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3화 - 내숭 제로

수업이 끝난 후, 친구는 오랜만에 자기랑 술을 마셔달라며 나를 붙잡았다. 오늘은 어차피 일정도 없었겠다,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가는 친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이윽고 낯선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마음 속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야.”

 

 

친구가 멈춰 선 곳을 확인하자마자 발끝을 돌렸다.

 

 

“나 간다.”

“야, 잠깐만.”

 

 

팔이 붙잡혔다. 한 발 더 내디뎠지만, 친구가 양손으로 내 팔을 끌어안고 늘어졌다.

 

 

“여기까지 와놓고 어디가! 오늘은 나랑 술 마셔주기로 했잖아!”

“술집이 여기 하나뿐이냐?”

“여기 유명하대. 바텐더가 엄청 잘생겼다고.”

 

 

안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진짜 인생에 도움 안 되네. 하필 그 재수 없는 놈이 일하는 곳이라니.

 

 

“다른 데 가자.”

“싫어!! 나 오늘 여기 오려고 너 수업 끝나는거 기다렸다고~!”

“윽….”

 

 

친구의 수업은 오늘 오후 2시 경에 끝났다. 나는, 5시까지 수업이 있었고. 무려 3시간이나 나를 위해 기다렸다는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앞으로 가려는 몸에 힘이 풀리자마자 가게쪽으로 몸이 확 기울었다.

 

 

“아싸! 술은 내가 살게.”

 

 

한 손으론 나를 잡고, 한 손으로 문을 밀며 들어갔다. 익숙한 클래식 노래와 바의 향기가 훅 끼쳤다.

 

 

 

*

 

 

 

평일인데도 바 안은 사람이 많았다.

상원은 우리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쪽을 본 것 같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다른 손님의 잔을 채워주고,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무언가를 건넨 뒤 다시 테이블을 돌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구와 구석진 바에 자리를 잡았다. 상원이 서 있는 바 테이블과도 거리가 있었다.

 

 

“근데 잘생겼다는 애가 쟤였구나, 이상원.”

“그래. 학교에서도 봐놓고 뭘 보러 오고싶단거야.”

“몰랐으니까~ 그래도 뭐 눈호강은 하네. 소문은 안 좋아두.”

 

 

친구가 조잘조잘 떠들며 메뉴판을 펼쳤다. 칵테일 이름을 하나씩 읽으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분홍색의 귀여운 칵테일을 가리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내거 시켜놔~”

“야!”

 

 

붙잡을 틈도 없이 사라졌다.

테이블 위에 메뉴판만 두 개 남았다. 직원을 부르려고 주변을 둘러봤다.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다른 바텐더와 눈을 맞추려는데 검은 셔츠가 시야를 막았다.

 

상원이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보다 나는 얘한테 주문할 생각이 없었는데.

 

 

“주문…….”

“이거 봐.”

 

 

상원이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스토킹은 그쪽이 하는 거라니까.”

“아니, 그건.”

“나한테 한눈에 반한 뭐 그런 건가?”

 

 

어이가 없어 상원을 올려다봤다. 상식적인 대화가 안 통할 것 같아.

 

“반말을 하네.”

“내 얼굴이 취향이에요?”

“주문이나 받아.”

 

 

메뉴판을 들어 상원의 얼굴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상원이 고개를 뒤로 빼며 웃었다.

메뉴판을 한 번 내려다봤다. 이름을 읽어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까 친구가 짚어준걸 짚었다.

 

“이거랑, 그때 그거.”

“그때 그거?”

“네가 추천해준 거 있잖아.”

 

 

상원은 잠깐 놀란 듯 굴더니, 이윽고 눈가가 살짝 휘었다.

 

 

“맛있었죠?”

“뭘 웃어.”

“안 웃었는데요.”

 

 

입꼬리를 올린 채로 잘도 말했다. 말대답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상투적인 말을 내뱉고 상원은 메뉴판을 집어 들곤 돌아갔다. 잠시 뒤 친구가 자리로 돌아왔다.

 

 

“주문했어?”

“응.”

“뭐 시켰는데?”

“나는 어제 마신 거. 너는 아직 안 했어.”

“뭐야. 너 여기 왔었어? 쟤도 그래서 아는 사이인거야?”

“아는 사이는….”

 

 

그럴 말 할 사이 아냐. 말을 마저 잇곤 냉수가 가득 담긴 컵을 입에 가져다댔다.

친구는 상원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상원은 다른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몸을 살짝 숙인 채 손님의 이야기를 듣더니 눈까지 접어가며 웃었다.

 

 

“가식적인 놈.”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말이 나왔다. 아차 하는 순간, 친구는 이미 내 말을 듣곤 나를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왜, 뭐. 당황하니까 더 눈이 동그래져 나를 본다.

 

 

“여주 너 쟤랑 친해?”

“아니, 전혀.”

“흐응.”

“뭐가.”

“너 쟤 싫어해?”

 

 

다른 바텐더가 앞에 놓아준 칵테일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

 

 

 

친구는 웬일로 쉽게 납득하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수업에서 있었던 일부터 누가 누구와 헤어졌다느니, 전에 같이 술을 마신 애가 뒤에서 우리 욕을 했다느니 하는 시시한 이야기였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술을 마셨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웃어주면서 이야기를 듣는데, 친구의 뒤쪽에 있는 상원이 간혹 시야에 걸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상하게 상원과 눈이 마주쳤다. 자리를 반대로 앉을 걸 그랬어. 또 지 쳐다본다고 착각하겠네.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데, 친구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친구가 휴대폰을 들고 입구 쪽으로 나갔다. 손을 대충 흔들어주고, 폰을 꺼냈다. 아직 한 시간도 안 지났네. 한 세 잔은 더 비워야 집에 보내주려나.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있는데, 시야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상원이었다.

 

 

“뭐야?”

“잔이 비어가는데, 더 시키실 건 없으세요?”

 

 

픽, 웃음이 나왔다.

 

 

“내숭 안 떨어도 되는데.”

“아, 그런가.”

 

 

상원이 팔을 뻗어 느릿하게 기지개를 켰다. 어깨가 올라갔다가 툭 떨어졌다.

 

 

“기지개를 펴란 적은 없었는데.”

“그랬나? 여기 왠지 편하네.”

 

 

어이가 없어 픽 웃고 칵테일 잔을 흔들었다. 얼음이 녹아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편하냐. 얘도 보는 눈이 없네.

 

상원은 손바닥으로 한쪽 볼을 문지르더니 입가를 몇 번 눌렀다.

 

 

 

“얼굴 가죽 경련 오겠네.”

 

 

쉬지도 않고 웃고 있어서 그런가. 뒷붙이는 말에 그러려니했다. 정색을 하고있는 얼굴이긴해도, 억지로 웃는 것보다는 나아보였다. 아니 그나저나 왜 내 앞에서 ㅈㄹ이야. 바에서는 보통 바텐더가 손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돈 벌기 힘드냐?”

“나 보러 오는 손님이 많아서.”

“그 성격을 숨기고 사느라 힘든 거겠지.”

“누구 앞에서는 안 숨겨도 되니까 괜찮아.”

 

 

상원이 몸을 일으켰다. 그새 다시 짧아진 말이 귀에 들어왔다. 뭐, 거슬리지는 않았다.

 

 

“쉬었으면 가서 일해.”

“독한 손님이네.”

 

 

상원은 무표정으로 대답하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다른 테이블 손님과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었다.

진짜 잘도 웃네.

곧 친구가 자리로 돌아왔다.

 

 

“미안. 엄마 전화였어.”

“괜찮아.”

“나 하나 더 시킬건데, 여주 너는?”

“나도. 아무거나.”

 

 

친구는 그대로 손을 들었다. 다른 바텐더들이 우리쪽을 쳐다보고 오려는 순간, 척척척 긴 다리로 상원이 빠르게 우리의 앞을 차지했다. 와, 얘 진짜 여자 상대하기 싫은가보네….

 

 

“저희 주문하려고하는데요, 저는 이걸로 주시고 얘는 하나 추천받으려구요.”

 

 

시큰둥하게 진열된 술을 훑어보다 깜짝 놀랐다. 야, 내가 언제 추천받는대!

친구는 나를 콕 집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있었다. 그 손가락의 끝을 따라온 상원이 피식 웃었다.

 

 

“손이 많이 가는 친구시네요.”

“네, 뭐…. 맨날 자기는 아무거나라고 하면서 은근 까다롭거든요.”

“알죠 알죠.”

 

 

뭘 안다는거야. 둘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걸 질린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곧이어 상원이 빙긋 웃으며 내게 몸을 숙여 다가왔다.

 

 

“이번에는 어떤걸로 드릴까요? 저번거랑 비슷한데 좀 더 깊은 맛이 나는게 있어요.”

“그럼 그걸로 가져와.”

“친절하시다.”

“얘가?”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복창터지는 표정을 하곤 손가락으로 저녀석, 그러니까 이상원을 가리켰다.

상원은 웃으면서 내 손가락을 접어버렸다.

 

 

 

“'얘가'라니. 제가 뭐 어때서요.”

 

 

흘겨보니 “바로 가져다드릴게요.” 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둘이 언제 이렇게 친해졌대.”

“안 친해.”

“둘이 비슷해서 그런가?”

“쓰레기끼리 친하다는 뜻이냐.”

 

 

친구는 대꾸도 않고 남은 잔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있을 무렵, 주문한 술 두 잔이 나왔다. 다른 바텐더는 가득 채워진 잔을 우리 앞에 두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친구는 다시금 상원으로 이야기 운을 띄웠다.

 

 

“쟤 나쁜 남자 같다.”

“같은 게 아니라 맞아.”

“근데 영업용 미소보다는 아까가 나은 것 같아.”

 

 

상원은 다른 손님 앞에 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자 익숙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빨대로 새 잔 안의 얼음을 휘저었다.

 

 

“뭐, 나도 내숭 부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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