거든, 누구에게도 넘기지 마라.

 

그게 무슨 뜻인지 물을 사람은 이미 죽고 없었다. 남자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다시 문에 밀쳐졌다.

 

 

“……!”

“이건가본데.”

 

 

남자가 한 손으로 봉투를 투박하게 찢어내곤 열쇠를 꺼냈다. 고풍스러운 은색 열쇠였다.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려 두 눈을 꾹 감았다. 생각해내야돼. 저 열쇠를 안 줄 방법. 그리고, 내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열쇠, 가져가요.”

“…….”

“근데, 그건 알아둬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빙빙 도는 것 같은 때에, 나오는대로 말을 지껄였다.

 

 

“비밀번호가 있어요.”

“…….”

“나만 알고있는 여덟자리 비밀번호.”

“…….”

“…금고 비밀번호.”

 

 

철컥.

차갑고 묵직한 무언가가 옆 목에 닿았다. 식은땀이 이마와 목을 따라 흘러내렸고, 그 땀은 그 차가운 물체 위로 떨어진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총구였다. 이 남자는 총을 들고있다. 아니, 겨누고있다. 나에게.

 

 

“지금 나 죽이면 절대 못 알아내.”

“…….”

“여덟자리면 흥신소에서도 안 받아줄걸.”

 

 

목소리가 갈라졌다. 무서워서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남자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온몸의 근육에 힘을 줘 몸의 떨림을 가까스로 멈추자, 옆으로 인기척이 옮겨왔다. 남자는 얼굴만 내 옆으로 꺾어 날 쳐다보고있었다.

 

 

지금 거짓말인거 들키면 무조건 죽어. 나는 당돌한 눈을 하고선 남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시선을 피하면 거짓말이라는 걸 들킬거야.

 

숨 조차 내쉴 수 없었다. 내쉬거나 들이쉬면 거짓말을 들킬 것만 같았다. 남자는 차가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숨을 참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뭘 하는건지 남자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총을 내렸다. 서늘한 총구가 사라지자 그 위로 땀방울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전화를 걸었다.

 

 

“이우진입니다.”

“…….”

“대상 확보했고, 물건도 일부 확보 완료했습니다.”

 

 

전화 너머의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이우진이라는 남자는 용건만 짧게 전하곤 전화를 끊었다. 이윽고 내 몸을 짓누르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총을 재킷 안에 넣은 뒤 바닥에 떨어진 내 핸드폰을 주웠다. 그리곤 신발을 신은 채, 저벅저벅 거실 소파로 가 앉았다. 현관에 주저앉아있는 나를 보며 입을 연다.

 

 

“좋은 임기응변이었지만 곧 말 하는게 좋을거야.”

“…….”

“상관 없거든. 비밀번호 같은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비밀번호를 몰라도 된다는건가? 그럼 목적이, 그냥 살인이라는거야?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랫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멀 발치서 날 내려다보던 우진은 테이블 위의 아빠의 사진을 뒤집었다. 저 남자의 말대로라면, 비밀번호 상관 없이 열쇠만 얻고 날 죽이는게 목표일지도 몰라. 공범이 있는 것 같으니, 비밀번호가 없는걸 이미 알고있을 수도 있다.

 

다음 전화가 울릴 때, 나는 죽는다. 열쇠만 있으면 된다는걸 들킬테니깐.

 

비밀번호같은건 들어본 적 없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빠가 내게 남긴 열쇠가 어떤 열쇠인 것인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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