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범규] 아리도록

7화. 쫓겨나다

범규는 둔탁한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천장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온몸이 무거웠다.

등에 감긴 붕대에서 희미하게 피 냄새가 났다. 다시 벌어졌던 상처였다.

 

지난밤의 기억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서낭당, 횃불, 화살, 그리고 품에 안고 뛰던 여주의 무게.

무사히 도착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옆방에서는 아직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팔의 상처와 열은 좀 가라앉았을지, 걱정이 앞섰다.

 

몸을 일으키려 옷깃을 여미던 손끝이 문득 멈췄다.

옥패가 없었다.

이불이며 방바닥을 더듬어보아도 손끝에 닿는 건 없었다.

 

간밤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게 분명했다. 등줄기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

 

 

 

들어온 사람은 김유형이었다.

손에 쥔 것을 보는 순간, 범규는 숨이 멎는 듯했다.

옥패였다.

 

"…이게, 자네 것이던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엔 이미 답을 알고 묻는 자의 떨림이 배어 있었다.

범규는 차마 거짓을 고르지 못했다.

 

"…예."

 

짧은 대답에, 옥패를 쥔 김유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최…… 시헌 대감의."

 

이름 석 자를 채 잇지 못하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십 년을 억눌러온 얼굴이 그 안에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했다.

 

"살아 있었구나. 살아서…… 내 집 안까지 들어왔어."

 

목소리가 원망인지 안도인지 알 수 없게 갈라졌다.

범규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속인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리고 접근한 건 아니었습니다."

"노렸든 아니든, 자네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야."

 

김유형의 목소리에 억눌린 공포가 배어났다.

 

"조승학이 자네를 쫓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나. 그런 자를 내 딸 곁에 두고 살았다니……"

"어르신을 원망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듣고 싶지 않네."

"나가게."

"…어르신."

"당장 이 집에서 나가란 말일세!"

 

고함이 방 안을 흔들었다. 그 밑에 감춘 두려움을 범규는 모를 리 없었다.

 

"여주 아가씨는 아무것도……"

"자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야."

 

단호하게 자르는 말에, 더는 무엇도 붙일 수 없었다.

떠나야 한다는 걸, 범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옥패를 움켜쥔 김유형의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분노가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걸, 범규는 알아보았다.

 

십 년 전 그날, 이 사람도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원망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지금은 알 수 없었다.

 

 

 

*

 

 

 

상처를 다 여미지도 못한 채, 그는 새벽 어스름 속으로 나섰다.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여주의 방 쪽 불 꺼진 창만 눈에 담았다.

 

죄송합니다. 언젠가 떳떳해지는 날, 반드시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삼킨 채, 범규는 사립문을 나섰다.

 

 

 

*

 

 

 

늦은 오전, 여주는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채로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건 범규였다.

 

"단아, 손님은……"

 

말끝을 흐리는 여주에게, 단이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게…… 오늘 새벽에, 떠나셨다고……"

"뭐?"

 

여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인사도 없이요? 그럴 리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몸을 일으키려는 여주를, 단이가 황급히 붙잡았다.

 

"아가씨,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그러나 여주의 귀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방문을 밀어젖힌 여주의 눈에, 텅 빈 마당만 들어왔다.

간밤에 흥건했던 핏자국조차 이미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마치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손님! 어디 계세요!"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랑채 쪽을 지나던 여주는 그제야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김유형은 무언가 말하려다, 차마 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회피 속에서, 여주는 직감했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무언가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 손님한테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처음 듣는 냉랭한 목소리였다. 늘 다정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여주는 더 묻지 못한 채, 휘청이는 다리로 대문 밖까지 걸어 나갔다.

 

인적 없는 길만이 저 멀리까지 텅 비어 있었다.

그 길 끝을 바라보며, 여주는 이 낯선 상실감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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