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을 집에 들였습니다

2화 - 좋은 소식

토요일 밤과 일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두터운 벽이 있음에도 옆방이 신경쓰여 잠을 설쳤고, 집에서 마주치기 껄끄러워 일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친구를 만나 밤 늦게 들어왔다.

하민은 내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한 것 치고는 날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았다.

 

아무튼 거의 얼굴 볼 일 없던 주말이 끝나고, 등교를 준비하는 분주한 월요일 아침이 왔다.

방문을 열자마자 옆방 문도 동시에 열렸다.

 

새 교복을 갖춰입은 하민이 나를 살짝 내려다보며, 느슨하게 매고 있던 넥타이를 고쳐 맸다.

 

 

“왜 그렇게 봐? 착각하게.”

“안 봤거든.”

 

얘가 왜이렇게 능글맞아졌지. 먼저 시선을 피하고 거실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엄마가 아침을 차려두었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딸기잼. 어쩐지 껄끄러워져 토스트를 손으로 집으니 엄마가 성을 냈다.

 

“부스러기 떨어지잖아! 앉아서 먹어.”

 

앉으라고…? 이미 의자에 앉아있는 하민을 흘끔 쳐다봤다. 하민은 묵묵히 토스트에 잼을 바르는 중이었다.

어색하고, 같이 가기 싫은데.

 

“아, 나 오늘 일찍 가야 돼.”

“왜?”

“할 거 있어. 다녀올게!”

 

급하게 자리를 피하듯 집을 나왔다. 휴, 두 달동안은 30분이라도 먼저 일어나서 학교를 갈까봐.

아침부터 어색하다 정말.

 

현관을 나와 복도를 지나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데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싶어 뒤를 돌아보자 하민이 운동화를 신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너 벌써 다 먹었어?”

“응.”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먼저 발을 옮기고 나서 하민도 자연스럽게 따라 탔다.

 

둘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거울에 비친 하민은 넥타이도 제대로 맸고, 교복 재킷 단추까지 단정하게 잠근 상태였다.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 층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밖으로 나와, 하민을 보고 똑바로 이야기했다.

하민도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멈춘 후 나를 내려다본다.

 

“학교까지 같이 가지는 말자.”

“같은 학교 가잖아.”

“그건 아는데, 따로 가자고 했잖아.”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라며.”

“그러니까.”

“아직 학교 아닌데.”

 

하민은 그렇게 말하고 내 옆을 지나갔다.

할 말이 없어졌다.

 

돌아갈까 하다가, 결국 나란히 학교로 향했다. 정확히는 하민이 앞에서 걷고, 내가 몇 걸음 떨어져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칠까 주변을 살피는 사이 하민이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신호를 기다리던 하민이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얼마 안 떨어질거면 그냥 옆에서 걷지 그래.”

“뭐? 싫어.”

“서운하네.”

 

근데 이 자식이 은근슬쩍 반말을 하잖아? 째릿 째려보는데 마침 신호가 바뀌었다. 하민은 본인이 같이 걷자고 말해놓곤, 신호가 바뀌자마자 먼저 앞으로 쌩 나갔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아졌다. 하민을 힐끔거리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아무래도 키가 크고, 얼굴도 뭐 잘생긴 편이긴 하지. 하민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걷지만 신경은 하민에게 조금 쏠린 상태였다. 그 때, 내 이름을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여주야.”

 

돌아보자 예준이 이어폰 한쪽을 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일요일엔 잘 들어갔어?”

“어? 예준아. 어어, 이른 아침부터 귀찮았지.”

“아니야, 재밌었어.”

 

 

머쓱하게 팔을 들어 뒷머리를 긁적이는 날 보더니 예준이는 푸핫 웃었다. 그의 청량한 웃음에 나도 하하, 하하 하고 멋쩍게 따라웃었다. 일요일에 함께 놀았던 친구가 바로 예준이었다.

 

하민은 걸음이 멎은 내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신경이 쓰여 그 쪽을 한 번 쳐다보니, 예준이도 따라서 하민이 있는 곳을 봤다. 그러더니 눈이 커졌다.

 

“유하민?”

 

그 목소리에 하민은 바로 뒤를 돌았다. 밝은 남자아이처럼 씩 웃어보이곤 예준에게 꾸벅, 고개로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에요, 형.”

“와, 진짜 너 맞네. 언제 왔어?”

“토요일에 왔어요.”

“아예 한국 들어온 거야?”

“네.”

“그럼 우리 학교로 전학 온 거고?”

 

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준은 신기한 듯 하민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키 엄청 컸네. 예전엔 이만하지 않았나?”

 

예준이 손바닥을 자기 어깨쯤에 대자 하민이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비슷했지.”

 

내가 끼어들자 예준이 이번에는 손을 내 머리 위에 올렸다.

 

“너는 하나도 안 컸네.”

“야, 머리 눌려.”

 

내 머리 통을 다 덮는 예준의 손을 퉁명스레 쳐냈다. 하민은 말없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머지않아 예비 종이 울렸다.

 

“일단 들어가자. 하민이는 교무실부터 가야 하지?”

“네.”

“학교에서 보면 아는 척해.”

 

예준이 하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내 가방을 잡아당겼다.

 

“너도 빨리 와. 진짜 늦겠다.”

“어어, 가야지. 하민이 너 교무실 위치는 알지?”

“알지.”

 

내 가방에서 예준의 손을 떼어놓곤, 하민의 쪽으로 훅 다가갔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척하기로 한 거 잊지 마.”

“이미 아는 사이인 걸 들켰는데?”

“같이 산다는 것만 말하지 마.”

 

 

하민은 흐응,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기분 좋아보이지, 기분 나쁘네.

예준이 빨리오라고 하는 소리에 “그럼, 나 간다!” 하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렇게 내겐 꽤나 일상을 벗어난 월요일 아침이 지나가고있었다.

 

 

-

 

 

그러곤 학교에서 사실 몇 번 못 마주쳤다. 학년별로 쓰는 층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잠시 마주쳤을 땐, 하민의 주변에는 벌써 같은 반으로 보이는 애들이 붙어 있었다.

 

전학 첫날부터 적응 하나는 빠르네.

뭐, 외모도 준수하고. 나한텐 좀 능글맞긴 하지만 원래도 친구랑은 잘 어울리는 편이었지. 그런 생각을 잠시 했던 것도 같았다.

 

오늘은 담임 선생님과의 진로 상담이 오후에 잡혀있었다. 생각보다 진부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원래 하교 시간에서 1시간 정도가 지난 뒤에야 나는 교문으로 나올 수 있었다.

쌤 생각보다 말이 많으시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교문에 고작 며칠 전부터 익숙해진 덩치의 남자가 있었다.

하민이었다.

 

“너 왜 아직 안 갔어?”

 

하민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길 모르니까 같이 가려고.”

“아침에 왔던 길 그대로 가면 되잖아.”

“길치라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이가 없어 벙찐 내 표정을 보긴 한건지, 하민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집 쪽으로 걸었다.

나도 이내 그 옆에 서서 걸었다. 뭐 어차피 모두 하교한 시간이니까, 아무도 없고.

한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평화로운 느낌.

 

눈만 슬쩍 굴려 옆을 쳐다보니 하민은 아침과 달리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표정은, 평소의 무표정 그대로였다.

아는척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학교 어떠냐고 물어보면 좀 이상하려나. 아니, 그보다는 아줌마같나 …?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하민이 먼저 정적을 깼다.

 

“예준이 형이랑 같은 반이야?”

“어? 응.”

“계속 친하게 지냈어?”

“그렇지. 학교도 계속 같이 다니고. 지금은 같은 반이니까.”

“친한가봐. 주말에도 내내 같이 있고.”

“…….”

 

불편한 주제가 나왔다. 하하, 작게 웃어넘기니 하민도 이내 조용해졌다.

신호등 앞에 도착했는데도 하민은 건너편만 바라봤다. 보행 신호가 켜졌지만 움직이지 않기에 내가 먼저 길을 건넜다.

몇 걸음 뒤에서 하민이 따라왔다.

 

“누나.”

“응?”

“아직도 예준이 형 좋아해?”

 

걸음이 멈췄다.

하민은 한 발짝 뒤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초록색 신호가 17, 16, 소리를 내며 까이고있었다.

 

“갑자기 그걸 왜 물어?”

 

가만히 선 채로 꽤 기분 나쁘다는 듯 대답이 나갔나. 말투가 조금 날카로웠던 것 같다.

하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팔을 잡고 나머지 횡단보도를 건넜다. 몇 초 되지 않아 신호는 다시 빨간불로 바뀌었다.

조금 기분 나쁘게 들렸으려나. 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으며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 하민은 아무 말도 없었다.

 

“2년 전에 고백했다가 차였어.”

“…….”

“끝난 지 오래야. 지금은 그냥 친구고.”

 

하민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한테는 좋은 소식이네.”

 

그 말은, 기분이 나빴어야 했는데.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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