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28화. 의심


지난 밤, 

훈지씨 전화를 거절하다가 전원을 꺼버리고, 

정확하게 몇 시에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 나보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눈은 너무 부어서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눈 위에 얼음 팩을 하려고 주방으로 갔다.

지퍼팩에 얼음을 가득 넣어 소파에 가서 누웠다.





'아. 맞다...휴대폰...'





그 때서야 

지난 밤 훈지씨 전화를 거절했던 게 떠올랐다.





휴대폰을 집어 들다 멈칫했다.

혹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봐 두려웠다.





잠시 테이블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쳐다 보다가

드디어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50통이 넘게 와 있었다.



그리고, 20여 통의 메세지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거에요?]





[나 걱정돼서 미치겠단 말이에요. 

 제발 전화 좀 받아요.]





[제발 부탁이에요...]





[이번에도 전화 안 받으면 우리 정말 끝이에요.]





[전원은 왜 껐어요? 정말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온 메세지에서는 

그도 기사를 확인한 듯 했다.





[그 기사 때문에 어제 그랬던 거에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닌데... 

 겨우 그런 걸로 그렇게 나를 못 믿었단 거에요?]





메세지를 확인하는 사이,

다시 영상 통화가 울렸다.





나는 영상 통화를 받는 대신,

메세지를 보냈다.





[미안한데, 나 지금 눈이 너무 부어서...

 영통을 받을 수가 없어요.

 내가 전화할께요.]





메세지를 보내고 나서,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하...다행이다.."





"이제야 내 전화 받는 거에요?"

"정말 나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미안해요...나 훈지씨 의심한 거 아닌데...

 그냥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그리고..

 나 너무 무서웠단 말이에요...왜냐하면..."





목이 메어 끝내 말을 잇지 못 했다..





"지금 울어요? 하....정말 아무 일도 아니에요. 

 정말...

 그만 울어요..."





"......"





그의 목소리를 듣자 안도의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훈지씨, 곧 슛 들어갈께요.]



[아..네!! 알겠습니다. 5분만요. 바로 갈께요.]





"나 이제 촬영 들어가요. 

 옆에 있어주지 못 해서 미안해요."





"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촬영 끝내고 이따 저녁 때 전화할께요. 

 그만 울고, 쉬고 있어요. 

 아침 챙겨 먹구요!"





"내 말 듣고 있어요?"



대답 없는 나에게 그가 재차 확인했다.





"네..알겠어요.."





그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보낸 한 통의 메세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줬다면,

 그런 일로 혼자 울지 않았을텐데...]



[내가 더 믿음을 줬어야 했는데, 나야말로 미안해요.

 이런 일로 당신을 울게 해서...] 





마지막 메세지로 

나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가졌던 의심과 불안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그 때였다.

1층 현관문 벨이 울렸다.


   

월패드 화면을 보니 김대표였다.






'태형씨가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태형씨"



"일어났어? 

 아침에 전화해 보니 전원이 꺼져 있길래 

 무슨 일 있나 하고 출근하기 전에 들렸어.

 괜찮아?"





"어..괜찮아... 걱정 끼쳐서 미안해."





"잠깐 얼굴 좀 보고 가도 돼?"





"미안, 나 지금 눈이 많이 부어서... 

 보여 주기 좀 그런데..."





"알았어, 괜찮아.

 그럼, 너희집 현관문 앞에 쇼핑백 두고 갈 테니까 

 이따가 먹어. 

 어제 저녁도 못 먹었을 거 같은데.. 

 샌드위치랑 커피랑, 스프야."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줘도 되는데...

 고마워...잘 먹을께.

 빨리 출근해. 이따 전화할께."







대표까지 아침에 찾아오게 만들고,

내가 어제부터 너무 오버한 게 아닐까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훈지씨 전화 한 통화로, 

어젯밤부터 이어졌던 지옥 같은 시간이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모두에게 걱정을 끼쳤지만,

나는 모든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나서

대표가 사다 준 아침 식사를 먹었다.





하루 종일 부은 눈 때문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부은 눈 따위는 지금 안중에도 없었다.





오피스텔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출판사에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김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아침에는 고마웠어."





"기분 좀 괜찮아?"





"어. 괜찮아. 왜?"





"나 지금 너희 단지로 가고 있어. 

 퇴근하면서 잠깐 얼굴 좀 보려고 왔어.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







"어....그래..알았어.

 좀 이따 봐.."





10분 쯤 지났을까 대표의 차량이 들어왔고, 

나는 거울로 내 눈 상태를 확인했다.



확실히 아침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붓기는 여전 했다. 





몇 분 후에 그가 올라왔다.





"어서 와...아침에도 와 놓고..퇴근할 때도 들렸어?

 내가 어제 너무 오버했지?"





"어제, 오늘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

 아직도 눈이 많이 부었네..얼음팩 좀 했어?"





'어..아침에 잠깐 하다가 일 하느라 못 했지.

 많이 흉하지?"





"아니야..괜찮아..나름 귀엽네 뭐...ㅎ"





"놀리지 마~"





그 때, 휴대폰이 울렸다.

훈지씨의 영상 통화였다.





하루 종일 기다렸기에,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부은 눈은 생각지도 못 하고 받았다.





"훈지씨!!! 오늘 촬영 다 끝났어요?"





"와~~~드디어 내 영통 받아줬다..ㅎㅎ 

 아...눈이 아직도 많이 부었네..

 괜찮아요?"





"아직 좀 덜 떠지긴 하는데 괜찮아요."





"사실 나 있잖아요. 말해 줄게 있는데...

 잠깐만... 집에 누구 왔어요?"





"아..김대표가 와 있어요."





"누구라구요?"





"대표님이요..."







"아...진짜!!!!!"



털컥!!!!





"어..훈지씨?? 훈지씨!! 전화가 갑자기 꺼졌네...

 떨어 뜨렸나.."





떨어뜨려서 휴대폰이 망가진 건지 

계속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았다.







"훈지가 영통 건 거야?"






"어..근데 말하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린 거 같애.. 

 그 후로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아..

 에휴...

 오래 간만에 얼굴 보는 거라 너무 반가웠는데.."





"......"





"근데 이제 얼굴 봤으니까 빨리 집에 가서 쉬어.

 이제 이런 일로 집까지 안 와도 돼. 

 내가 너무 창피하잖아. 

 어제 네 앞에서 운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그래...알았어..

 갈께.. 

 다음 수업 때 보자.."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나에게 

왠지 서운한 거 같아 보였지만,

나중에라도 훈지씨가 싫어할 것 같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김대표가 가고 난 후, 

다음 영상 통화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얼음 찜질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벨 소리에 놀라서 깼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월패드 모니터에 훈지씨가 서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벨이 울렸다.





"어? 뭐지?"





천천히 다가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에 정말로 훈지씨가 서 있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숨을 헐떡이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쳐다 봤다.





"진짜 훈지씨에요? 

 내가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그 때, 그가 현관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더니

와락 나를 안았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숨은 평소보다 거칠었고, 

등을 감싼 팔에도 힘이 들어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까봐 꼭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정말 나에요...너무 보고 싶어서 온 거에요."





떨리는 목소리까지 들리는 걸 보니 

정말인 것도 같았다.





천천히 팔을 올려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이번엔 그가 더 세게 안았다.





"정말...훈지씨였네.. 꿈이 아니라..."




"휴대폰이 왜 고장난 거에요?" <29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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