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5화. 연고 대첩

sophie97
2026.06.22Dilihat 47
"그렇다고 무슨 입술에 거즈를 대요"
"아니. 입술 깨무는 습관을
이번 기회에 고쳐야 된다니까요.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깨문다는 게 말이 돼요?"
"알았어요. 그건 고칠 테니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안 돼, 안 돼. 이번에 확실히 고쳐야 돼.
입술 터진 데 우선 이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여요."
'아...진짜 괜찮은데 왜 저렇게 오바야...
입술 터진 게 지금 누구 때문인데...
답답하다 답답해..'
"알겠어요. 그럼 내가 화장실 가서 하고 올께요."
"내가 해 준다니까요. 나 들어 오다가 손도 씻었어요."
[똑 똑 똑]
그 때였다.
노크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내가 또 늦은 건가..."
"아, 있었네!!
수업 끝났죠?
아니 잠깐만, 너 입술 왜 이래? 넘어졌어?"
예상치 못 한 방문객이었다.
대표가 들어왔다.
'오..마이 가쉬...산 넘어 산이네...'
"대표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훈지씨는 달갑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런 훈지씨의 물음에 대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내 입술을 보고 많이 놀란 눈치였다.
"입술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대표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니에요. 입술을 좀 깨물었더니...
피가 좀 난 거에요.
별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쨋든 상황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내가 대답했다.
"별 거 아니긴 입술이 많이 터졌는데?
훈지 니가 수업 때 속썩였니? 입술을 왜 깨물어?"
'훈지씨 때문에 입술 터진 건 맞긴 하네..ㅎ'
나 혼자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그 때,
훈지씨가 연고 뚜껑을 열면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지금 연고 바르려던 참이라 잠까만 나와 보세요."
"그걸 왜 니가 발라??
나 졸업은 못 했어도 의대 입학했던 사람이야.
그거 이리 줘봐...너보다야 내가 낫지."
"연고 하나 바르는데 의대가 여기서 왜 나와요?"
훈지씨도 지지 않았다.
'와...이거 지금 뭐 하는 상황이야...
미치겠네 정말...'
나는 그냥 여기서 뛰쳐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생님, 입술 좀 대 봐요.
아니다, 그냥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있어요.
연고 입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니까...
움직이지 말아요."
결국, 훈지씨는 내 입술에 연고도 손수 발라 주시고
거즈에 밴드까지 야무지게(?) 붙여 놓으셨다.
나중에 집에 가서 거울을 보니
거즈를 얼마나 크게 붙여 놨던지,
패싸움하고 겁나 많이 얻어 맞은
일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훈지씨는 몸으로 하는 건 다 잘 하면서도
손은 똥손이었다. 어쩐지...;;
훈지씨 뒤로 한 발 물러 서 있던
싸늘한 표정의 대표가 말했다.
"오늘 수업은 다 끝난 거지?
우리 친구 된 기념으로 같이 저녁 먹으려고 왔는데,
괜찮지?"
"네? 저녁이요?"
"아니, 친구 먹기로 해 놓고 "네"는 또 뭐야?
편하게 불러..나도 이제 정아라고 부른다.
알았지?"
"대표님은 친구를 뭐 이렇게 강압적으로 만들어요."
지지 않는 훈지씨...
"훈지, 너 오늘 저녁 때 라디오 스케줄 있더라?"
"오늘 직원들 다 약속 있다고 퇴근하고,
내가 같이 저녁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같이 먹어줄 거지?"
"어..그래, 그러지 뭐..
저녁 같이 먹는 게 뭐 어렵나.."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이상 존대말 쓰기도 어색하고,
그냥 친구 해 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훈지 수업 끝났으면
이제 사무실 가서 라디오로 출발해야지!!
좀 일찍 움직이지 않으면 퇴근 시간이랑 겹쳐서
위험해.
가서 잘 하고!!"
난 훈지씨의 삐친 듯한 표정이 귀여워서,
그냥 좀 즐기기로 했다.
"과제는 이따 톡으로 보낼께요.
스케줄 잘 하세요, 훈지씨."
"선생님, 우리 아까 못 한 얘기는 이따 마저 해요."
훈지씨는 대표에게는 따로 인사말도 없이,
고개만 꾸벅 하고 나가 버렸다.
훈지씨가 나가자 마자 대표가 물었다.
"아까 못 한 얘기가 뭐야?"
"아..아까 수업하다가
설명을 다 못 한 부분이 있어서...
그거 얘기하는 건가.."
나는 어물쩡 넘겨 버렸다.
"우리 저녁 뭐 먹을까?
어떤 거 좋아해?
내가 친구 된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줄께."
대표가 신이 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내가 먹고 싶은 걸로 먹어도 되는 거야?
내 컴포트 푸드가 있긴 한데..."
"컴포트 푸드가 뭐야? 뭐.. 새로 나온 메뉴인가?"
"아니..그게 아니고,
우리가 보통 소울 푸드라고 부르는 게 콩글리쉬고
원래는 컴포트 푸트가 맞는 표현이라서...
미안...잘난 척 하려는 건 아니야.."
"아...
소울 푸드도 영어라서 맞는 건 줄 알았는데
콩글리쉬였구나.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영혼의 음식 그런 거 맞지?"
"어, 맞아...나는 돈까스가 컴포트 푸드야..
어렸을 때 엄마랑 장보러 가면 항상 돈까스 먹고
후식으로 밀크 쉐이크 먹었거든."
"와...그랬구나...
나는 그런 게 있었나...
오늘 고민 좀 해 봐야 겠다..
내 컴포트 푸드가 뭐가 있는지.."
"어쨋든 오늘은 우리 정아 선생님 수업하느라
고생했으니까 기분 좋게 돈까스 먹어야겠다.
회사 근처 돈까스 맛집 있어..
여직원들이 좋아하는데.
거기 갈까? 괜찮아?"
"응, 좋아!!"
"정아, 너 생각보다 더 멋진 여자구나!!"
<16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