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10화. 화해



"파리에 왜 가요?"




훈지 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 그게...

줄리앙이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됐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하나 봐요.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고,

말씀드리면 또 걱정도 하시고..."

 




"그래서 지금 줄리앙 보호자 역할을 해 주러

파리에 가겠다는 거예요?"

 




“사실은 아까 오전에 전화 왔던 게…

줄리앙이었어요.

바로 말 못 해서 미안해요.”

 

 



“정아 씨, 지금 제 정신이에요?”

 

 



“전 남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큰 일도 아니고, 그냥 수술 당일에

보호자 역할로 병원에 같이 있기만

하면 되는 거구요.”

 

 


“보호자는 그런 간단한 의미가 아니에요.

수술하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본인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보호자에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나는 단순히 수술을 앞둔 줄리앙을

위로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훈지 씨 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전 남친이었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냥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랑 만나면서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친구하고도 그런 스킨쉽을 해요?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난 절대… 정아 씨 가는 거 허락 안 해요.”

 




흥분한 훈지 씨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들어가기 전 내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난 분명히 얘기했어요.”

 




말을 끝낸 뒤,

문을 세게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몇 시간째 그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나는 미리 사다 놓은 고기로 햄버거 패티를 만들었다.

야채와 토마토를 씻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훈지 씨~ 나와서 나 좀 도와 줄래요?”

 



방 안에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일부러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햄버거 세 개를 만들어 식탁 위에 놓았다.

 


훈지 씨도 없는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

나도 햄버거를 그대로 둔 채 방으로 들어갔다.

 



‘괜히 그 이야기를 꺼냈어…

차라리 몰래 다녀올 걸 그랬나.

아니야… 훈지 씨 말이 맞아.

아무리 심각한 수술이 아니더라도 수술인데…

가족도 아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입장도 아니니까…’

 




훈지 씨의 마음만 상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씻고 나와 훈지 씨 방 앞에서 들어갈까 망설였다.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지만,

문을 열지는 못 했다.

 



“훈지 씨… 잘 자요.”

 



여전히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선잠이 든 채

몸을 돌려 눕다가 뭔가에 닿았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니

훈지 씨가 내게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그는 나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 위시 리스트에

싸워도 같은 침대에서 자기로 했잖아요.”

 



“… 훈지 씨, 미안해요.

내가 잘못 했어요.

파리에 가지 않을게요.

훈지 씨 말이 맞아요.

내가 줄리앙의 보호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말을 마치고 누우면서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 몸을 돌려 누웠고,

내 머리 아래로 팔을 넣어 팔베개를 만들어 주었다.

 


“나도 아까 화 내서 미안해요.

나 때문에 저녁도 못 먹었죠?”

 



“훈지 씨가 나 때문에 저녁을 못 먹은 거죠.

좋아할 것 같아서 햄버거 만들었는데…”

 



“우리 나가서 지금 같이 먹을까요?”

 



“그럴까요?”

 



우리는 동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가려는

나를 그가 막았다.

 



“왜요?”

 



“오늘 한 번도 사랑한다는 얘기 안 한 거 같은데?”

 



“배고파서 그런데, 먹고 나서 하면 안 돼요?

지금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진정성이 좀 떨어질 것 같아요.

엄청 배고파요…”

 




훈지 씨는 씨익 웃더니 가로막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럼 이따 먹고 나서 꼭 해줘야 돼요.

사랑하는 정아 씨.”

 



“네. 사랑하는 훈지 씨.”

 



우리는 그날 밤 야식으로 햄버거를 하나씩 먹고,

영화까지 보며 토요일 밤의 여유를 즐겼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 가면서

동거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줄리앙의 마지막 전화를 받은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도중에

줄리앙의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정아씨죠? 나… 줄리앙 엄마에요.” <111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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