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의 콤플렉스

1화. 징글징글한 김도훈

"드디어 끝났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지 벌써 일주일.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서울행 KTX에 오른 나는 창밖만 멍하니 바라봤다.

 

엄마는 나가기 직전까지도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밥 거르지 말고, 늦게 다니지 말고."

"네에."

"그리고 도훈이한테도 연락 좀 하고."

"...왜?"

"같은 학교잖아. 서로 의지하면 얼마나 좋아."

난 대답 대신 문을 닫고 나갔다.

엄마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내가 서울에 오면서 제일 기대한 게 뭔지.

김도훈 없는 인생.

그거 하나였다.

 

 

-

 

 

20년.

무려 스무 해를 붙어 살았다.

옆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학원까지.

친구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말했다.

"또 둘이냐?"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대학이라도 과가 달랐으니까.

캠퍼스도 넓고.

사람도 많고.

설마 또 엮일 일이 있겠어.

그렇게 믿었다.

 

 

-

 

 

입학식.

새내기들로 가득한 캠퍼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

학과 후드를 맞춰 입은 사람.

부모님 손을 붙잡고 다니는 사람.

모든 게 낯설고 시끄러웠다.

'좋다.'

아무도 나를 김도훈 옆에 세워두지 않았다.

누구도.

"둘 친해?"

라고 묻지 않았다.

이게 내가 원하던 대학생활이었다.

"야, 여주."

뒤에서 동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동아리 박람회 갈래?"

"동아리?"

"사진 동아리 인기라던데."

사실 별생각은 없었다.

친구 따라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이었다.

그게 실수였다.

 

 

-

 

 

학생회관 1층.

복도 양옆으로 동아리 부스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밴드.

농구.

봉사.

영화.

사진.

친구는 신나서 이것저것 둘러보기 시작했고, 나는 뒤에서 대충 따라다녔다.

"여기 괜찮은데?"

사진 동아리였다.

커다란 현수막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너도 사진동아리 들어가게?"

익숙한 목소리.

너무 익숙해서 순간 몸이 굳었다.

설마.

고개를 들었다.

"..."

"..."

검은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야."

내 입에서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너 왜 여기 있어?"

김도훈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동아리."

"...그걸 몰라서 물었냐?"

"그럼?"

"..."

"너도 가입하려고?"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니."

"근데 왜 서 있어."

"...친구 따라온 거거든."

"그럼 친구만 가입하면 되겠네."

진짜 한 대 치고 싶었다.

친구는 둘을 번갈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둘 아는 사이야?"

"몰라."

"아는데."

동시에 나온 대답.

잠깐 정적이 흘렀다가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둘 뭐야ㅋㅋ"

"둘이 사겨?"

"소꿉친구 같네."

나는 한숨부터 쉬었다.

"...맞아."

"20년."

도훈이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옆집."

"와."

주변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20년?"

"대박이다."

"그럼 서로 모르는 게 없겠네?"

나는 웃지도 못했다.

있겠냐.

저 인간 흑역사부터 버릇까지 다 아는데.

문제는.

반대도 똑같다는 거다.

"...난 갈게."

괜히 더 있기 싫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야."

도훈이 뒤에서 불렀다.

"학생증."

"...?"

도훈의 손을 내려다봤다.

학생증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

주워서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나를 불러 세운다.

나는 학생증을 집어 들고 툭 말했다.

"고마워."

"응."

"..."

"..."

괜히 어색했다.

짜증만 났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나왔다.

 

 

-

 

 

"근데."

동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도훈이랑 안 친해?"

"...안 친해."

"소꿉친구라며."

"그게 친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아니, 그냥 둘이 분위기가..."

동기는 잠깐 말을 고르더니 웃었다.

"싸우는 것도 되게 익숙해 보여."

익숙하지.

너무 익숙해서 문제지.

김도훈은 늘 저랬다.

사람 열받게 만드는 데는 천재.

혼자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그래서 더 짜증 났다.

항상.

늘.

변함없이.

김도훈이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캠퍼스 정문 앞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는 걸 못 보고 그대로 발을 내디디려던 순간.

누군가 내 후드 모자를 뒤에서 툭 잡아당겼다.

"야."

놀라 뒤를 돌아보니 도훈이었다.

"신호."

그제야 빨간불이 눈에 들어왔다.

"..."

"서울 처음이라고 벌써 길 잃냐."

"누가 길 잃었는데."

"방금 차랑 친해질 뻔했잖아."

"오지랖."

"응."

그 한마디를 끝으로 도훈은 먼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나는 괜히 입술만 깨물었다.

...저런 게 제일 싫다.

별것도 아닌 일처럼 사람을 챙기는 거.

덕분에 더 화를 낼 수도 없게 만드는 거.

그래서 더 싫었다.

정말.

김도훈은.

내 인생 최악의 소꿉친구였다.

그리고.

내 첫 번째 콤플렉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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