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at aku bertemu lagi dengan mantan pacarku itu di panggung yang sama?
미니몽
17 1
Kim So-jung
일곱 번째 밤

08:47 PM
[2020년 3월 9일 월요일, 서울 서대문구의 작은 카페 영업 종료 직전]
빗방울이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손님이 모두 빠져나간 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과 커피 머신을 닦는 소리만 남아 있었다.
혜정은 행주로 테이블을 닦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이혜정
이제 마감해도 되죠?
점장
응.
점장
입간판 넣고 쓰레기만 버리면 돼.
먼저 옷을 갈아입은 아르바이트생이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바라보다가 혜정에게 다가왔다.
아르바이트생
혜정아, 미안한데 쓰레기도 네가 버려주면 안 될까?
아르바이트생
나 오늘 약속에 늦어서.
혜정은 잠시 쓰레기봉투를 내려다봤다.
봉투가 두 개나 되는 데다 밖에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상대의 초조한 표정을 보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정
응.

이혜정
내가 버릴게.
아르바이트생
진짜?
아르바이트생
고마워.
아르바이트생
다음에는 내가 할게.

이혜정
괜찮아.

이혜정
조심해서 가.
아르바이트생이 서둘러 카페를 나갔다.
점장은 한숨을 내쉬며 혜정을 바라봤다.
점장
넌 또 거절 못 했지?

이혜정
약속에 늦었다잖아요.
점장
그 친구 지난주에도 약속 있다고 너한테 부탁했어.

이혜정
그래도 제가 조금 늦게 가면 되니까요.
점장
그러다 네가 맨날 손해야.
혜정은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이혜정
저는 괜찮아요.
점장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점장
그래.
점장
문단속 잘하고 가.
점장
비 많이 오니까 택시 타고.

이혜정
네.

이혜정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후 9시가 되자 점장까지 카페를 나갔다.
혼자 남은 혜정은 앞치마를 벗고 쓰레기봉투 두 개를 양손에 들었다.
그때 휴대전화 화면이 켜졌다.
배터리 8%.
혜정은 충전기를 찾다가 이미 가방 안에 넣어둔 보조배터리가 방전됐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혜정
아......

이혜정
오늘따라 왜 이러지.
*
09:12 PM
[카페 뒤편 골목]
카페 문을 잠근 혜정은 우산을 펼쳤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빗물이 우산 아래로 들이쳤다.
쓰레기를 버리고 큰길로 나가려던 혜정은 골목 입구에 설치된 공사 안내판을 발견했다.
도로 보수 공사로 인한 보행로 통제.
평소 이용하던 길이 철제 펜스로 막혀 있었다.
혜정은 휴대전화로 지도를 켰다.
남은 배터리는 5%였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면 폐업한 호텔 건물을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지도에는 호텔 지하주차장을 통과하면 시간이 절반 정도 단축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혜정은 어두운 호텔 건물을 바라봤다.
간판의 불은 꺼져 있었고, 입구에는 '임시 폐쇄'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다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차량 통로는 막혀 있지 않았다.

이혜정
그냥 돌아갈까......
휴대전화 화면에 버스 도착 알림이 나타났다.
막차 전 버스, 11분 후 도착.
혜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이번 달 생활비가 빠듯했다.
먼 길로 돌아가면 버스를 놓칠 가능성이 컸다.
결국 혜정은 우산을 접고 지하주차장 입구로 발을 옮겼다.

이혜정
통과만 하면 되니까.
지하로 내려갈수록 빗소리가 멀어졌다.
대신 혜정의 운동화가 젖은 바닥을 밟는 소리가 주차장 안에 길게 울렸다.
철벅. 철벅.
혜정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
09:19 PM
[폐호텔 지하주차장 B2 구역]
혜정이 B2 구역을 지나던 순간, 멀리서 자동차 전조등이 켜졌다.
놀란 혜정은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검은색 승합차 두 대가 서로 마주 본 채 세워져 있었다.
차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여섯 명이 서 있었다.
그중 한 남자가 은색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빽빽하게 묶인 현금이 들어 있었다.
혜정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남자 1
약속한 금액과 다르잖아.
남자 2
나머지는 장부 확인이 끝나면 넘긴다.
남자 1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남자 2
믿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닐 텐데.
남자 2
여자친구가 이미 냄새를 맡았어.
혜정은 숨을 삼켰다.
'여자친구?'
처음에는 평범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들의 분위기는 누군가의 연애 상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자 1
그 여자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아?
남자 2
김소정을 우습게 보지 마.
남자 2
그 여자는 한번 문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아.
한 남자가 검은 서류 가방을 건넸다.
그 순간, 혜정의 가방 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우우웅-.
혜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카페 점장이 보낸 전화였다.
남자들의 대화가 일제히 멈췄다.
남자 1
방금 무슨 소리야?
혜정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껐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남자 한 명이 손전등을 켜고 기둥 쪽으로 다가왔다.
남자 3
거기 누구 있어?
혜정은 입을 틀어막았다.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손전등 불빛이 기둥 가장자리를 스치는 순간, 혜정은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 3
누구야!
남자 1
잡아!
*
09:22 PM
[폐호텔 지하주차장 B2~B3 연결 통로]
혜정은 미친 듯이 뛰었다.
뒤에서는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남자 3
멈춰!

이혜정
도와주세요!
혜정의 목소리가 텅 빈 주차장에 메아리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출구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달렸지만, 계단 앞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이혜정
아니, 왜......
혜정은 방향을 바꿔 다시 뛰었다.
그때 앞쪽에 놓여 있던 서류 가방 하나가 누군가의 발에 차여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가방이 열리며 종이와 검은색 수첩 하나가 쏟아졌다.
혜정은 수첩을 밟고 중심을 잃었다.
쿵-!
무릎이 바닥에 부딪혔다.

이혜정
아......
혜정은 아픈 무릎을 붙잡으려다가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본능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검은 수첩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남자 3
거기 서!
혜정은 수첩을 가방 안에 넣은 뒤 가까운 차량 사이로 몸을 숨겼다.
휴대전화를 켜 긴급전화를 누르려 했지만 화면에는 배터리가 없다는 표시만 나타났다.
그 순간 누군가 혜정의 가방끈을 붙잡았다.

이혜정
놔주세요!
남자가 혜정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남자 3
뭘 들었어?

이혜정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이혜정
진짜 지나가기만 했어요.
남자 3
가방 내놔.

이혜정
싫어요!
남자가 혜정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혜정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가방을 놓지 않았다.
남자 3
좋게 말할 때 내놔.

이혜정
살려주세요......
멀리서 또 다른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세단이 빠른 속도로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량이 급정거하며 남자들의 퇴로를 막았다.
차 문이 열렸다.
*
09:25 PM
[폐호텔 지하주차장 B2 중앙 구역]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사람은 키가 큰 여자였다.
긴 검은 코트를 입은 소정은 빗물이 맺힌 바닥을 천천히 걸어왔다.
그 뒤로 예린과 작은비가 양쪽으로 퍼졌다.
큰은비는 태블릿을 든 채 차량 옆에 섰고, 유나는 주변의 출입구를 살폈다.
예원은 차 문을 열어둔 채 상황을 지켜봤다.

김소정
그 손 놔.
혜정을 붙잡은 남자가 비웃었다.
남자 3
김소정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김소정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소정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차장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남자는 혜정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남자 3
가까이 오면 얘 목부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린이 남자의 손목을 낚아챘다.

정예린
사람을 방패로 쓰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아?
예린이 남자의 팔을 가볍게 틀었다.
남자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갔다.
남자 3
악!
풀려난 혜정이 휘청거리자 소정이 재빨리 허리를 붙잡아 세웠다.

김소정
괜찮아?
눈앞에 나타난 낯선 여자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혜정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혜정
저, 저는......

김소정
말하지 마.

김소정
숨부터 쉬어.
소정은 혜정을 자신의 뒤로 보냈다.
작은비가 앞으로 나서며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봤다.

황은비
언니, 나머지는요?

김소정
다치지 않을 만큼만.

황은비
그게 제일 어렵던데.
작은비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김예원
작은비야, 너무 세게 하지 마.

황은비
네가 치료하면 되잖아.

김예원
그런 의미로 의료를 맡은 건 아닌데.
다른 남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유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최유나
소정 언니, 오른쪽 통로에서 세 명 더 내려오고 있어요.

정은비
언니, 서쪽 셔터는 제가 잠갔어요.

정은비
경찰 무전은 아직 없고요.

정예린
큰은비야, CCTV는?

정은비
이미 반복 영상 걸어놨어요.

정은비
지금부터 12분 동안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밖에서는 몰라요.

정예린
역시 빠르네.

정은비
칭찬은 끝나고 해주세요.

정은비
지금 손 떨리니까.
큰은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정은 혜정 쪽을 돌아봤다.

김소정
예원아.

김예원
네, 언니.

김소정
저 아이 차에 태워.
예원이 혜정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김예원
걸을 수 있어?

이혜정
네.

이혜정
그런데 저분들은......

김예원
언니들이 알아서 할 거야.

이혜정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원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김예원
경찰이 오면 더 복잡해져.

이혜정
그게 무슨......
갑자기 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작은비가 남자의 손에서 쇠파이프를 빼앗아 멀리 던졌다.

황은비
예원아, 빨리 태워!

김예원
알았어.
예원은 혜정의 어깨를 감싸 차량 쪽으로 데려갔다.
혜정은 차에 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소정은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있는 사람처럼 침착했다.
소정과 혜정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김소정
괜찮으니까 앞만 봐.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 혜정의 떨림이 조금 멈췄다.
*
09:36 PM
[폐호텔 지하주차장 출구 검은색 세단 내부]
혜정은 뒷좌석에 앉아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붙잡혔던 자리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예원은 구급상자를 꺼내 혜정의 손목에 냉찜질 팩을 대주었다.

김예원
많이 아파?

이혜정
괜찮아요.

김예원
안 괜찮아 보이는데.

이혜정
그래도 저 때문에 다치신 분은 없으시죠?
예원은 대답하지 않고 혜정의 얼굴을 바라봤다.

김예원
이 상황에서도 우리 걱정부터 해?

이혜정
저를 구해주셨잖아요.
앞좌석에 앉아 있던 큰은비가 고개를 돌렸다.

정은비
넌 이름이 뭐야?

이혜정
이혜정이에요.

정은비
몇 살이야?

이혜정
스무 살이요.

정은비
어리네.

최유나
너도 소정 언니가 보면 어리거든.

정은비
유나야, 지금 그 말이 중요해?

최유나
네가 먼저 물어봤잖아.
큰은비는 작게 입술을 내밀었다가 다시 혜정을 바라봤다.

정은비
혜정아, 저 사람들이 무슨 얘기 하는지 들었어?
혜정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혜정
잘 모르겠어요.

이혜정
돈이랑 장부 이야기를 했고......

최유나
장부?
유나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혜정
네.

이혜정
그리고 여자친구가 온다고......
차 안이 조용해졌다.
큰은비와 유나가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이혜정
혹시 여자친구가 여러분이에요?
그 순간 조수석 문이 열렸다.
소정이 차에 올라탔다.

김소정
맞아.
혜정은 소정을 바라봤다.
소정의 코트 소매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이혜정
여자친구가 대체 뭐에요?

김소정
지금 네가 알 필요 없는 것.

이혜정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에요?

김소정
안전한 곳.

이혜정
집에 가면 안 돼요?

김소정
안 돼.
단호한 대답에 혜정의 얼굴이 굳었다.

이혜정
왜요?
소정은 백미러를 통해 혜정과 시선을 맞췄다.

김소정
저 사람들이 네 얼굴을 봤으니까.

이혜정
그래도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혜정
연락이라도 해야-

정은비
휴대전화 전원 꺼졌지?

정은비
충전해줄게.

김소정
아니.

김소정
아직 켜지 마.

정은비
위치 추적 때문이죠?

김소정
응.
혜정은 더욱 불안해졌다.

이혜정
잠시만요.

이혜정
저를 구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이렇게 데려가시는 것도 납치 아닌가요?
운전석에 앉은 예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예린
말 잘하네.

김소정
예린아.

정예린
죄송해요.

정예린
그런데 맞는 말이잖아요.
예린은 룸미러로 혜정을 바라봤다.

정예린
혜정아, 우리도 널 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은 없어.

정예린
누가 널 봤고, 어디까지 정보가 넘어갔는지만 확인하면 보내줄 거야.

이혜정
그 말을 제가 어떻게 믿어요?
예린의 웃음이 잠시 옅어졌다.
소정이 조용히 대답했다.

김소정
믿지 않아도 돼.

이혜정
네?

김소정
지금은 살아남는 게 먼저니까.
*
10:08 PM
[서울 외곽 여자친구의 비밀 아지트 앞]
차량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2층 단독주택 앞에 멈췄다.
혜정은 차에서 내리며 주변을 살폈다.
평범한 주택처럼 보였지만, 대문에는 번호키와 작은 카메라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작은비가 뒤따라오며 혜정의 가방을 바라봤다.

황은비
가방 줘.
혜정은 가방을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이혜정
왜요?

황은비
확인해야 하니까.

이혜정
제 물건이에요.

황은비
네가 뭘 들고 나왔는지 모르잖아.

이혜정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요.

황은비
그걸 어떻게 믿어?
혜정이 입을 다물자 예원이 작은비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김예원
작은비야, 겁먹었잖아.

황은비
겁먹었다고 확인을 안 할 수는 없잖아.

김예원
말을 조금 부드럽게 해.

황은비
나 부드럽게 말했는데.

김예원
그게?
큰은비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정은비
작은비야, 일단 안으로 들어가.

정은비
비 맞잖아.

황은비
네, 언니.
유나는 혜정에게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최유나
천천히 들어가.

최유나
무릎도 다쳤지?

이혜정
괜찮아요.

최유나
자꾸 괜찮다고만 하면 우리가 뭘 해줘야 할지 몰라.
혜정은 유나를 올려다봤다.
차분한 목소리에는 다그치는 기색이 없었다.
혜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정
조금 아파요.

최유나
그래.

최유나
그렇게 말하면 돼.
현관 앞에 서 있던 소정이 뒤를 돌아봤다.

김소정
다 들어와.
*
10:21 PM
[여자친구의 비밀 아지트 1층 회의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혜정과 여섯 사람이 마주 앉았다.
혜정의 앞에는 예원이 가져다준 따뜻한 물이 놓여 있었다.
소정은 테이블 맞은편 중앙에 앉아 혜정을 바라봤다.

김소정
처음부터 말해봐.

김소정
왜 호텔에 들어왔어?

이혜정
버스를 타려고 지름길로 지나가던 것뿐이에요.

황은비
폐업한 호텔이 지름길이라고?

이혜정
지도에 그렇게 나왔어요.

황은비
휴대전화는?

이혜정
전원이 꺼졌어요.

황은비
하필 거래 시간에, 하필 전원이 꺼지고, 하필 그곳을 지나갔다?

이혜정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혜정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예린이 작은비를 바라봤다.

정예린
작은비야, 너무 몰아붙이지 마.

황은비
하지만 예린 언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잖아요.

김소정
그만.
작은비가 입을 다물었다.
소정은 혜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김소정
가방 줘.
혜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소정이 가방을 열자 지갑과 파우치, 작은 우산과 카페 유니폼이 차례로 나왔다.
그리고 가방 가장 아래에서 검은색 수첩 하나가 떨어졌다.
툭-.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혜정도 놀란 눈으로 수첩을 바라봤다.

이혜정
저게 왜......
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유나
소정 언니.
큰은비는 수첩 표지에 새겨진 은색 문양을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정은비
이거 백야 장부에요.
작은비가 즉시 혜정을 바라봤다.

황은비
역시 뭔가 들고 나왔네.

이혜정
아니에요.

이혜정
도망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저도 모르게......
소정은 검은 장부를 집어 들었다.
첫 장을 펼친 소정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빼곡한 숫자와 날짜 사이에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사업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붉은색 글씨로 짧은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3월 13일, 여자친구 제거.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예린이 천천히 웃음을 지웠다.

정예린
나흘 남았네요.

정은비
소정 언니, 이게 진짜라면 우리 위치도 이미-
갑자기 아지트 전체의 불이 꺼졌다.
쾅-!
밖에서 무언가 대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보안 경보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경보음 : 외부 침입 감지. 외부 침입 감지.
작은비와 예원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은비
벌써 따라온 거에요?

최유나
불이 꺼진 건 단순 정전이 아니야.
큰은비가 태블릿을 켰지만 화면에는 붉은 오류 메시지만 반복됐다.

정은비
보안 시스템이 해킹당했어.

정예린
소정 언니, 제가 밖을 확인할게요.

김소정
혼자 가지 마.

김소정
작은비랑 같이 가.

황은비
네.
소정은 검은 장부를 코트 안쪽에 넣고 혜정에게 다가왔다.
혜정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소정을 올려다봤다.

이혜정
저 때문에 온 거에요?
소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혜정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혜정
저 때문에 언니들이 위험해진 거면 제가 나갈게요.

김소정
무슨 소리야?

이혜정
저 사람들은 저를 찾는 거잖아요.

이혜정
그러니까 제가-

김소정
네가 나가면 죽어.
혜정의 입이 다물렸다.
소정은 혜정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김소정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마.
밖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혜정의 손이 작게 떨리자 소정은 그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김소정
혜정아.
혜정이 고개를 들었다.

김소정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만 들어.
소정의 눈에는 조금 전까지 보였던 부드러움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 서울의 밤을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가 서 있었다.

김소정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가 살려.
1. 목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