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4화 - 웃어봐

교양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자 앉아있는 이상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번과 똑같은 자리, 똑같은 자세였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다른 자리는 널널했다. 옆으로 다가서자 상원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말없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굳이 다른 곳에 앉는 것도 이상했다. 저번 수업도 여기였고, 그 전에도 그랬으니까.

자리에 앉자 상원이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또 왔네.”

“수업 들으러 왔지. 너 보러 왔겠냐.”

“누가 뭐래?”

 

 

말투가 짧았다. 술집에서 내숭 떨지 말라고 한 뒤부터 아예 존댓말을 갖다 버린 모양이었다. 나도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존댓말을 쓰면서 비꼬는 것보다는 이쪽이 덜 재수 없었다.

 

가방에서 펜 하나를 달랑 꺼냈다. 아직 수업이 시작하려면 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

상원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위아래로 넘기는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나는 그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웃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피식거리거나 비웃는 것 말고, 제대로 웃는 얼굴. 바에서는 여자들이 무슨 말만 해도 잘만 웃더니.

 

 

“왜.”

 

 

상원이 화면을 보면서 물었다.

 

 

“뭐가.”

“쳐다보잖아.”

“안 봤는데.”

“반했나? 진짜 곤란한데.”

 

 

질린다는 표정을 하고 상원을 쳐다봤다. 얘 무슨 공주병? 왕자병? 있는 거 아냐?

그대로 시선을 거두려다가 턱을 괴었다. 상원의 옆얼굴을 한 번 더 훑어봤다. 눈썹부터 콧대, 입술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이 반듯했다. 얼굴은 잘생겼는데 성격이 쓰레기. 소문이 괜히 난 건 아니겠지.

 

 

“너 학교에선 왜 안 웃어?”

 

 

상원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내 천천히 고개가 돌아왔다.

 

 

“갑자기?”

“그냥. 생각해보니까 웃는 걸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서.”

“알바하는 데서 봤잖아.”

“그건 영업용이고.”

“웃는 게 다 똑같지.”

“다르던데.”

 

 

상원은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얘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싶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뭐. 말실수라도 했나.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뭔데.”

“내가 어떻게 웃는지 꽤 자세히 봤나 봐.”

 

 

또 시작이다. 왕자병 녀석.

 

 

“손님 얼굴에 대고 쉬지 않고 웃는데 안 보이겠냐?”

“나만 본 건 아니고?”

“돈 받아야만 웃는건가?”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비꼬듯 말했다. 그리곤 한숨을 살짝 내어쉬곤, 말을 이었다.

 

 

“됐다. 내가 네 웃는 얼굴 봐서 어디에 쓰냐.”

 

 

잠시 후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뭐냐는 얼굴로 돌아봤다.

상원은 손등을 제 볼에 살짝 댄 채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눈꼬리는 살짝 접곤, 한쪽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술집에서 보던 웃음과는 달랐다.

손님들 앞에서 보여주던 반듯하고 근사한 미소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비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눈매를 살짝 접은 채 입꼬리만 올리고 있는 모습이 꽤 건들거렸다. 양아치 같네.

 

 

 

“뭐 하냐?”

“웃어달라며.”

“그게 웃는 거야?”

“공짜로 봤으면 됐지.”

 

 

상원은 손을 내리고 몸을 바로 세웠다.

 

 

“그쪽도 웃어봐.”

“싫은데.”

“내가 웃어줬잖아.”

“내가 왜 너를 위해 웃어줘야 하는데?”

“나도 방금 너를 위해 웃었는데.”

“내가 해달라고 했냐?”

“돈 받아야 웃어주나?”

“따라 하지 마.”

“왜. 네 말인데.”

 

 

상원은 픽 웃으며 다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괜히 말을 꺼냈다. 애초에 저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술집에서는 잘만 웃는 놈이 왜 학교에서는 늘 정색하고 있나 궁금했을 뿐이다.

그나저나 저렇게 웃으니 소문이 왜 그렇게 많은지는 알 것 같았다. 반듯하게 웃을 때보다 오히려 더 재수 없고, 더 눈이 갔다.

 

 

이윽고 교수가 들어오면서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상원도 자세를 바로잡고 교양 서적을 펼쳤다. 나는 공책에 대충 펜으로 뭔갈 쓰는척, 동그라미를 그렸다.

 

수업이 시작된 뒤로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상원은 의외로 수업을 제법 열심히 들었다. 책에 밑줄도 긋고, 교수가 강조하는 내용은 여백에 따로 적기도 했다. 글씨는 생긴 것과 다르게 엉망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가 없네.

 

조금 전 웃던 얼굴이 떠올라 옆을 흘끔 봤다. 상원은 다시 무표정이었다. 그런데 시선은 책이 아니라 내 쪽에 와 있었다.

 

 

“왜.”

 

 

입 모양으로 물었다. 상원이 책상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제 입꼬리를 가리켰다. 웃어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미쳤나.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진짜 미친놈처럼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니, 왜이래? 끈질기네. 그리고 수업중이라고!

결국은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원 학생.”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나를 보고 있었다.

 

 

“이상원 학생?”

 

 

내가 앞만 바라보며 정색한 얼굴로 팔꿈치로 상원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제야 상원이 고개를 들었다.

 

 

“네?”

 

 

교수가 안경 너머로 상원을 빤히 바라봤다.

 

 

“이 화학자로 인해 세계가 어떻게 됐다고 했죠?”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강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집중하세요. ” 교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곤 말을 뱉었다. 상원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얼굴로 멀뚱히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빵한 얼굴.

 

 

“풉.”

 

 

상원의 시선이 즉시 내게 떨어졌다.

아차.

입을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칠판을 바라봤다. 상원은 잠깐 조용히 하더니, 칠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웃었지.”

“안 웃었어.”

“웃었는데?”

“네가 한심해서 나온 소리야.”

“웃었으면서.”

 

 

고개를 돌려 상원을 째려봤다.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이상원의 옆모습은 조금 전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한 마디 해주려 “너……”하고 말을 꺼낸 순간,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거기 둘. 연애는 수업 끝나고 하세요.”

 

 

강의실이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졌다. 몇몇은 대놓고 우리 쪽을 돌아보기까지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칠판을 바라봤다. 옆에서 상원이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내 쪽을 쳐다보는 듯 하더니, 천천히 교양 서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진짜 주목 좀 그만 받았으면 좋겠네. 이번엔 또 무슨 소문이 생길 지 모르겠어. 아까보다 꽤 안 좋은 표정이 된 느낌이었다. 얼굴 근육이 굳은 것만 같았으니까. 잠시 후 상원이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야.”

“……..”

“미안. 주목받게 해서…,”

“말 걸지 마.”

 

 

그대로 상원이 입을 다물었다. 잠깐 조용해졌나 싶더니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까칠하기는.”

 

 

상원은 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빙글빙글 돌렸다. 또 한 마디를 안 지네. 그리고 우리는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일 외에는 여자를 귀찮아하는 줄 알았는데. 바에서 만나 밖에서까지 귀찮게 구는 여자를 차단하고, 학교에서는 누가 말을 걸어도 무시한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먼저 말도 걸고, 생각보다 대화도 잘 통했다. 물론 대화의 절반은 사람 약 올리는 소리였지만.

 

눈만 굴려 옆을 흘끔 봤다.

상원은 여전히 펜을 돌리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 아까 교수에게 지목당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멀뚱히 서 있던 얼굴이 떠올랐다. 제법 잘생긴 얼굴로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게 새삼 웃겼다.

 

 

“큭.”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원의 손에서 펜이 멈췄다. 곧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끝까지 모르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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