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둥지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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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안을 가득 채웠던 마력의 폭풍이 가라앉고, 짙은 정적만이 바닥에 가라앉았다.

수빈은 천천히 눈꺼풀을 올려 세상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달랐다. 먼지 하나가 허공을 떠도는 궤적, 문밖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집사의 미세한 심장 소리, 그리고 손끝을 타고 흐르는 낯설고도 압도적인 힘의 감각까지. 온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자신을 부둥켜안은 채 허탈하게 숨을 내쉬고 있는 연준이 있었다.

“...연준 씨?”

수빈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어딘가 낮고 묘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연준은 떨리는 손으로 수빈의 볼을 감싸 쥐었다. 수빈의 붉어진 눈동자가 짙은 순혈의 빛으로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느껴져? 수빈아.”

연준이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얼굴로 나지막이 물었다.

수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문에서 늘 ‘둔하고 우둔하다’며 구박받던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하나만 살짝 움직여도 공기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한 마력이 혈관 속을 타고 넘쳐흘렀다. 인간으로서의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뱀파이어가 된 겁니까?”

“...응. 내 피를 마셨으니까. 너를 살릴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어.”

연준은 수빈이 자신을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끝을 떨었다.

평생을 헌터로 자라온 수빈에게, 가문이 그토록 증오하던 포식자의 피를 주입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수빈은 가만히 연준의 떨리는 손을 덮어 쥐었다.

연준의 피가 제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을 그 무엇보다 깊고 끊어낼 수 없는 영원의 고리로 묶어주었다는 것을 수빈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괜찮아요.”

수빈이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나를 한 번도 받아주지 않던 가문의 인간으로 죽는 것보다... 연준 씨 곁에 영원히 남는 게 훨씬 좋아요.”

연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수빈은 연준의 목에 팔을 감으며 그를 깊게 안아주었다. 차가운 체온과 차가운 체온이 맞닿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며칠 뒤, 저택은 완전히 정돈되었다.

뱀파이어로 각성한 수빈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헌터 시절부터 익혀온 전투 감각에 순혈의 피가 더해지자, 수빈의 신체 능력과 마력 제어는 가문의 그 어떤 베테랑 헌터보다도 뛰어나게 발전했다. ‘실패작’이라는 낙인은 오직 헌터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밤, 저택 테라스에 선 수빈의 곁으로 연준이 다가와 묵직한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네.”

“가문에서 곧 사람들을 끌고 오겠죠.”

수빈이 멀리 어둠에 잠긴 숲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촌 형을 비롯한 헌터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가문의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어른들이 순혈 뱀파이어와 결탁한(심지어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수빈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오라고 해.”

연준이 수빈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수빈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이 저택을 통째로 날려버리든, 가문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든... 이제 넌 내 완벽한 반쪽이니까.

그 누구도 널 건드릴 수 없어.”

“연준 씨가 앞장설 필요는 없어요.”

수빈이 돌아서며 연준의 붉은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수빈의 눈동자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서늘하고 우아한 지배자의 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나를 버린 가문과, 나를 ‘실패작’이라 부르던 자들에게 내가 직접 내리는 마지막 인사가 될 테니까요.”

연준은 달라진 수빈의 눈빛에 낮게 탄성을 질렀다.

가엾고 귀엽기만 하던 길 잃은 사슴이, 어느새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완벽한 밤의 포식자로 거듭나 있었다.

연준이 수빈의 뺨을 매만지며 나른하게 웃었다.

“좋아. 네가 판을 깔면, 난 네 뒤를 지키지.”

그때, 저택 결계 외곽에서 헌터 가문의 수장들과 정예 집단이 밀려오는 거대한 은빛 마력의 진동이 느껴졌다. 가문과의 마지막 전면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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