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후에

01 . 연애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노아의 팬이 아니었다. 그의 여자친구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알아낸 사람들은 나도, 노아도 아니었다. 팬들이었다. 
 오후 12시30분.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한두 번이면 확인했을 텐데, 이상하게 오늘은 유난스러웠다. 진동이 멈추면 다시 울렸고, 잠깐 조용해졌다 싶으면 또 화면이 켜졌다. 
 나는 끝내 확인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메시지 열일곱 개. 부재중 전화 네 통.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문자. 
 [노아] 기사 봤어?
 그 짧은 문장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검색창을 열었다. 이름을 입력하기도 전에 검색어가 떠 있었다. 플레이브 노아 열애설 손가락이 멈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 닫히려는 문을 누군가 붙잡아줬다. 
 “안 타세요?” 
 “아, 네.” 
 나는 뒤늦게 내렸다. 복도 끝 창가에 기대서 기사를 열었다. 제목부터 선명했다. 
 [단독] 플레이브 노아, 비연예인 여성과 열애설… 10주년 콘서트 앞두고 관심 
 아래에는 사진 세 장이 붙어 있었다. 첫 번째는 카페 앞. 두 번째는 횡단보도. 세 번째는 비 오는 거리. 나는 세 번째 사진에서 멈췄다. 우산 아래 두 사람이 있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와, 그의 옆에 바짝 붙어 걷는 여자. 
 사진 속 노아는 카메라를 보지 않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팔꿈치를 잡아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사진에는 그 손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확대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이었다. 삼 년 전부터 우리가 만나던 장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날.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보고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던 나를 두고 노아가 한참 잔소리를 했던 날. 결국 자기 우산을 들고 나와서는 내가 젖을까 봐 거의 내 쪽으로만 기울였던 날. 
 사진 밑에는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수개월 전부터 만남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개월. 나는 그 단어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수개월이 아니라 삼 년이었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둘뿐이었다. 나와 노아. 댓글은 이미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진짜면 콘서트 직전에 왜 터뜨림? 
 상대방 일반인이라는데 신상 털릴까 걱정된다. 
 사진만 보면 그냥 친구 같은데. 
 아니 저건 누가 봐도 연애 아니냐.
 노아가 저렇게 누굴 보는 게 더 충격임.
 나는 화면을 껐다.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아. 나는 받지 않았다. 벨이 멈췄다. 잠시 후 다시 울렸다. 두 번째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봤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응.” 
 “……미안해.” 
 나는 눈을 감았다. “네가 왜 미안해.”
 “사진 찍힌 거.”
 “네 잘못 아니잖아.” 
 “알아.”
 “그럼 됐어.” 
 잠깐 조용해졌다.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연습실일 것이다. 
 “너 어디야?” 
 “회사.” 
 “사람 많아?” 
 “응.” 
 “혼자 있어?” 
 “왜?” 대답이 없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아야.” 
 “응. 말해” 
 “오늘 만나자.” 
 “안 돼.”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 그가 잠깐 숨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왜.”
 “지금 너 움직이면 더 찍힐 거야.”
 “상관없어.”
 “나는 상관있어.”
 이번에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이번 주 콘서트 있잖아.”
 “알아.” 
 “10주년이잖아.” 
 “알아.”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것도?” 
 “응.” 
 “그럼 우리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가 먼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잠깐만 떨어져 있자.” 
 이번에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통화가 끊겼나 싶어 화면을 확인하려는 순간. 
 “싫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조용했다.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노아야.”
 “싫다고.”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잖아.” 
 “알아.”
 “팬들도 있고 회사도 있고, 너는 지금—” 
 “다 알아.”
 “그럼 왜.” 
 한참 뒤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네가 없어지는 게 더 싫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말할 줄 몰랐다. 노아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대신 기억해뒀다가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걸 사다 줬고,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집에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눈치채면 한숨을 쉬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내게 말했다. 없어지는 게 싫다고.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나도 싫어.”
 겨우 그 말을 꺼냈다. 
 “그런데 무서워.”
 “뭐가.” 
 “이제 사람들이 나를 찾을까 봐.” 
 대답이 없었다. 
 “네가 아니라 나를.” 
 “…….” 
 “네 팬들이 나를 찾고, 내 이름이 나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아내려고 할까 봐.”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내가 막을게.” 
 “어떻게.”
 “방법 찾을게.”
 “노아.” 
 “응.”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목소리가 조금 단단해졌다.
 “나도 알아.”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서 더 싫어.” 
 “뭐가.”
 “네가 나 때문에 겁먹는 거.”
 그날 우리는 결국 만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노아는 연습실에 남았다. 그리고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회사의 공식 입장이 올라왔다.
 “아티스트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으로 확인이 어렵다.”
 애매한 문장이었다. 부정도 아니었다. 인정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한 문장을 가지고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나는 침대에 누워 화면을 내려다봤다. 
 노아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나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때 휴대폰이 한 번 울렸다. 문자였다. 
 [노아] 자?
 나는 한참 뒤에 답했다. 
 [나] 아니.
 몇 초 만에 답장이 왔다. 
 [노아] 다행이다. 
 [나] 왜? 
 한참 동안 말풍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문장. 
 [노아] 오늘 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생각나서. 
 [나] 무슨 말?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잠들기 직전, 다시 진동이 울렸다. 
 [노아] 우리 헤어지자는 말.
 잠시 후 하나가 더 왔다. 
 [노아] 그건 하지 마.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열애설이 터진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다는 걸.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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