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옛날부터 아주 겁쟁이였다. 차라리 너를 만난 이후 난 더 용감해진 거였다. 그게 고작 이 정도였다.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않았다. 통성명도 하지 않았고, 친분도 쌓지 않았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도 무서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든, 그 무엇이든.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길 마련이니까.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유독 나에게는 그 사실이 두렵게 와닿았다.
그래서 네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난 너와의 시작보다 끝을 먼저 보았다.
그렇기에 나의 최선대로 너를 피한 것이고, 너는 너의 최선대로 나를 잡더라.
그리고 나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듯 너와의 끝도 맞이했다.
그 이별이 절대 두번은 아니길..
“그래서 뭐 어떻게 할건데? 이대로 계속 기다려? 지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너는 그대로 있는게 가능해?”
성우가 화가 올랐다.
내가 봤을 땐 그도 걱정에서 오는 화였다.
“그럼 넌 이대로 있어. 난 가야겠으니까.”
성우는 나보다 훨씬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대책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내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가자. 찾으러.”
***
다니엘, 그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걸어본 적 없는 길인데 왠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발걸음이 멋대로 나를 이끌었다.
어둡고 외졌다. 꼭 일부러 숨겨놓은 것처럼. 내 눈에 띈 건 어느 건물의 2층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계단을 올랐고, 지문인식으로 된 잠금장치로 잠겨있는 곳이었다.
잠금장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띠리릭-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 풍겨오는 탁한 공기가 낯설지 않았다.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와 테이블이 덩그라니 놓여있고, 케비넷 4개가 보였다.
‘K’’Y’J’”J2’
제이. 내 것이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답답했다. 익숙한데 기억은 나질 않았다. 케비넷을 잠구고 있는 자물쇠 하나. 물론 비밀번호는 몰랐다.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무작정 자물쇠를 잡았다.
툭-
그랬더니 자물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밀번호가 이미 맞춰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케비넷. 기대 반 긴장 반의 심정이었다. 케비넷을 열자 옷 한 벌과 각종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순 검은 색의 옷. 그 옷은 내가 처음 만난 피투성이의 다니엘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입던 옷이구나.’
그 밖에도 내가 신던 신발, 내가 쓰던 휴대폰, 가방, 지갑...
남의 물건을 보는 느낌이었지만 분명 내 것이었다. 그리고 열어 본 다른 사람들의 케비넷은 다들 비어있었다.
여긴 우리의 거점이었다.
기억났다. 거의 모든 게. 함께 장난을 치던 조원들의 모습, 나를 사랑해 주던 그. 지쳐 돌아와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 맛있는 음식을 사와 나눠먹던 모습. 지금은 텅 빈 이 공간에 그 모습들이 그려진다. 허공이 기억으로 채워지고, 그 기억이 그리웠다. 과연 나는 지금과 그 시절. 언제가 더 행복했을까. 한참 고민에 빠진 그 때, 누군가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렸고, 난 피해야 할지 판단하기도 전에 바로 마주쳤다.
“지아?”
윤하였다. 윤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네가 왜 여기...”
모두의 추억이 잠김 곳. 이곳에서 우리 모두가 또 다시 그 시절의 그 시간을 보낼 날이 올까.
“네가 그렇게 막으려던 그 기억들. 다 찾았어 윤하야.”
윤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너... 괜찮아?”
윤하가 내게로 와 나의 손을 잡았다.
“돌아오게 도와주지 그랬어. 안좋은 기억을 버리려고 함께 버려진 좋은 기억이 너무 많잖아...”
“미안해. 우리 멋대로 판단해서. 너를 위한 거였어...”
잘 알고 있다. 윤하는 항상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애였으니까.
“고민 중이야. 옛날과 지금, 어느 삶이 더 좋았는지.”
“고만 하지마. 지금 이대로 살자 우리. 지아야, 정리도 다 끝났고, 마무리도 거의 다 됐어. 평범하게 살, 단 한번뿐일 기회야.”
“평범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윤하야 난, 좀 다르더라도 행복한 게 좋은데..”
나의 말에 긴장하는 윤하가 보였다. 아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윤하는 지금 삶을 살아라고 변함없이 지킬 것이다.
“다니엘한테 나 여기있다고 연락 좀 해줘. 지금 쯤 날 찾고 있을거야.”
윤하가 전화를 하러 갔다. 한 번 더 둘러 본 우리의 거점.
‘저렇게 다 그대론데. 정리, 마무리는 무슨...’
“한지아!”
근처에 있었던 건지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온 다니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뒤따라 온 성우와 눈이 마주친다. 안심하던 두 사람이다.
“다 모였네,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