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13화. 늦은 후회



이렇게 화창한 가을 날,

줄리앙의 묘지 앞에 서 있는 것이

현실로 와 닿지 않았다.





몇 달 전에 미겔의 카페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했다.

수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 앞에 서 있다.





줄리앙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 점점 멀어졌다.

마치 온 우주에 나와 줄리앙의 묘비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슬프지 않았다.

너무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셨고,

눈을 감고 뜰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내 몸이 휘청거리는 것인지

땅이 흔들리는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눈이 감겼다.

내 몸이...

툭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할 때,

훈지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아 씨, 정신 들어요?

 내 말 들려요?"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훈지 씨와 줄리앙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줄리앙의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그를 쳐다만 봤다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훈지 씨가 나를 천천히 일으켜 앉히면서

말했다.





"아까 잠깐 정신을 잃었었어요.

 눕힐 만한 장소가 필요해서 사무실로 들어왔어요.

 물 좀 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훈지 씨가 물을 가질러 간 사이,

줄리앙의 어머니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훈지 씨가 물을 가지고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알겠어요. 천천히 일어나요.

 내 팔을 잡아요. 여기..."





나는 훈지 씨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훈지 씨가 이끄는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줄리앙의 부모님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나는 훈지 씨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고 싶단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줄리앙의 아버지가 훈지 씨 뒤를 따라 오시면서

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의 차를 타고 공항까지 오면서

파리 기차역에서 줄리앙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루앙에서 하루를 함께 여행했던 때가

영화의 장면들처럼

머릿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묵던 호텔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그가 입을 맞췄던 일이 생각났다.




그가 지었던 미소가...

활짝 웃던 얼굴이...

기억났다.





파리에서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오르자

그제서야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그 때 왔었더라면...그랬더라면...'




참으려 해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었는데.

 호텔로 가 볼껄...

 병원에서 함께 있어줄껄...'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을까요..."  <114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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