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ché è cambiato così tanto?
Episodio 4



강다니엘
꺼져라, 아침부터 너 되게 거슬렸는데 패버릴수도 있으니까.


김여주
.....진짜 왜 그러는거야?


강다니엘
뭐가.


김여주
농구 경기 한번 졌다고 사람 패는게 정상이야?


강다니엘
5만원 걸었다고~ㅋㅋㅋ


김여주
니가 건거지 재환이가 건게 아니잖아!


강다니엘
....X발 운 좋은줄 알아.

강다니엘은 김재환의 멱살을 풀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


강다니엘
........

김여주,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의로운건 똑같네.

되게 반가웠는데,

다가가지 못했다.

너무 미안해서,

지금 다가가면 상처만 줄것 같아서.

미안해, 여주야.

보고 싶었어.

-

2013년, 1월 31일


강다니엘
엄마, 우리 이제 곧 한국 가는 거 맞지?

" 그럼....ㅎ "


강다니엘
ㅎㅎ 여주 보고싶다.. 나 이렇게 키 많이 큰거 보면 놀라겠지? 히히...

" 우리 아들, 앞으로 키 큰 모습 다 봐야하는데... "


강다니엘
응? 그게 무슨말이야?

" 아들, 엄마 없다고 울고 그러면 안돼! 이제 너도 열 네살이니까! "


강다니엘
그게 무슨말이야, 엄마.

" 아니야 ㅎ "

아니야, 라고 했으면서.


강다니엘
....ㅇ, 엄마....

" 가족분들 정말 모르셨어요? 이미 유방암이 진행된지 오래였는데. "


강다니엘
.....정말 몰랐어요...

" 유방암이 너무 많이 퍼져서 손 쓸수가 없었어요. "


강다니엘
.....아니... 엄마...


강다니엘
엄마.... 엄마.... 우리... 한국 가기로 했잖아, 응? 엄마... 엄마..... 흐윽....

엄마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은지 꽤 되었고, 판정을 받고 이모네 집인 미국으로 온 것이었다.

처음부터 한국에 갈 생각은 없던 것이었다.

난 그날,

모든 걸 잃었다.

아빠 없이 자랐다고 놀림 받은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우리 엄마는,

내 삶의 휴식처이자 멘토였다.

그런 우리 엄마가,

유방암으로 죽었다.

더 이상 살아갈 기력이 없었다.

2013년, 2월 3일.

우리 엄마가 죽었다.

이모
다니엘.

하늘은 너무나도 매정했다.

장례를 다 치르고 보이는 것은 현실이었다.

열네살에 고아가 되버린 나는 그 공허함이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혼자 슬퍼할 틈도 없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태어나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이모가 내게 찾아왔다.

이모
짐은 다 챙겨 놓았어, 가자.

그냥, 가끔 이모가 사업하는 좀 나가는 부자라는 것만 알았다.


강다니엘
....싫어요, 저 혼자 살게요.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처음보는 사람이 이모라며 같이 살자고 하고,

새 식구하고 산다는건

열 네살이라는 나이엔 너무 벅찬 과제였다.

이모
애도 아니고 뭘 찡찡대. 너 우리집에서 안살면 누가 보살펴 준대?

그렇게 난 이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다.


배진영
나보다 형? ㅋㅋㅋ 아~주 반갑네요~?


강다니엘
.....응.

그 집은 부잣집이었다.

열세살이었지만 첫인상부터 싸가지가 없는 아들에,

이모부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

반기기는 커녕 내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의 이모부,

이모
니네 엄마처럼 살 생각하지마, 우리 니네처럼 없는집 아니니까.

계속 나와 자신은 다른 집안이라는 걸 강조하는 이모.

나에겐 이 모든것이 심한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몇년을 스트레스와 함께 살면서,

난 난폭해져갔다.

고등학교때 이모집에서 나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니가 있었다.


김여주
안녕? 난 여주여, 김여주!

처음엔 너무 반가웠는데, 아는 척 할 수 없었다.

6년이나 지났고,

난 이미 너무나도 사고를 많이 친 일진이었고,

넌 딱보니 발랄한 고딩이였다.

6년동안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이 바뀌었다.

다가갈순 없었지만 돕고 싶었다.

미안해, 여주야.

나같은 문제아하고 놀면 너만 더 나쁜애 돼.

이런 상처 받았다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는 건 변명이잖아.

난 뒤에서 지켜만 볼게.

그냥 넌 너대로 살아.

우린 너무 많이 바뀌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