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1-2

 시끌벅적했던 첫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어느덧 어스름한 밤이 찾아왔다.

거실 소파에 여덟명의 사람들이

어색한 정적을 품은 채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넓은 탁자 위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흰색 편지봉투들이 덩거리 놓여 있었다.

전 연인이 이곳에서 직접 작성해 준,

《X 소개서》였다.






"가장 먼저 명재현씨가 읽어주세요."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재현씨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봉투를 열었다.

편지지를 펼친 그가 장난스레 코끝 찡긋거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재현이는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눈치도 빨라서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꼭 안아주던

다정한 아이였어요.

재현이는 감수성도 풍부하고 외로움을 잘 타요.

혼자 두면 생각에 깊게 잠기는 편이니,

주위에 계신 분들이 재현이의 손을 먼저

따뜻하게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재현의 귀끝이 서서히 붉어졌고,

미세한 떨림을 감추려 장난스레 헛기침을 했다.

소파에 앉은 여자 출연자들은 숨을 죽인 채

재현의 나직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람…….’


나는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앉아,

오늘 낮에 처음 마주했던 그의 활기찬 미소를 떠올렸다.

집안에 처음 들어와 낯설어하던 나에게

가장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건네오던 남자.



소개서에 적힌 글귀들은

오늘 낮에 내가 짧게 겪은

그의 세심한 첫인상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거실에 서먹한 기류가 감도는 가운데,



어느덧 내 차례가 다가왔다.

침을 가볍게 삼키고 종이를 펼쳤다.






"여주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말하기보단 혼자 삭이는 편이라,

표정이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면

먼저 다가가서 물어봐 주세요.

여주는 남들과는 반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왼손잡이에요. 잘 배려해 주세요."


글자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시선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까 저녁 식사 준비 때,

내가 도마 앞으로 가기도 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식탁의 수저들을 묵묵히 정렬해 두었던 박성호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






정적 속에서 편지지가 작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나는 아무런 내색 없이 조용히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맞은편에 앉은 성호 역시

건조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한 뒤였다.

거실을 감도는 기묘한 기류를 깨뜨리듯,

이내 성호가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소개서를 읽기 시작했다.






"성호는 첫인상이 조금 차갑고 무뚝뚝해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다정하고 섬세한 아이에요.

긴장되는 상황이 생기면 괜히 아랫입술을 깨물거나

근처에 있는 물건을 만지작 거리는 습관이 있어요.

완벽해보이지만

은근 허당이라 옆에서 잘 챙겨줘야하는 아이에요."






성호의 목소리가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덤덤하게 잦아들었다.

거실에는 낯선 이들이 처음 모였을 때

특유의 어색한 정적이 다시금 조용히 내려앉았다.

첫날 밤의 기묘한 탐색전 속에서,

그렇게 출연자들의 소개서 낭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방으로 돌아온 첫날 밤.

첫 속마음 문자 투표가 시작되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낮에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었던

명재현의 이름을 눌렀다.



잠시 후, 폰이 가볍게 진동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와있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덤덤하게 들어 올린 화면 위로,

예상치 못한 문장을 마주했다.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






화면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짧게 헛웃음을 뱉었다.

하루 종일 거실에서 차갑게 굴던 박성호가,

왜 나를 찍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기도,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하는 기묘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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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의 X는 시윤입니다.]

<연애 기간: 8년 / 이별한 지 7개월>



Q. X와의 연애는 어땠나요?



"…8년 동안 지독하게 얽히고,

질리도록 사랑했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그 사랑이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아요.

4년 쯤 됐을 땐가? 그때부터 서로 매일같이 싸워서…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지금은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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