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안의 공기가 핏빛 마력으로 얼어붙었다.
연준의 몸에서 터져 나온 압도적인 파동에, 성수가 바른 은검을 쥐고 있던 헌터들조차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연준의 동공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붉은 과육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구 맘대로... 누구 몸에 칼을 대?”
연준의 낮게 깔린 음성이 저택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촌 형이 당황해 다시 부적을 꺼내려 했지만, 연준의 잔상이 스쳐 지나간 순간 그의 손목은 이미 비틀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꺾여 있었다.
“크아아악!”
“버려진 쓰레기? 미끼?”
연준이 사촌 형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순혈 뱀파이어의 이성이 날아가고 오직 잔혹한 포식자의 본능만이 남은 상태였다.
연준의 날카로운 손톱이 헌터의 목을 죄어오며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놓을 기세였다.
“연... 연준 씨...”
바닥에 허물어져 있던 수빈이 어깨의 상처를 움켜쥔 채 핏기없는 입술로 소리쳤다.
수빈의 목소리에 연준의 피칠갑 된 손이 주춤거렸다.
“하지 마요... 죽이지 마...”
수빈의 떨리는 음성과 함께,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연준은 손에 쥐고 있던 헌터를 쓰레기처럼 바닥에 내팽개쳤다.
헌터들은 이미 연준의 압도적인 마력에 사지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썩 물러가라.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가
문에 가서 전해라.
최수빈을 건드리는 날엔 너희 가문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연준의 서늘한 경고에, 헌터들은 피를 토하며 깨진 창문 밖으로 겨우 몸을 던져 도망쳤다.
헌터들이 사라지자마자 연준은 수빈의 곁으로 미친 듯이 다가왔다.
폭주하던 마력이 순식간에 수습되고, 연준의 붉은 눈동자에는 전례 없는 두려움과 절박함이 채워졌다.
“수빈아! 수빈아, 정신 차려 봐...!”
연준이 수빈을 부둥켜안았다. 수빈의 몸은 빠르게 차가워지고 있었다. 성수가 바른 헌터의 검은 인간의 몸에도 강한 독소와 출혈을 일으켰다.
차가운 뱀파이어인 연준의 품 안에서, 수빈의 온기마저 사그라드는 것 같아 연준은 이성이 마비되는 기분을 느꼈다.
“왜... 왜 또 날 감싸? 너 미쳤어? 난 뱀파이어야! 네 원수라고!”
연준이 소리쳤지만, 수빈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당신이 다치는 건... 보기 싫으니까요.”
수빈의 손이 떨리며 연준의 뺨에 닿았다.
“가문 사람들은... 날 한 번도 사람 취급해 주지 않았는데... 연준 씨는 나한테 다정했잖아... 그러니까...”
수빈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수빈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연준의 심장이 아래로 내리꽂혔다.
“아니야, 수빈아, 안 돼. 눈 떠. 제발 눈 떠...!”
영원을 살며 그 어떤 것에도 애착을 두지 않았던 밤의 지배자가, 겨우 인간 한 명의 온기를 잃을까 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연준의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눈물이 수빈의 창백한 볼 위로 떨어졌다.
‘살려야 해. 이 아이를 잃을 수 없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이 치명적인 상처를 견뎌낼 수는 없었다.
그를 영원히 제 곁에 두는 것, 그를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
연준은 자신의 손목을 송곳니로 깊게 찢었다.
짙고 붉은 순혈의 피가 흘러나왔다. 연준은 수빈의 턱을 살짝 벌려 자신의 피를 입안 가득 넣어주었다.
“내 피를 마셔, 수빈아... 날 버리지 마...”
연준이 수빈의 붉어진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며 피를 넘겨주었다.
순혈의 피가 수빈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수빈의 몸이 크게 상체부터 뒤틀리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피가 죽고, 순혈 뱀파이어의 권능이 수빈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 고통스러운 권능의 전이.
연준은 발작하는 수빈을 부둥켜안고 그의 귓가에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해... 너한테 뱀파이어의 굴레를 씌워서 미안해... 하지만 널 보낼 순 없어. 날 원망해도 좋아.”
수빈의 어깨에서 흘러나오던 검은 피가 멈추고, 상처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매워지기 시작했다.
수빈의 창백하던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끄럽게 변해갔고, 둔하게 뛰던 심장 소리가 점점 가빠지더니 이내 아주 천천히, 묵직한 주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수빈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늘 검은빛이던 수빈의 눈동자가 연준의 것과 닮은 붉은빛으로 차갑게 번뜩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