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동지 5화

습격이 지나간 자리는 허망할 정도로 조용했다.

잿더미 냄새와 피린내가 자욱한 방 안, 이마를 맞대고 있던 연준이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었다.

어깨의 찢어진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려 네이비색 가운을 적시고 있었지만, 연준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수빈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수빈은 손에 들고 있던 은제 촛대를 스르륵 놓쳤다. 쿵- 소리와 함께 촛대가 바닥을 굴렀다.

“...상처, 피가 많이 납니다.”

수빈이 거친 숨을 내쉬며 연준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는 자가 치유 능력이 뛰어난 존재지만, 침입자가 휘두른 무기 끝에 은이나 주술이 묻어있었는지 상처 부위가 쉽게 붙지 않고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헌터 주제에 뱀파이어 상처를 걱정하는 거야?”

연준이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비틀거리는 연준의 몸을 수빈이 자신도 모르게 부축해 잡았다.

서늘하지만 단단한 연준의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날 감싸다 다친 거잖아요.”

“ 착각하지 마. 내 먹잇감이 다른 하급 놈들 이빨에 터지는 게 싫었을 뿐이야.”

연준은 야속한 말을 뱉으면서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수빈의 단단한 어깨에 순순히 몸을 기댔다.

잠시 후, 소란을 정돈한 집사가 단약과 깨끗한 거즈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집사는 잿더미로 변한 하급 놈의 흔적과 바닥에 떨어진 은제 촛대, 그리고 연준을 부축하고 있는 수빈을 번갈아 보며 놀란 눈을 숨기지 못했다.

“연준 님, 상처를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이 인간은 다른 방으로...”

“됐어.”

연준이 집사의 말을 짧게 잘라냈다.

“치료도구만 놓고 나가 봐.”

“하지만...”

“나가라고 했다.”

낮게 깔리는 연준의 명령에 집사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문이 닫히고 다시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연준은 침대 끄트머리에 툭 앉으며 수빈을 바라보았다.

“해봐.”

“예?”

“네가 내 등 뒤를 지켰으니, 마무리도 네가 해.”

연준이 약통과 거즈가 놓인 트레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수빈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연준의 어깨에서 여전히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다가앉았다.

수빈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연준의 상처 주변을 소독약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헌터 가문에서 매일같이 구르며 익힌 게 상처 치료와 응급처치였다.

비록 감응력이나 신체 능력은 실패작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손재주만큼은 꼼꼼하고 세심했다.

“아프면 말씀하세요.”

“뱀파이어가 이 정도 통증에 엄살 피울 것 같아?”

연준이 코웃음을 쳤지만, 수빈이 타들어 간 살점 위로 단약을 바르자 자신도 모르게 어깨 근육을 굳혔다.

수빈은 연준이 아프지 않도록 상처 부위에 살살 바람을 불어주며 붕대를 감았다.

수빈의 따뜻하고 차분한 숨결이 어깨에 닿을 때마다, 연준의 시선이 수빈의 진지한 얼굴로 향했다.

긴 속눈썹, 집중할 때마다 살짝 벌어지는 입술, 그리고 자신을 치료하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무해한 다정함.

‘이 애는 헌터다.’

가문에서 버려졌다 한들, 방금 전 은제 촛대로 뱀파이어의 심장을 찌르던 헌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적이자 포식자인 자신의 상처를 꿰매듯 치료하고 있었다.

기묘한 모순이었다.

“다 됐습니다.”

수빈이 매듭을 매고 손을 떼려 하자, 연준이 수빈의 붕대 감은 손목을 툭 잡았다.

“...왜 이랬어?”

“네?”

“날 두고 도망칠 수도 있었잖아. 그 하급 놈들이 나한테 덤벼들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나갔으면 이 저택을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연준의 붉은 눈동자가 묵직한 진심을 담고 수빈을 꿰뚫어 보았다. 수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손목에 닿은 연준의 차가운 손길이 어쩐지 어젯밤처럼 두렵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몰라요.”

수빈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아무리 나를 버린 가문이라도 헌터로 자랐고... 무엇보다, 연준 씨가 나 때문에 다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수빈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붉어진 귀 끝이 또다시 수빈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준은 수빈의 손목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가, 천천히 손가락을 펴 수빈의 손과 깍지를 꼈다.

마디가 굵은 수빈의 단단한 손과 연준의 길고 차가운 손가락이 얽혔다.

“수빈아.”

“네?”

“앞으로 내 허락 없이 죽지도 말고, 다치지도 마.”

어조는 여전히 명령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어젯밤의 사육이나 감금과는 달랐다.

연준은 깍지 낀 손을 끌어당겨 수빈의 손등에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차가운 촉감이 손등에 닿자 수빈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꿈틀거렸다.

저택을 들이친 습격은 끝났지만,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헌터와 뱀파이어라는 경계선은 가만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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