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사연애] 귀공자

13화. 신경 쓰이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방에 달린 키링부터 눈에 들어왔다.

어제 원빈이 사준 것.

 

괜히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집에 가기 싫다고 손끝을 잡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그때는 심장이 왜 그렇게 뛰었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원빈을 의식하기 시작한 거였다.

아직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어색 후배는 아니었다.

 

 

*

 

 

학교에 도착해서 강의실로 가는데 복도 끝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야, 원빈아."

 

고개를 돌리자 원빈이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MT에서 친해진 것 같은 남자 동기 몇 명과 같이 있었고, 그 옆에는 여자 동기도 한 명 있었다.

 

"오늘 수업 끝나고 뭐 할 건데?"

"모르겠는데."

"너 맨날 집만 가잖아."

 

원빈이 웃었다.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웃었다.

원빈이.

 

내가 아는 박원빈은 사람들 앞에서 웃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애였는데.

이제는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게 농담까지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처음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원빈이 학교에 잘 적응한 것 같아서 괜히 뿌듯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여자애가 원빈 팔을 툭 치면서 말했다.

 

"박원빈, 너 어제 또 연락 안 했지?"

"뭐를?"

"내가 보낸 거."

"아."

 

원빈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미안. 못 봤어."

"거짓말."

"진짜야."

 

둘이 웃었다.

나는 괜히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어?"

원빈이 나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원빈 표정이 순간 달라졌다.

"누나."

"어."

"안녕하세요."

"...안녕."

 

이게 끝이었다.

원빈은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친구들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멀어지는 원빈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나한테는 아직도 저렇게 어색하면서.

다른 애들이랑은 저렇게 잘 지내네.

괜히 기분이 묘했다.

 

 

*

 

 

점심시간에도 원빈은 친구들과 같이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했던 애가 이제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원빈아, 이거 먹어봐."

 

여자 동기가 자기 반찬을 원빈 쪽으로 밀었다.

"싫어."

"맛있는데."

"됐어."

"한 입만."

 

원빈은 결국 젓가락으로 하나 집어 먹었다.

 

"맛있지?"

"...응."

"거봐."

 

나는 그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괜히 숟가락으로 밥만 휘저었다.

 

'뭐야.'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나왔다.

'나 좋아한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순간.

나는 스스로도 조금 당황했다.

 

왜 내가 그걸 신경 쓰지?

원빈이 다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뭐가 문제라고.

나는 원빈의 여자친구도 아니고.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물론 고백은 받았지만.

나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으니까.

 

"...참."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

 

 

며칠 뒤.

친구들과 학교 근처 술집에 갔다.

 

"여기 사람 많네."

"그러게."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기다리는데, 친구가 갑자기 내 옆을 툭 쳤다.

 

"야."

"왜?"

"저기."

 

친구가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순간 멈췄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원빈이었다.

그 옆에는 같은 과 동기들이 앉아 있었다.

 

"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그 순간 원빈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원빈도 잠깐 굳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조금 일어나며 말했다.

 

"...누나."

"어, 원빈아."

"여기 왔어요?"

"응. 친구들이랑."

"...아."

"너도 친구들이랑 왔네."

"네."

 

짧은 대화였다.

원빈은 괜히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재밌게 놀다 가세요."

"응. 너도."

 

원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친구들 옆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옆 테이블로 갔다.

원빈은 아까 나랑 이야기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동기들이랑 장난치고.

웃고.

술게임도 하고.

그리고 아까 복도에서 봤던 여자애도 옆에 앉아 있었다.

 

"원빈아."

"응?"

"나랑 짠하자."

 

여자애가 자기 잔을 원빈 쪽으로 내밀었다.

 

"왜?"

"한 번만."

"됐어."

"왜 이렇게 까다로워."

 

여자애가 웃으면서 원빈 팔을 잡아당겼다.

결국 원빈이 잔을 들었다.

"한 번만이다."

"응."

 

둘이 웃었다.

나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보게 됐다.

이번에는 여자애가 원빈에게 뭔가를 보여주면서 어깨를 붙이고 있었다.

원빈도 웃고 있었다.

 

"..."

 

갑자기 술맛이 썼다.

 

"야."

 

친구가 나를 불렀다.

 

"응?"

"너 왜 자꾸 저쪽 봐?"

"내가?"

"응."

"아니거든."

"박원빈 보잖아."

"아니라니까."

 

나는 괜히 술잔을 들었다.

 

"그냥 같은 과니까 신경 쓰이는 거지."

"그래?"

"응."

 

친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모른 척 술만 마셨다.

그런데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저 여자애가 원빈한테 웃어주는 것도.

원빈이 그걸 받아주는 것도.

그리고.

내가 봤던 원빈의 웃음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도.

'나한테는 그렇게 어색하면서.'

괜히 서운했다.

'나 좋아한다면서.'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원빈 쪽을 바라봤다.

그 순간.

원빈과 눈이 마주쳤다.

원빈은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 있던 여자애가 무언가를 말하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괜히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상했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지.

왜 자꾸 저쪽을 보게 되는지.

아직은 그 이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오늘 처음으로.

나는 박원빈이 다른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게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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