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들은 다음 날부터, 동민은 퇴근 시간마다 사무소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엔 우연인 척했다. 이틀째부터는 그냥 대놓고 기다렸다.
"…왜 여기 계세요."
"지나가다가요."
"어제도 그러셨잖아요."
"…오늘도 지나가는 길이라서요."
거짓말이 점점 더 성의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만 오시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그때뿐이었다. 부담스럽다는 말까지 했는데 다음 날 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알아요. 그냥 제가 안 괜찮아서요."
그 말에 뭐라고 더 붙일 말이 없었다.
골목에서의 일 이후로 혼자 걷는 게 무서워진 것도 사실이라, 결국 아무 말 없이 몇 걸음 앞서 걷는 걸로 그쳤다.
*
며칠 뒤, 동민이 선일 캐피탈 얘기를 다시 꺼냈다.
"…선일 캐피탈, 그만 캐신다고 하셨잖아요."
"…안 그만뒀어요."
솔직하게 답했다. 거짓말할 기운도 없었다.
동민이 한숨을 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성호 실장이 선일 캐피탈로 돈세탁하고 있는 거, 저희도 알아요.
근데 그 위가 누군지 아직 못 밝혔어요. 이 건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요."
이렇게까지 말해 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왜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 주세요."
"…혼자 무작정 캐다가 진짜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뭘 조심해야 하는지 알고 계시는 게 나으니까요."
말은 이성적인데, 저런 말을 굳이 자기 회사 일까지 걸어 가면서 해 줄 이유는 없었다.
괜히 의미를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원래 남 챙기는 성격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다.
"…혹시 저 때문에, 회사에서 곤란해지시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쪽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단호한 말투였다. 그 단호함을 어디에 쓰고 있는 건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확실히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동민이 또 사무소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먼저 다가갔다.
"…이제 그만 오세요. 부담스럽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잖아요."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다. 동민은 잠깐 말없이 나를 보다가, 알겠다고만 짧게 답했다.
그날은 정말 퇴근길에 아무도 없었다. 골목도, 큰길도 조용했다. 이걸로 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사무소 우편함에 낯선 봉투가 하나 꽂혀 있었다.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안 적힌 봉투였다.
안에는 아무 설명 없이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며칠 전 그 골목 일이 있던 밤, 편의점을 나와 큰길까지 함께 걷던 뒷모습이었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이걸 보여줘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동민과 눈이 마주쳤다.
내 손에 들린 봉투를 보더니 그가 먼저 다가왔다.
사진을 받아 든 동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희 둘 다 찍힌 거네요."
"…그러니까요. 누가, 왜 이런 걸……."
"성호 쪽일 거예요. 저랑 얽힌 거,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고요."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만 오라고 몇 번을 말했던 사람인데, 정작 이런 사진이 찍힐 빌미를 만든 건 그 자신이었다.
*
그 사진 봉투 일이 있고 며칠 뒤, 동민이 선일 캐피탈 쪽 서류 하나를 말없이 내 자리에 놓고 갔다.
이제 와서 모르는 척 시켜 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성호 쪽이 이미 둘을 엮어서 보고 있는 이상,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른 채 움직이게 두는 쪽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계산인 듯했다.
페이지마다 형광펜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의심 가는 계좌들, 그 옆에 작게 적힌 메모.
경고인지 뭔지도 애매했다.
이 정도 정보를 그냥 넘겨줄 거였으면 처음부터 그만두라고 할 이유도 없었을 텐데.
돌려주려고 몇 번 들었다 놨다 했지만, 결국 서랍에 넣었다. 이제 와서 이걸 안 받은 셈 칠 수도 없었다.
"그의 일에 끼지 않는다"던 다짐은 그런 식으로 무너진 것도 아니고 지켜진 것도 아닌 채로, 그냥 애매하게 걸쳐 있었다.
집에 돌아와 손목의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유리에 간 금 위로 형광펜 자국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