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96화. 황소고집

sophie97
2026.08.01Dilihat 28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지금 한국이 몇 시인지 계산해 봤다.
김대표는 이미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훈지 씨 몰래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태형씨. 나야."
"어, 혹시 너 훈지 만났니?
잘 도착했어?"
"훈지 씨 잘 도착했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근데 훈지 씨 좀 어떻게 해 봐.
너무 막무가내야.
왜 1년이나 휴가를 준 거야?"
"그건 내 의지는 아니지...
나 그렇게 악덕 대표 아니잖아.
본인도 어느 정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 장소가 네 옆이라는 것 뿐이지.
나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정 연기에도 도움이 될 거고.
난 훈지 결정 존중해."
"아...뭐야?
지금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야?
훈지 씨 부모님도 이 사실을 아시고 계셔?"
"글쎄...그냥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해서
떠난 걸로 아시고 계시지 않을까?"
"그래? 알았어!
그럼 그걸로 훈지 씨랑 다시 한 번 얘기해 봐야 겠다."
"괜히 힘 빼지 마...정아야.
훈지는 한 번 고집부리면 아무도 못 말려."
"하...진짜 너무 막막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훈지 씨는 내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소파에 앉았다.
어떻게 해야 그를 가장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에게도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어제 이 시간만 해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하루 밤을 꼬박 고민한 결과
결국 어느 정도의 절충안을 생각해 냈다.
나는 그가 깨기만을 기다리면서
오늘 해야 할 번역 일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방문이 열리고 그가 나왔다.
"잘 잤어요?"
"나는 잘 잤는데... 정아씨는 어디서 잤어요?
내 옆에서 잔 거 아니죠?
혹시 소파에서 잤어요?"
"아니요. 나는 한숨도 못 잤어요.
훈지 씨가 큰 과제를 안겨 줬잖아요."
"아... 밤새 고민한 거에요?
정말 왜 그래요...
가끔은 좀 단순하게 생각해도 되잖아요."
"이렇게 큰 일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생각해요?
"나는 지금 배가 고픈데...
우리 아침 먼저 먹고,
그 다음에 같이 고민하면 안 될까요?"
"세수하고 나와요.
오늘 아침은 오므라이스 어때요?"
"나는 당신이 해 주는 거면 뭐든지 좋아요!"
'저럴 때는 너무 사랑스러운데...
고집 부릴 때는 황소가 따로 없다니까.'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나 이 동네 산책 좀 먼저 하고 싶은데...
어제 카페 찾으면서 돌아다녀 보니까
마을이 너무 예쁘던데요?"
"아...맞다!
미겔 카페 어떻게 찾았는지 아직 안 들려줬잖아요."
"음...오기 전에 이 동네 카페들을 다 찾아봤어요.
그래서 하나씩 다 들어가 보려구요.
미겔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으니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 동네 카페들을 다요?"
"검색해 보니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구요.
오래 걸려도 이틀이면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훈지 씨... 너무..."
"무식했어요?"
"아니요... 너무... 감동적이라구요."
"아니...
어제부터 그런 그윽한 눈으로 쳐다 보지 말라구요.
닭살 돋아서 미치겠네."
그는 자신의 팔을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그럼 어떡해요.
너무 감동적인데..."
"그렇게 감동적이어도 나랑 사는 건 싫어요?"
"싫다는 게 아니에요.
나는 어제 밤새 고민해서 결론을 냈어요.
지금 이야기 꺼내요?
아니면 훈지 씨 산책 먼저 할 거에요?"
"나가요.
우리 천천히 해요.
나 어제, 아니구나...
사실은 그저께 도착했어요.
첫날에 들어갔던 카페들은 다 헛탕이었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를 꽉 안아 주었다.
"우리 이웃이 되도록 해요!" <97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