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범규] 아리도록

14화. 마침내 나서다

같은 시각, 사랑채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김유형은 홀로 앉아, 딸의 마지막 말을 곱씹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

 

낮게 되뇌는 목소리에, 오래 묵은 회한이 스며 있었다.

십 년 전 그날도, 오늘 밤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같은 두려움에 발이 묶여 있었다.

 

 

 

*

 

 

 

문이 조용히 열리고, 부인이 들어섰다.

 

"…아직도 여기 계셨어요."

"…잠이 오지 않아서."

 

부인은 남편 곁에 조용히 앉았다.

 

"여주가 그러던가요.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고."

 

김유형은 그 말에 씁쓸히 웃었다.

 

"…내가 나선다 한들, 이제 와서 무엇이 달라지겠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지."

"달라지지 않아도 나서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에요. 이대로 침묵하시면, 당신은 평생 이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실 거예요."

 

한참 말이 없던 김유형이, 이윽고 무겁게 다시 입을 열었다.

 

"최 대감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걸 알고도, 나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었소. 그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아이가 살아서 이 집에 머물고 있다는 걸, 옥패를 보고서야 알았던 그날도…… 나는 또다시 두려움을 택했소. 그렇게 두 번이나, 내 두려움 때문에 그 아이를 저버린 게요."

 

"…이제는, 진실을 밝힐 때가 온 것 같소. 더는 두려움에 지지 않을 거요."

 

부인이 놀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렇게 결심하셨군요."

"그 아이를 데려와야겠소. 함께 거사를 도모해야지. 조승학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고, 최가의 이름을 되찾는 일 말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사죄해야겠소. 내가 그때 침묵했던 것도, 이번에 내쫓았던 것도, 전부."

 

김유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시헌 대감도, 그 어린 것도…… 당신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저와 여주 때문에 잃은 목숨이었어요. 이제라도 이렇게 마음먹어주셔서, 고마워요."

"고마울 일이 아니오. 진작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겨우 하려는 것뿐이니."

"…범규는, 한때 우리 사위가 될 뻔했던 아이요. 그 연과 내 이름 석 자면, 적어도 관아 앞에서 헛소리라 무시당하진 않을 게요."

"그럼 지금 가세요. 저도 함께 가겠어요."

 

 

 

*

 

 

 

그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단이가 뛰어들었다.

 

"대감마님! 아가씨가…… 방에 안 계세요!"

 

김유형과 부인의 얼굴이 동시에 하얗게 질렸다.

 

"…설마."

 

부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관아로 가신 것 같아요. 압송이 새벽이라고, 낮에 그리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김유형은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말을 준비해라. 당장 관아로 간다."

 

부인도 겉옷을 챙겨 입으며 그 뒤를 따랐다.

 

"저도 가겠어요. 혼자 보낼 수 없어요."

 

캄캄한 밤길을 두 사람이 나란히 말을 달렸다. 말발굽 소리가 다급하게 어둠을 갈랐다.

 

 

 

*

 

 

 

관아 앞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포박당한 여주가 마당에 무릎 꿇린 채 끌려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

 

여주의 외침에, 김유형은 곧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 아이를 당장 놓아라!"

 

옥졸들이 창끝을 겨누며 막아섰지만, 김유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전임 병조참판 김유형이다. 게 있는 것들은 대체 뉘 명을 받고 이러는 것이냐!"

 

우렁찬 호통에, 옥졸들의 창끝이 흠칫 흔들렸다.

 

"저 아이는 내 여식이고, 저 안에 갇힌 자는 한때 내 여식과 정혼했던 최시헌 대감의 아들이다. 네놈들이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고 있는지, 그 죗값을 감당할 자신은 있느냐!"

 

당당한 기세에 눌린 옥졸들이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당장 옥사장을 불러오너라. 내 직접 담판을 짓겠다."

 

옥사장은 김유형의 관록 있는 풍채와 흔들림 없는 기세에 이미 압도당한 듯했다.

 

"이 일이 잘못 처리되었다는 게 훗날 밝혀지면, 그 책임은 오롯이 여기 있는 자들 몫이 될 것이다. 내가 누구와 연이 닿아 있는지, 똑똑히 새겨두는 게 좋을 게야."

 

한참의 정적 끝에, 옥사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풀어드리겠습니다. 다만 오늘 밤 일은, 못 본 걸로 해주십시오."

 

옥문이 열리고, 범규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아가씨."

 

"…어르신."

 

범규는 놀란 눈으로 김유형을 바라보았다.

여주는 그대로 달려가 범규를 부축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부인이 다가와 딸의 언 손을 꼭 감싸 쥐었다.

김유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집에 가서 하자꾸나."

 

범규는 잠시 머뭇이다, 김유형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고마워할 것 없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동이 트려는지, 저 멀리 하늘 끝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 네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관아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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