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여름

[보넥도 빙의글/나페스] 안녕, 나의 여름 2화 : 시작

 

문제될 시 삭제, 아티스트 비하 의도 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현실과 무관합니다.

<브금과 함께 하면 몰입감이 좋습니다!>

 

 

Playlist l 이 여름이 우리의 첫사랑이니까

Playlist l 이 여름이 우리의 첫사랑이니까


 

문 앞에 서 있는 건 처음 보는 남자애였다

비에 젖은 우산을 한 손에 들고 있었고 교복 셔츠 어깨가 조금 젖어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의자에서 반쯤 일어난 채로 굳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나갈게요'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남자애는 우산을 문 옆에 세워두고 천천히 피아노 쪽으로 걸어왔다

 

???? : "왼손"

 

하나 : "...네?"

 

???? : "왼손을 그렇게 다 누르면 소리가 뭉개져"

 

그 애가 내 옆에 서서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었다

 

 

???? : "이렇게 세 개만 짚어 봐 아래 음 하나 띄우고"

 

시키는 대로 했다

내 멜로디 아래로 화음이 깨끗하게 깔렸다

아까랑 같은 곡인데 전혀 다른 곡처럼 들렸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애를 올려다봤다

그 애는 내 노트를 보며 오른손으로 다음 마디를 짚었다

한 마디

두 마디

 

그 애가 치는 소리는 내가 치는 소리랑 달랐다

 

같은 피아노인데 어긋난 음까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들렸다

건반을 누르는 손끝이 아주 가벼웠다

처음 만져보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만져온 사람의 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손을 확 뗐다

마치 뜨거운 걸 만진 사람처럼

 

???? : "...미안"

 

그 애는 그 말만 남기고 우산도 챙기지 않은 채 음악실을 나가버렸다

복도를 뛰어가는 발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나는 한참 동안 피아노 앞에 서 있었다

방금 그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딩동댕동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렸다

나는 허둥지둥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고 뛰쳐나갔다

.

 

문 옆에 세워진 남의 우산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그대로 두고


노트가 없다는 걸 안 건 그날 밤이었다

가방을 뒤집어 털고 책상 서랍을 다 열어보고 이불까지 들췄다

없었다

 

하나 : "...피아노 위"

거기밖에 없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발을 동동 굴렀다

노트에는 가사가 있었다

아무한테도 못 한 말들이 전부 거기 있었다

 

누가 그걸 읽으면

나는 학교에 못 다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트 걱정 사이사이로 자꾸 다른 게 떠올랐다

깨끗하게 깔리던 화음

 

그리고 손을 떼던 그 애의 얼굴

꼭 무언가에 들킨 사람 같았다

 


 

주말 내내 속이 타들어 갔다

 

토요일엔 학교에 가볼까 생각했다

교문 앞까지 가서 굳게 잠긴 철문을 보고 그냥 돌아왔다

일요일엔 기타를 꺼냈다가

노트가 없으니 뭘 쳐야 할지 몰라서 다시 넣었다

엄마가 왜 이렇게 한숨을 쉬냐고 물었지만

숙제가 많다고 할 뿐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가서 음악실부터 들르려고 했는데 또 버스를 놓쳤다

결국 또 걸었다

교문에 도착했을 땐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멎었다

 

창가 앞자리 그 애

늘 이어폰 한쪽을 끼고 문제집만 풀던 그 애가 내 자리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손에 내 노트가 들려 있었다

 

그 애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노트를 책상 위에 툭 올려놓았다

 

???? : "이거 네 거지"

 

반 애들 시선이 한꺼번에 몰렸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 : "곡이지 이거"

 

또 끄덕였다

 

???? : "코드까지 적혀 있던데 네가 쓴 거야?"

 

세 번째 끄덕임은 조금 늦었다

그 애가 노트 첫 장이 아니라 중간을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가 쓴 글씨 : '내가 작게 쓴 가사'

 

그 가사 위에 연필로 작게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여기 브릿지 넣으면 좋겠다'

 

내 글씨가 아니었다

 

???? : "명재현"

 

하나 : "...?"

 

재현 : "내 이름..너 아직 반 애들 이름 모르지"

 

들켰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재현 : "방과후에 음악실로 와 할 얘기 있어"

그 말만 하고 재현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반 애들이 수군거렸다

명재현이 먼저 말 거는 거 처음 봤다는 말이 들렸다

전교 1등이 전학생한테 무슨 볼일이냐는 말도 들렸다

 

전교 1등

나는 그제야 알았다

펜 끝으로 박자를 타던 그 애가 이 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애라는 걸

 

나는 노트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심장이 너무 시끄러워서 1교시 수업이 하나도 안 들렸다

몰래 노트를 펴서 그 연필 글씨를 다시 봤다

'여기 브릿지 넣으면 좋겠다'

내 곡을 끝까지 읽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방과후 음악실 문 앞에서 나는 오 분쯤 서 있었다

들어갈까

그냥 집에 갈까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를 세 번쯤 했을 때

 

안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1학년 : "어? 그때 그 누나다!"

 

빵을 안고 뛰던 그 애였다

오늘은 빵 대신 드럼 스틱을 거꾸로 쥐고 있었다

 

1학년 : "형 그 누나 왔어요! 빵 주워준 누나!"

 

재현 : "김운학 스틱 거꾸로 들었다"

 

운학 : "아 진짜?"

 

운학이 스틱을 바로 쥐더니 멋있게 한 바퀴 돌려 보이려다 그대로 놓쳤다

스틱이 날아가 심벌에 맞았다

챙 하는 소리가 음악실을 울렸다

 

운학 : "...방금 거 연습한 거예요"

 

재현 : "연습을 그렇게 했으면 안 되지"

 

음악실은 그날이랑 달라져 있었다

쌓여 있던 의자들이 벽 쪽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드럼 세트를 덮었던 천은 걷혀 있었다

칠판 구석에는 반듯한 글씨로 적힌 연습 시간표 같은 것도 보였다

누군가 꽤 오래전부터 여기를 드나들고 있었던 거다

그 반듯한 글씨는 노트에 적혀 있던 연필 글씨랑 똑같았다

 

운학이 내 앞으로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았다

 

운학 : "누나 앉아요 여기 제 자리인데 양보할게요"

 

하나 : "......"

 

운학 : "저는 김운학이에요, 1학년 3반이구요! 여기 원래 제가 청소 당번이었거든요"

 

묻지도 않았는데 운학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운학 : "별관 청소하다가 맨날 여기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귀신인 줄 알고 몰래 봤는데 재현이 형이 혼자 랩하고 있었어요"

 

재현 : "운학아"

 

운학 : "근데 진짜 완전 멋있었어요 누나 형 랩 들어봤어요? 진짜 미쳤어요 그래서 바로 저도 할래요 했죠"

 

재현 : "그만"

운학 : "형이 뭐 할 줄 아냐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거든요 근데 형이 그럼 드럼 해 하고 스틱 줬어요"

 

재현 : "제일 시끄러운 거 하고 싶다며"

 

운학 : "네 그것도 맞아요"

 

운학이 히히 웃었다

재현은 한숨을 쉬면서도 운학을 내쫓지 않았다

나는 둘을 번갈아 봤다

교실에서 한마디도 안 하던 재현이랑 지금 운학한테 잔소리하는 재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신기했다

 


 

재현이 칠판 앞에 섰다

분필로 날짜 하나를 적고 동그라미를 쳤다

 

7월 18일

 

그 아래에 줄을 긋고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총괄 명재현

드럼 김운학

메인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이름이 적힌 건 두 줄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비어 있었다

 

재현 : "몇 년 전까지 이 학교에 밴드부가 있었대 그러다 없어졌고 이 방은 창고가 됐어"

재현이 분필 끝으로 날짜를 톡톡 두드렸다

 

재현 : "여름 축제 이날 우리가 선다"

 

칠판 옆 달력은 아직 오월에 멈춰 있었다

칠월까지 손가락으로 세어 보았다

일곱 주

길다고 해야 할지 짧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운학이 박수를 쳤다

나는 칠판에 적힌 빈칸들을 봤다

기타도 베이스도 키보드도 없는데

사람이 둘뿐인데

 

재현 : "사람은 모으면 돼"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재현이 말했다

그리고 내 노트를 턱으로 가리켰다

 

재현 : "곡은 생겼으니까"

 

하나 : "...?"

 

재현 : "네 거 말이야 그 노트에 있는 거"

 

재현이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건반에 손을 올리더니 내 멜로디를 한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낮은 목소리로 내 가사를 얹었다

 

노래인지 말인지 모를 그 소리가 먼지 쌓인 음악실을 채웠다

내가 혼자 방에서 소리 죽여 부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 말들이 남의 목소리로 나오니까 이상하게 덜 초라했다

오히려 멋있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재현이 손을 멈췄다

 

재현 : "이거 무대에서 하고 싶어"

 

입을 열었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운학 : "누나도 같이 해요 네?"

 

운학이 스틱을 꼭 쥐고 나를 올려다봤다

빵을 받던 날처럼 소문 같은 건 하나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나도 모르게

 

하나 : "...응"

 

소리가 났다

내 목소리였다

 

나는 내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재현이 피식 웃었고 운학은 스틱을 하늘로 던졌다가 또 놓쳤다

챙

심벌이 한 번 더 울렸다

 

제일 놀란 건 나였다


안녕하세요! 히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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