クミ

私を見つけてください。 (天気が良ければ訪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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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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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똑똑, 소심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수아야 자...? 하고 수아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익숙한 듯 수아의 기숙사 문을 열고 조심히 들어온다. 아, 아직 자고 있구나. 하긴, 원래 아침잠이 많았지. 연준은 곤히 자고 있는 수아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나 다녀올게. 기다려.”


그러자 잠꼬대인지 아닌지 모를 조그마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웅… 연준은 귀엽다는 듯 수아의 바라보며 잔뜩 헝클어진 수아의 머리칼을 귀 뒤로 살며시 넘겨준다. 저녁에 봐. 연준은 손목시계를 흘끔 확인하더니 이내 곧 올 첫차를 타러 고등학교 앞 정거장으로 향했다. 후드 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유선 이어폰을 두 짝 다 귀에 끼는 것이 어색해 연준은 한참 오른쪽 귓바퀴를 매만졌다. 수아의 들려주었던 익숙한 사랑 노래가 몇 곡 흘러나왔을까. 끼익, 버스가 도착한 듯 들리는 소리와 함께 연준은 버스에 올라탔다. 늘 하던 대로 복도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귓가에 맴도는 사랑 노래가, 수아를 연상케 하는 듯했다. 아, 한수아 보고 싶다. 연준이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버스가 다리를 건너 수영장에 도착한지 오래였다.


“다들 준비운동하고 물에 들어갈 준비해라.”


지옥같은 훈련의 시작이었다.


***


아, 그는 숨을 내뱉었다. 물장구를 치는 다리가 점점 뻐근해져만 간다. 푸르게 보이는 물속, 수영장 내부의 모습을 작게 보여주는 공기방울들이 제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연준은 물 밖으로 치솟아 올랐다. 거친 숨을 순식간에 가다듬고 연준은 다시 한번 물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부력 탓에 장기가 위로 들리는 울렁이는 느낌마저도 이제는 좋다. 수아의 말대로, 수영만큼 이 세상에서 재밌으면서도 죽을만치 힘든 것은 없었다. 연준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한 바퀴 빙글 돈 뒤, 수영장 벽을 박차고 다시 헤엄치기 시작했다.


“오늘 연준이 잘 하네? 좀만 더 하면 기록 오르겠다.”


네에. 연준은 코치님께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연준이 이토록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은 오로지 물속에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서였다. 시간이 빨리 가면 수아를 더 빨리 볼 수 있으니까. 연준은 붉은 입술을 빠끔히 내밀어 숨을 빠르고도 간결하게 들이쉬었다. 그러고선 다시 물속으로 향한다. 수영장 바닥의 네모난 타일에 연준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담기는 듯했다. 수아의 말대로 연준은 수영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


“오늘 치 훈련 끝.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영부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영장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연준은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옷을 챙겨입었다. 누구보다 빨리 버스에 타 수아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쿠르릉. 연준이 미처 다 마르지도 않은 머리칼을 대충 털어대며 버스 의자에 앉았을 때 난 소리다. 그러고선 몇 초 되지도 않은 새에 굵은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진다. 어, 어. 안 되는데. 금방 멎을 거라 생각했던 모든 이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비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운동장에 깔린 흙의 색이 점점 진하게 변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연준은,


“야야, 너 어디가!”


친구들의 만류에도 기어코 버스 내부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연준이 쓴 후드집업의 모자 부분이 축축이 젖어들었다. 낡은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간 연준은 운 좋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백 원짜리 동전을 발견했다. 시리도록 차갑다. 동전을 주워들어 세로로 난 얇은 칸에 동전을 욱여넣는다. 빗물로 젖은 연준의 손가락이 다이얼을 빠르게 누른다. 바닥에 닿을랑 말랑 떨어져 있는 수화기를 잽싸게 낚아채 귀에 가져다 댄 연준은 한참을 이어지던 통화 연결음이 끊기고 수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안도한다.


“수아야 지금, 지금 비가 너무 와서…”


“알아. 금방 그치겠지, 뭐. 너무 걱정은 말자, 우리. 다치지만 말고 와.”


“응… 알겠어.”


“날씨가 좋아지면 내가 그리로 찾아갈까? 그리고 시내에서…”


뚝. 아, 끊겼다. 연준은 허망하게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공중전화 부스 위로 거센 빗줄기가 내리꽂혔다. 연준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애꿎은 입술을 짓씹었다. 입술에 맺힌 핏방울이 이리저리 빗물에 이리저리 번졌다.


***


“코치님. 오늘은요? 오늘은 집에 갈 수 있어요?”


“흙이 너무 질은데다가…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이니까. 아마 강물이 불어나서 다리가 잠겼을 거야.”


아. 연준은 괜스레 눈물이 핑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 째 똑같은 말 뿐, 연준은 수영장을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다. 공중전화도 맛이 갔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수단인 다리마저도 물에 잠겼다. 무언가를 타고도, 걸어서도 시연을 만나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연준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까득. 연준은 저도 모르게 반창고를 붙여뒀던 엄지 손톱을 깨물었다. 아, 피 나서 밴드 붙여뒀는데. 반창고의 노란 부분이 피로 다시금 붉게 물들었다. 수아를 만난 후로는 고쳐진 습관이었는데, 이 고질병과 다름 없는 습관이 고개를 들은 듯하다. 연준은 무의식적으로 피가 나고 있는 엄지 손가락을 다시금 입으로 가져갔다. 까득. 연준의 입술이 붉은 피로 번진다. 일주일 전과 같이 연준의 입술은 붉었다.


***


수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연준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다치지는 않았을까. 그 애라면 불어난 강물은 건너서라도 이곳으로 오겠다고 날뛸 것 같은데. 설마. 한번 든 불안하고도 끔찍한 생각은, 도무지 사라지질 않아서. 수아로 하여금 다친 다리를 끌고 강물이 잔뜩 불어난 강가로 향하게 만들었다. 시연이 본 강가의 수위는 높았고, 흘러가는 강물은 거셌다. 수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넘겼다. 품에 소중히 안아들은 연준의 후드집업이 떨렸다. 아니, 무생물이 떨 수는 없으니 수아가 떠는 거겠지. 강물이 흘러가는 모양새와 소리는 퍽 무서웠다. 고작 물이 흘러가는 것일 뿐인데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으며, 소리는 가히 고막이 얼얼할 정도라 말할 만한. 아, 불안하다. 불안해 미치겠다. 강가를 따라 몇 분 정도를 걸었을까. 연준의 흔적이라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었어.”


그래. 최연준도 사람인데, 걔도 자기 몸 사리겠지. 수아는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이제는 아무 걱정 않고 따뜻한 집에서 편히 쉬리라. 툭. 품에 안고 있던 후드집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손에는 목발을 짚고 있으니 후드집업이 떨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랄 게 없었다. 수아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느낌은 항상 틀린 적이 없었다. 수아가 후드집업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 순간, 수아의 오른편에 있던 작은 산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아, 못 피한다. 수아는 본능적으로 저 흙더미들을 피하지 못할 것을 알아차렸다. 수아는 숨을 빠르게 들이마시고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온갖 자갈들이 수아의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연은 제 몸뚱어리가 강물 쪽으로 서서히 밀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끝에 강물이 닿았다. 죽도록 시렸다. 상처로 짓무른 시연의 눈가가 빨개졌다. 아, 마지막으로 연준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대로 수아는 차디찬 강물 속에 빠지고야 말았다. 마지막 달뜬 숨을 흙탕물에 뱉어낸 수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


비가 그쳤다. 버스에서 잠시 쪽잠을 자던 연준은 계속해서 들려오던 빗소리가 멈추자 눈을 떴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간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연준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연준의 엄지손톱은 핏빛으로 여전히 물들어 있었다.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계속해서 괴롭혀댔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수아가 꿈에 나왔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얘들아, 우리는 내일 오후에 돌아갈 거다.”


왜냐는 물음을 수영부 안의 그 누구도 하지 않았는데 코치님은 부연설명을 덧붙이셨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사태가 났다네. 다들 알지? 강가 근처에 있던 산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산. 아. 연준이 탄식을 내뱉었다. 버스에서 뛰쳐나가려는 걸 연준의 앞자리에 앉았던 부원이 붙잡았다.


“몸 상태 그렇게 안 좋은데, 퍽이나 가겠다. 쉬어, 좀. 아무 일 없을 거니까.”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말이 오늘따라 왜 이리 기괴하게 들리는지. 연준은 부원의 손을 뿌리치고 버스를 벗어났다. 운동화 밑창이 질퍽한 흙으로 더럽혀졌지만 연준은 그런 것 따위에 멈추지 않았다. 흙이 잔뜩 깔린 다리를 연준은 빠르게 건넜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익숙한 파란 무언가가 연준의 눈에 띄었다. 연준은 발걸음을 돌려 거친 흙을 맨손으로 파헤쳤다. 자그만 자갈들이 손톱 밑을 콕콕 찔러왔지만 연준에게 그런 것은 상관 없었다.


“아…”


연준은 탄식을 내뱉었다. 제 것이다. 제 후드집업. 수아에게 주었던. 그러면 수아는? 연준은 수아가 그랬던 것처럼 후드집업을 품에 안고 강의 하류로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 마주한 것은,


“수, 수아야……”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지고, 얼굴 곳곳에 상처가 나있으며, 온몸이 차갑다 못해 시린. 수아였다. 연준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원망을 자신에게로 내뱉으며. 아, 아아, 물이, 평생을 사랑해왔던 물이 이제는, 역겹다.


***


연준은 수영을 그만뒀다. 물이 역겨웠기에. 제 몸에도 70%나 물이 채워져 있다는 것이 끔찍할 따름이었다. 눈물을 흘릴 때면 제 눈에서 흘러나오는 이 물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전과는 달리  공부에 목을 맸으며, 식물인간으로서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수아에게 가는 횟수도 줄여나갔다. 수아를 보기만 하면 눈물이 났기에. 그 대신 웃었다. 연준은 시도 때도 없이 미소를 지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친구와 싸워도, 무얼 해도. 연준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연준은 망가졌다. 수아라는 엔진이 고장났기에, 사라졌기에.


***


“너 언제까지 이럴 건데.”


“......”


“너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고. 한수아가 네가 이렇게 살기를 바랐을 거 같아?”


“...그 입 닥쳐.”


“한수아가 다시 깨어났을 때 너 어쩌려고 그래. 네가 이렇게 살았다는 거 알면, 걔가 뭐 잘했다고 박수를 치겠냐? 너랑 헤어지겠지. 내가 널 고생시켰다면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제발 닥치라고!!”


와장창. 무언가가 부서졌다. 그리고 아까부터 실없이 웃고만 있던 연준의 눈가에서 맑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도, 나도 다 아는데. 그렇게 못하겠는 걸 어떡해… 수아가, 한수아가 나 때문에… 뭘 너 때문이냐. 걔가 스스로 강가로 나간걸. 그리고 걔 살아있잖아, 인마. 서툰 손길로 제 등을 토닥여주는 친구에, 옷깃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전해지는 온기에 연준은 꾸역꾸역 삼켜왔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엔진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


“한수아 환자요.”


“네. 병동 203호에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연준은 붉어진 눈가를 비볐다. 운 게 티가 나지 않았으면 했다. 수아는 저를 보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들릴 테니 목을 한참 가다듬던 연준은 203호 병실 앞에서 목을 수차례 가다듬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창문으로 살며시 쏟아지는 햇빛에 연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수아는 창가 쪽에 있었다. 연준이 수아에게 찾아가지 못했던 고 짧은 새에 시연의 머리칼은 꽤나 길어져 있었다. 연준은 수아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귀 뒤로 살며시 넘겨주었다. 왠지 데자뷰 같은 느낌. 수아가 그저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연준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안녕, 수아야. 오늘 날씨 좋지 않아?”


네가 날씨가 좋으면 찾아온다고 했잖아. 나는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거든. 연준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한치의 꾸밈없이 털어놓았다. 눈을 감고 제 심장이 뛰는 박자대로 시연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한참을 속에서 응어리진 말들을 털어놓았을까. 연준이 손목시계를 흘끔 쳐다봤다.


“아, 나 수영 다시 시작했거든. 그만뒀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아쉬워서. 우리 청춘을 수영에 가져다 바쳤잖아. 물 공포증은 약 먹으면서 치료하고 있으니까 걱정은 마. 넌 일어날 생각만 해. 아, 나 이제 가야겠다.”


연준이 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올게. 연준이 미련없이 뒤를 돌았을 때,


“수영의 정의가 너랑 나랑 비슷해서 다행이야.”


청춘을 가져다 바친, 재밌는데 죽을 것 같은. 그리운 목소리가 연준의 뒤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멈춘 눈물인데. 연준의 눈가가 다시금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연준은 숨을 가다듬고 찬찬히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봐. 내가 그랬잖아.”


날이 좋으면 찾아가겠다고. 이어지지 않은 뒷말이 연준의 귓가에는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응. 정말 그러네. 날이 좋을 때 잘 찾아왔어.”


***


연준은 숨을 짧게 내뱉었다. 물장구를 치는 다리가 뻐근하지만 그것마저도 기분 좋았다. 푸르게 보이는 물속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 공기방울들이 연준의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그는 공기방울과 함께 수면 위로 치솟아 올랐다. 숨을 차분히 고른 뒤, 연준은 다시금 물속으로 제 온몸을 집어던졌다. 부력 탓에 장기가 위로 들리는 울렁이는 느낌이 오늘은 왠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연준은 이를 악물고 한 바퀴를 빙글 돌아 수영장 벽을 발로 찼다. 그 추진력으로 연준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겠지. 리즈 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와 견줄만한 속도였다. 시연의 말이 맞았다. 넌 정말 날씨가 좋은날 나에게 찾아왔다. 모든것을 잃고 힘없이 살아가던 나에게 희망을 품고. 이제는 내가 찾아갈게.


그렇다 그 둘의 대명사는 수영. 수영 그자체였다. 그것으로 이어지고 또 살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