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10화. 화해

sophie97
2026.08.09Visualizzazioni 20
"파리에 왜 가요?"
훈지 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 그게...
줄리앙이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됐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하나 봐요.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고,
말씀 드리면 또 걱정도 하시고..."
"그래서 지금 줄리앙 보호자 역할을 해 주러
파리에 가겠다는 거에요?"
“사실은 아까 오전에 전화 왔던 게…
줄리앙이었어요.
바로 말 못 해서 미안해요.”
“정아 씨, 지금 제 정신이에요?”
“전 남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큰 일도 아니고, 그냥 수술 당일에
보호자 역할로 병원에 같이 있기만
하면 되는 거구요.”
“보호자는 그런 간단한 의미가 아니에요.
수술하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본인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보호자에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나는 단순히 수술을 앞둔 줄리앙을
위로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훈지 씨 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전 남친이었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냥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랑 만나면서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친구하고도 그런 스킨쉽을 해요?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난 절대… 정아 씨 가는 거 허락 안 해요.”
흥분한 훈지 씨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들어가기 전 내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난 분명히 얘기했어요.”
말을 끝낸 뒤,
문을 세게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몇 시간 째 그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나는 미리 사다 놓은 고기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었다.
야채와 토마토를 씻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훈지 씨~ 나와서 나 좀 도와 줄래요?”
방 안에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일부러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햄버거 세 개를 만들어 식탁 위에 놓았다.
훈지 씨도 없는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
나도 햄버거를 그대로 둔 채 방으로 들어갔다.
‘괜히 그 이야기를 꺼냈어…
차라리 몰래 다녀 올 걸 그랬나.
아니야… 훈지 씨 말이 맞아.
아무리 심각한 수술이 아니더라도 수술인데…
가족도 아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입장도 아니니까…’
훈지 씨의 마음만 상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씻고 나와 훈지 씨 방 앞에서 들어갈까 망설였다.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지만,
문을 열지는 못 했다.
“훈지 씨… 잘 자요.”
여전히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방으로 돌아 와 침대에 누웠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선잠이 든 채
몸을 돌려 눕다가 뭔가에 닿았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니
훈지 씨가 내게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그는 나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 위시 리스트에
싸워도 같은 침대에서 자기로 했잖아요.”
“… 훈지 씨, 미안해요.
내가 잘못 했어요.
파리에 가지 않을게요.
훈지 씨 말이 맞아요.
내가 줄리앙의 보호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말을 마치고 누우면서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 몸을 돌려 누웠고,
내 머리 아래로 팔을 넣어 팔베개를 만들어 주었다.
“나도 아까 화 내서 미안해요.
나 때문에 저녁도 못 먹었죠?”
“훈지 씨가 나 때문에 저녁을 못 먹은 거죠.
좋아할 것 같아서 햄버거 만들었는데…”
“우리 나가서 지금 같이 먹을까요?”
“그럴까요?”
우리는 동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가려는
나를 그가 막았다.
“왜요?”
“오늘 한 번도 사랑한다는 얘기 안 한 거 같은데?”
“배고파서 그런데, 먹고 나서 하면 안 돼요?
지금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진정성이 좀 떨어질 것 같아요.
엄청 배고파요…”
훈지 씨는 씨익 웃더니 가로막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럼 이따 먹고 나서 꼭 해줘야 돼요.
사랑하는 정아 씨.”
“네. 사랑하는 훈지 씨.”
우리는 그날 밤 야식으로 햄버거를 하나씩 먹고,
영화까지 보며 토요일 밤의 여유를 즐겼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 가면서
동거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줄리앙의 마지막 전화를 받은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도중에
줄리앙의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정아씨죠? 나… 줄리앙 엄마에요.” <111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