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94화. 뜻밖의 제안

 

"여기까지는 직항도 없잖아요.

 많이 피곤하죠?

 궁금한 건 천천히 물어볼 테니까

 우선 집으로 가서 좀 씻고 쉬어요.

 배 안 고파요?"





"이제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졸린 것 같기도 하고...

 배도 좀 고픈 것 같아요."





"어서 가요.

 한국 음식은 없고...

 내가 파스타 해 줄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카페 출입문 앞에 그대로 세워져 있는

그의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가방이 왜 이렇게 커요?"





"하루 이틀 있을 것도 아니니까요."





"휴가를 얼마나 받은 거에요?"





"집에 가서 얘기해요..."




그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

말끝을 흐리며 코를 찡긋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그에게 그렇게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면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늘 즉흥적이고,

계획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새로운 면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몰랐던 걸까...






나는 그를 데리고

프리힐리아나에 있는 작은 내 보금자리로 향했다.





그는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작은 집에 놀라는 듯했다.





"와~! 무슨 인형의 집 같애요.

 여기가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구나!'





"내 보금자리지, 왜 훈지 씨 보금자리에요?"





"앞으로 나도 여기서 살 거니까요!"





"휴가를 얼마나 받은 건데요?

 1주? 2주?"





"아니요. 1년!"





"뭐라구요? 1년이요?"





"그 때 정아씨가 우리 집에 와서 3일 있었던 날.

 그 전부터 대표님한테

 그 때 찍던 영화 끝내면

 2년은 휴가 달라고 얘기해 놨었는데

 그날 정아씨가 우리 집에 머무르는 걸

 눈감아 주는 대신 1년이나 줄었어요."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함께 사는 거니까...말하자면 동거죠!"





"뭘 하자구요? 미쳤어요?

 아니... 이게 도대체 다 무슨 말이에요?

 여기서 1년을 지내겠다구요? 나랑?

 나랑 한 마디 상의도 안 했잖아요?"





"정아씨도 한국 떠날 때

 나랑 한 마디도 상의 안 했어요."


"...기억 안 나요?"






"그건 나 혼자 떠나는 거지만,

 훈지씨는 지금 나랑 함께 살겠다면서요?

 엄연히 다르죠.

 이건 내 동의도 필요한 일이잖아요."






"둘 사이의 관계를 끝낼 때도

 두 명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거에요.

 그렇게 혼자 떠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요."





그는 집안을 둘러 보면서 이야기하다가

나를 돌아봤다.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집에는 방도 하나 밖에 없어요." <95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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