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91화. 정아의 방황

sophie97
2026.10.11Visualizzazioni 36
"왜 대답이 없어요?
함께 지내지 않는 거 맞냐고요"
훈지 씨 누님이 재차 물었다.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어쩐지..."
누님이 낮게 중얼거렸다.
"며칠을 가도 집에 들어 온 흔적이 없어
이상하다 싶었어.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는 거에요?"
"죄송합니다."
"정아 씨는 훈지보다 나이도 많잖아요.
그럼 철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해야죠.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잣대가 얼마나 엄격한지 몰라요?"
나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정아 씨가 우리 훈지 잡고 있는 거...
그거 욕심이에요.
정아 씨 욕심이라구요."
나는 문득 태형 씨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욕심?
그건... 내가 태형 씨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태형 씨의 컴퓨터에서 사진을 발견했던 날.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나를 갖고 싶었던 욕심이었다고
태형 씨에게 쏘아붙였던 기억이 났다.
내가 훈지 씨 곁에 있고 싶은 것도
그저 나의 욕심인 걸까...?
"괜히 사진이라도 찍혀서
기사라도 나면 어쩔 거에요?
광고며 드라마에 피해 주는 거
정아 씨가 책임질 수 있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 줄 수 없었다.
"훈지 씨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당장이에요!!
알겠어요?"
"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지성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지성 씨.
내가 일주일 정도 카페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요."
"일주일이나요? 왜요?"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많이 지친 거 같아요."
"그런데 손님들한테 미리 공지도 없이
일주일이나 쉰다는 게..."
지성 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사장님.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냥 오픈부터 마감까지 해도 될까요?"
"지성 씨 혼자서요?
힘들어서 안 돼요."
"사장님 번역 일 하실 때는
저 혼자 주로 했었잖아요.
괜찮을 거에요."
"지성 씨.
그렇게까지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
내 몫까지 해 주는 거니까
두 사람 알바비로 계산해 줄게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으세요.
그런데, 사장님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그럼요. 푹 쉬면서 기운을 보충하고
돌아올게요.
미안해요. 나 혼자 쉬어서..."
"아무 일 없으시면 됐어요.
걱정하시지 마시고 쉬세요."
"고마워요.
참, 지성 씨.
당분간 휴대폰을 꺼놓으려고 해요.
밤에는 메시지를 확인할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메시지 남겨 놓으세요."
나는 집으로 돌아가 간단히 짐을 챙긴 뒤
서울역으로 향했다.
가장 빨리 출발하는 기차를 알아봤다.
부산행 KTX 티켓을 예매했다.
기차에 올라 두 시간 남짓 창밖을 바라봤다.
가는 도중 호텔도 예약했다.
그리고,
훈지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훈지 씨.
나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오려고 해요.
휴대폰이 꺼져 있어도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많이 사랑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누님이 많이 걱정하시니까
훈지 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
부산역에 도착한 뒤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광안리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이었다.
가방을 내려 놓고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잠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있고 싶었다.
눈을 감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창밖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배가 고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호텔 1층에서 커피 1잔과 스콘을 사 왔다.
아침 겸 점심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는
또 다시 잠들었다.
이틀째 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문득 휴대폰 생각이 났다.
한참을 망설이다 전원을 켰다.
훈지 씨에게서 전화와 메시지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카페며 다른 일들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여
훈지 씨 메시지는 확인하지 않은 채
다시 휴대폰 전원을 껐다.
그다음 날 눈을 떴을 때는
배가 고팠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근처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둘러봤다.
돼지국밥집이 눈에 띄어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 주문했다.
'국밥을 보니까 태형 씨 생각이 나네...
잘 지내고 있나...?'
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고 태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아야."
"태형 씨. 잘 지내?"
"어쩐 일이야? 전화까지 다 하고.
무슨 일 있어?"
"아니... 국밥을 보니까 태형 씨 생각나서..."
"뭐야...하하.
난 또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놀랐잖아."
"뭐해?"
"나 지금 점심 먹고 있어.
네가 웬일로 국밥을 먹어?"
"근처에 식당이 있길래...
공부는 힘들지 않고?"
"나이 들어서 공부하려니까
아주 죽겠다.
이래서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나봐.
너는 요새 어때?"
"잘 지내.
얼른 식기 전에 점심 먹어. 다음에 또 할께.
건강 잘 챙기고..."
"그래. 정아야.
전화 줘서 고마워. 너도 잘 지내."
나는 그와의 통화를 끝내고
훈지 씨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누나랑 만났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듣고 이러는 거에요?
누나 말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석 달 안에 허락받기로 했잖아요.
그냥 나만 믿고 조금만 참아 주면 안 될까요?
걱정되니까 전화 한 통만 해 줘요. 제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아 씨!!"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어디에요?"
"부산이요."
"괜찮아요?"
"훈지 씨. 나 괜찮아요.
그냥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왔어요. 며칠 있다가 올라갈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보고 싶어요..."
"나도 보고 싶어요. 끊을게요."
나는 그의 인사도 듣지 않은 채
통화를 끝내고 전원도 꺼 버렸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가를 걸었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앉아
한동안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봤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호텔로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을 피하려고
자고 또 잠들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도어락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훈지 씨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로
두 팔을 벌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안기지 못 한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훈지 씨가 먼저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보고 싶었어요.."
"훈지 씨. 나 먼저 씻고 나올게요."
"어. 알았어요.
배는 안 고파요?"
"훈지 씨가 해 주는 토스트 먹고 싶어요."
"정말?? 알겠어요.
정아 씨 씻는 동안 내가 얼른 해 볼게요."
씻고 거실로 나오니
정말로 토스트가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늘은 엄청 빨리 했네요.
태우지도 않았고여?"
"오늘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했어요."
그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먹었다
그는 말없이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카페 그만 하려구요. 미안해요." <92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