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5화. 연고 대첩




"그렇다고 무슨 입술에 거즈를 대요"





"아니. 입술 깨무는 습관을 

이번 기회에 고쳐야 된다니까요.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깨문다는 게 말이 돼요?"





"알았어요. 그건 고칠 테니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안 돼, 안 돼. 이번에 확실히 고쳐야 돼.

 입술 터진 데 우선 이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여요."





'아...진짜 괜찮은데 왜 저렇게 오바야...

 입술 터진 게 지금 누구 때문인데...

 답답하다 답답해..'





"알겠어요. 그럼 내가 화장실 가서 하고 올께요."





"내가 해 준다니까요. 나 들어 오다가 손도 씻었어요."





[똑 똑 똑]



그 때였다.

노크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내가 또 늦은 건가..."


"아, 있었네!!
 
 수업 끝났죠?

 아니 잠깐만, 너 입술 왜 이래? 넘어졌어?"





예상치 못 한 방문객이었다.


대표가 들어왔다.





'오..마이 가쉬...산 넘어 산이네...'





"대표님이 여기 웬일이세요?"



훈지씨는 달갑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런 훈지씨의 물음에 대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내 입술을 보고 많이 놀란 눈치였다. 





"입술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대표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니에요. 입술을 좀 깨물었더니...

 피가 좀 난 거에요.

 별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쨋든 상황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내가 대답했다.





"별 거 아니긴 입술이 많이 터졌는데?

 훈지 니가 수업 때 속썩였니? 입술을 왜 깨물어?"





'훈지씨 때문에 입술 터진 건 맞긴 하네..ㅎ'



나 혼자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그 때,

훈지씨가 연고 뚜껑을 열면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지금 연고 바르려던 참이라 잠까만 나와 보세요."





"그걸 왜 니가 발라?? 

 나 졸업은 못 했어도 의대 입학했던 사람이야.

 그거 이리 줘봐...너보다야 내가 낫지." 





"연고 하나 바르는데 의대가 여기서 왜 나와요?"





훈지씨도 지지 않았다.





'와...이거 지금 뭐 하는 상황이야...

 미치겠네 정말...'





나는 그냥 여기서 뛰쳐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생님, 입술 좀 대 봐요. 

아니다, 그냥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있어요.

연고 입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니까...

움직이지 말아요."





결국, 훈지씨는 내 입술에 연고도 손수 발라 주시고

거즈에 밴드까지 야무지게(?) 붙여 놓으셨다.




나중에 집에 가서 거울을 보니 

거즈를 얼마나 크게 붙여 놨던지,

패싸움하고 겁나 많이 얻어 맞은 

일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훈지씨는 몸으로 하는 건 다 잘 하면서도

손은 똥손이었다. 어쩐지...;;




훈지씨 뒤로 한 발 물러 서 있던 

싸늘한 표정의 대표가 말했다.





"오늘 수업은 다 끝난 거지?

우리 친구 된 기념으로 같이 저녁 먹으려고 왔는데, 

괜찮지?"





"네? 저녁이요?"





"아니, 친구 먹기로 해 놓고 "네"는 또 뭐야?

 편하게 불러..나도 이제 정아라고 부른다. 

 알았지?"





"대표님은 친구를 뭐 이렇게 강압적으로 만들어요."





지지 않는 훈지씨...





"훈지, 너 오늘 저녁 때 라디오 스케줄 있더라?"



"오늘 직원들 다 약속 있다고 퇴근하고,

 내가 같이 저녁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같이 먹어줄 거지?"





"어..그래, 그러지 뭐..

 저녁 같이 먹는 게 뭐 어렵나.."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이상 존대말 쓰기도 어색하고,

그냥 친구 해 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훈지 수업 끝났으면 

 이제 사무실 가서 라디오로 출발해야지!! 

 좀 일찍 움직이지 않으면 퇴근 시간이랑 겹쳐서 

 위험해.

 가서 잘 하고!!" 





난 훈지씨의 삐친 듯한 표정이 귀여워서, 

그냥 좀 즐기기로 했다.





"과제는 이따 톡으로 보낼께요.

 스케줄 잘 하세요, 훈지씨."





"선생님, 우리 아까 못 한 얘기는 이따 마저 해요."





훈지씨는 대표에게는 따로 인사말도 없이,

고개만 꾸벅 하고 나가 버렸다. 





훈지씨가 나가자 마자 대표가 물었다.



"아까 못 한 얘기가 뭐야?"





"아..아까 수업하다가 

 설명을 다 못 한 부분이 있어서...

 그거 얘기하는 건가.."





나는 어물쩡 넘겨 버렸다.





"우리 저녁 뭐 먹을까?

어떤 거 좋아해? 

내가 친구 된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줄께."





대표가 신이 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내가 먹고 싶은 걸로 먹어도 되는 거야?

 내 컴포트 푸드가 있긴 한데..."





"컴포트 푸드가 뭐야? 뭐.. 새로 나온 메뉴인가?"





"아니..그게 아니고,

 우리가 보통 소울 푸드라고 부르는 게 콩글리쉬고

 원래는 컴포트 푸트가 맞는 표현이라서...

 미안...잘난 척 하려는 건 아니야.."





"아...

소울 푸드도 영어라서 맞는 건 줄 알았는데 

콩글리쉬였구나.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영혼의 음식 그런 거 맞지?"





"어, 맞아...나는 돈까스가 컴포트 푸드야..

 어렸을 때 엄마랑 장보러 가면 항상 돈까스 먹고 

 후식으로 밀크 쉐이크 먹었거든."





"와...그랬구나...

 나는 그런 게 있었나...

 오늘 고민 좀 해 봐야 겠다..

 내 컴포트 푸드가 뭐가 있는지.."



"어쨋든 오늘은 우리 정아 선생님 수업하느라 

 고생했으니까 기분 좋게 돈까스 먹어야겠다.

 회사 근처 돈까스 맛집 있어..

 여직원들이 좋아하는데.

 거기 갈까? 괜찮아?"





"응, 좋아!!"





"정아, 너 생각보다 더 멋진 여자구나!!" 

<16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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