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52화. 나의 별

[52화 추천 bgm- after work by late night soul]




나도, 훈지씨도 며칠 동안

서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그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는 게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나대로 정리할 것들이 많았다.




한편으론,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대표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정아, 너 그래도 떠나기 전에

훈지한테 이야기는 할 거지?]






사실 나도 아직 답을 내리지 못 했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생각은 한쪽으로 미뤄둔 채,

당장 해야 할 일만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새로운 장편 소설의 번역을 시작했다.





이 책은 아마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무리를 하게 될 첫 번째 책이 될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한 후,

김대표를 통해

훈지씨가 스케줄이 없는 날을

확인했다.






그 전날,

훈지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훈지씨,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요?]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훈지씨. 잘 지냈어요?"





"...."





"여보세요?"





"언제요?"





"아..오늘 밤에요..

내일 스케줄 없는 건 확인했는데

혹시 훈지씨 다른 일정 있으면 다음에 가요."





가라 앉은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이따 데릴러 갈께요.

 촬영 끝내고 가면 10시쯤 될 거에요."






"알았어요. 그럼 이따 봐요."






오늘은 번역 일을 잠시 미뤄 두고,

짐 정리를 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9시 30분이 좀 지나서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20분 뒤에 도착 예정이에요.]





[네...주차장에서 기다릴께요.]





한 병에는 따뜻한 커피와,

다른 한 병에는 아이스 커피를 넣은

텀블러 두 병을 쇼핑백에 넣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나를 본 그는 내려서

조수석 문을 열고 기다렸다.





며칠 못 본 사이에

그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




우린 인사도 없이,

우선 차에 탔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시동도 걸지 않은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훈지씨, 우리 오래 간만에 봤는데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돼요?"





"어디로 가면 돼요?"





"....내 휴대폰에 주소 찍어 놨어요.

 여기요.."





그는 내 휴대폰을 거치대에 걸고,

아무 말 없이 출발했다.






"밤이라서 디카페인으로 준비했는데,

 훈지씨는 따뜻한 거랑

 아이스랑 뭘로 마실래요?"






"나는...주고 싶은 걸로 줘요.."







"그럼 따뜻한 걸로 줄께요.

 덥지 않으니까.."






따뜻한 커피를 담은 컵을 홀더에 꽂았다.

나는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목이 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따라서 반 잔을 들이켰다.






"오늘은...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할 이유가 뭐에요?"






"그냥... 목이 좀 말라서요.

 나 음악 좀 듣고 싶은데...

 훈지씨 휴대폰 좀 줄 수 있어요?"





그는 휴대폰을 건넸다.




이 적막이 너무 숨막혀서

무슨 음악이라도 틀어야 했다.

아니면..

내 심장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밤에 일할 때면 듣는 곡이 떠올랐다.





photo






"노래 좋네요..."






"밤에 잘 어울리죠?

 책상 조명만 켜고 이 노래 들으면서 일하면
 
너무 행복해져요."






그가 오늘 처음으로

미소 지으며 나를 봤다.





긴장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흑인인 거 알겠죠?

신기하게 흑인만이 갖고 있는 소울이 느껴져요.

적당히 느끼하고...

그런데 또 담백한 느낌이 있어요."






"뭐야..

 지금 DJ 놀이 하는 거에요?"






"야근을 마치고,

 피곤을 친구 삼아 퇴근하고 계시는

 전국의 직장인들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

 네오 소울이라고 하네요. After work ]







훈지씨가 소리내어 웃었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의 목소리와 웃음 소리.





그 웃음 하나 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훈지씨,

 잠깐만 휴게소에 들렀다 가요."





"출발한지 얼마 안 됐는데..

 화장실 가고 싶어요?"







"아니. 할 일이 있어요.

 잠깐이면 돼요."






잠시 후에,

그는 휴게소 한 쪽 구석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끈 후, 그가 나를 봤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그를 안았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너무 긴장되고,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가만히 안겨 있던 그가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53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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