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87화. 3일간의 동거(3)



“태형씨…오랜만이야.”

 

 

“정아 너 언제 한국에 온 거야?

 왜 말 안 했어?

 아니 그건 그거고…

 왜 훈지 집에 잠옷 차림으로 있는 거야?

 너희 미쳤냐? 막 나가기로 했어?”

 저 짐은 또 뭐고?

 여기서 지내고 있는 거야?"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입도 못 떼고 있는 날 보고

훈지씨는 김대표의 팔을 붙잡고

침실로 끌고 들어갔다.

 



‘하…그래…

 이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야.’

 



나는 훈지씨가 김대표를 방으로 끌고 들어간 사이,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느 틈에

둘은 방에서 나왔다.

 



내가 옷을 갈아 입은 모습을 보고,

훈지씨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왜 옷 갈아 입었어요?

 내가 분명 안 된다고 했잖아요.

 나랑 같이 호텔 갈 거에요?”

 



“태형씨가 같이 가 주면 되잖아요.

그러면 믿을 수 있죠?”

 



“아니요. 대표님도 못 믿어요.

아무도 안 믿어요.

이번만큼은 절대 양보 못 해요.”

 

 

나는 도움의 눈길로 김대표를 쳐다봤다.

 

김대표는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쭈볏거리며 말했다.

 




“정아가 호텔에 있으면서

 훈지가 들락거리는 것 보단

 차라리 여기가 낫지…

 들킬 걱정은 없으니까.”

 




“뭐야?

 아까랑 반응이 왜 이렇게 달라졌어?

 방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나온 거야?”

 



훈지씨는 팔꿈치로 김대표를 툭 쳤다.

 



“뭐야?

 말해…

 훈지씨가 뭐라고 협박했는지.”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이 일에서 빠질게.

 이제는 너희 둘이 알아서 해.”

 



김대표는 훈지씨 눈치를 슬쩍 보더니

소파에 앉았다.

 



“훈지 상처는 어때? 많이 아프지는 않고?”

 



“네…괜찮아요.

 아직 힘주면 아프기는 한데…

 그 정도는 뭐 참을 만 해요.”

 



“나는…훈지 팔 어떤가 궁굼해서 온 거야?

 이제 가봐야 겠다.

 3일 동안 푹 쉬고…

 정아는 언제 가는 거야?

 가기 전에 얼굴 볼 수 있어?”

 




“3일 동안 여기서 지낼 거니까

  대표님이 이리로 오시면 볼 수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어…그래…알았어.

 정아 너 잠옷 입고 있지 말고…

 옷 입고 있어.

 다 큰 성인 남녀가 한집에서 그러고 있으면 안 돼.

 알지? 응?”

 




김대표는 훈지씨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평소 그답지 않게 말을 아끼고

급히 가버렸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온 훈지씨는

앓던 이가 빠진 사람처럼 개운해 보였다.

 



“아우…조용하고 좋다.

 우리 영화나 한 편 볼까요?”

 



“훈지씨…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 걸까요?

 이건…

 줄리한테도,

 훈지씨한테도 맞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줄리는 모르겠고,

 하지만

 나는 나한테 주어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에요.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이 3일이...

 나에게 또 한 번의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날 새벽까지 영화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편안하게 잠들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줄리앙에게 미안할 정도로...

깊은 잠을 잤다.

 



다음 날 눈이 부셔서 잠이 깼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훈지씨는 덜그럭거리며

주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훈지씨, 주방에서 뭐해요?”





“아…깼어요?

 내가 아침을 좀 만들어 주려고요.

 콩나물 국 끓였고, 밥도 다 했고…

 집에 어머니가 갖다 주신 불고기가 있어서

 그것만 볶으면 돼요.”

 



“콩나물 국을 훈지씨가 끓였다구요?”

 



“아…근데…맛이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콩나물이 발만 담그고 간 것 같기도 하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먹어 볼래요?”

 



그가 콩나물 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여줬다.

 



‘이게 무슨 맛이야…맹물인가…

 콩나물이 들어간 건 맞나…’

 



“와~~너무 시원하고 맛있다.

 요리에도 재능이 있었네요.

 처음 끓인 거 맞아요?”

 



“진짜로?

 내가 아침이라서 입맛이 아직 없는 거였구나!

 어쩐지…

 내가 하겠다 마음먹으면 잘 하는데

 이상하다 했어요.ㅎ”

 



“너무 맛있게 잘 끓였어요.

 요리 솜씨 칭찬해요!!”

 



나도 모르게,

훈지씨의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려다,

황급히 손을 거뒀다.

 



“불고기는 이리 줘요.

 내가 볶을게요.

 팔도 아픈데 아침까지 준비했어요.

 시켜 먹어도 되고, 내가 해도 되는데…”

 



“감동했어요?”

 



“그럼요. 감동했죠.”

 

 

그렇게 기뻐하는 훈지씨를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훈지씨.’

 



“우리 아침 먹고 뭐할까요?

 드라이브 갈까요?”

 

훈지씨가 그릇에 밥을 푸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부상 당했을땐 정말 속상했는데,

 당신도 날 보러 한국까지 와 주고…

 이렇게 3일이나 함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우리 드라이브 갈까요?

 훈지씨 팔도 다쳤으니까 운전은 내가 할께요.”

 



“알겠어요.

 그럼 당신이 좋아하는 라떼랑 스콘부터

 미리 주문해 둘게요.

 우리 밥 먹는 동안 배달 오면 딱 맞겠죠?

 예전엔 항상 당신이 먼저 이렇게 챙겨 줬잖아요.

 이제 내가 해 줄게요.”

 



“훈지씨…  

 그런 거 다 기억하고 있었네요?”

 


“나는 당신에 관한 건 하나도 잊은 거 없어요.

 특히 나한테 해 준 작은 배려들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해요.”

 

 
"우리는 이제...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88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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