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7화 - 배신

“……그렇게 된 거야.”

 

 

우진의 이야기가 끝났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나뭇가지가 톡, 톡 창문을 긁었다. 커튼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책상 위의 스탠드만이 붉은 융단 위로 누런빛을 드리웠다.

 

나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다봤다. 종이 한가운데 찍힌 사망 처리라는 글씨가 유난히 붉었다.

 

 

아홉 살의 우진이 자꾸만 떠올랐다. 축축한 공장 바닥에 맨발로 서 있던 아이. 엄마가 호의로 양보한 밥을 허겁지겁 삼키고, 끝내 엄마를 살리기 위해 총구 앞에 뛰어든 아이. 엄마가 그 아이 대신 죽었다.

우진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원망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총을 쏜 것도, 엄마를 납치한 것도 우진이 아니었다. 그 역시 그곳에 붙잡혀 살아가던 아이였을 뿐이다. 원망할 사람조차 제대로 고를 수 없어 더 처절해지는 기분이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며 서류가 구겨졌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우진을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은 없었어?”

“없었어.”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우진도 피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저 차가운 얼굴로 내게 총을 겨누던 순간에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고 의심했던 행동들이 뒤늦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데 왜 의뢰를 받은 건데?”

“네 아버지를 죽인 놈들에게 닿으려고.”

 

 

창문을 긁던 소리가 뚝 멎었다. 바람이 멈춘 방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아빠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네 어머니를 납치했던 조직의 잔당들이야.”

 

 

아빠는 배신을 당한 거라고 했다. 그럴 날이 올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은 했었다. 위험한 세계였고, 아빠는 그 세계의 수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묵은 원한일 줄은 몰랐다.

우진은 엄마가 죽었던 날의 일을 이어서 설명했다. 아빠가 그 조직을 무너뜨렸지만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고. 살아남은 자들은 이름과 모습을 바꾼 채 흩어졌고, 복수할 기회를 기다리며 하나둘 아빠의 조직 안으로 숨어들었다. 무려 십오 년이었다. 아빠의 곁에서 일하고, 명령을 따르고, 신뢰를 얻었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곳까지 파고든 뒤 아빠를 배신했다.

 

 

“아빠가…… 총에 맞은 것도.”

“내부에서 길을 열어준 놈이 있었기 때문이야.”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아빠의 관이 떠올랐다. 마지막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아빠가 누구에게 죽었는지도. 아빠가 이 서재에서 우진과 함께 무슨 일을 해왔는지도 몰랐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방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과 가지런히 정돈된 책상, 침대 옆에 놓인 작은 소파까지. 내가 아는 아빠의 흔적 위로 내가 모르는 삶이 겹쳐졌다.

 

 

“그래서 청부살인 일을 한 거야?”

“그쪽부터 밟고 들어가야 꼬리를 잡을 수 있으니까.”

 

 

우진은 의뢰를 받아들이는 척하며 조금씩 조직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고 했다. 의뢰를 거절하면 연락은 그 자리에서 끊겼다.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만 다음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끝에 아빠를 죽인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 이름이 적힌 의뢰가 들어왔다. 곧 아빠가 죽을 테니, 그 딸도 처리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럼 회장이라는 사람이…….”

“네 아버지를 죽인 쪽과 연결되어 있어.”

 

 

우진은 그들이 아빠가 남긴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가 죽자마자 집을 뒤지고, 금고와 열쇠를 찾았다고. 내가 비밀번호를 안다고 믿는 동안에는 함부로 죽이지 못했지만,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니 이제는 살려둘 이유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제야 집과 별장에서 당한 습격이 같은 선 위에 놓였다. 우진의 입을 통해 하나씩 설명을 들을수록 오히려 서늘한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럼 아까 도청한 사람도 그쪽 사람이겠네.”

“그래.”

 

 

우진은 바닥에 떨어진 도청장치를 발끝으로 밀었다. 작고 검은 기계가 융단 위를 굴렀다.

 

 

“이 정도를 하루아침에 설치할 수는 없어. 별장 구조를 잘 알고, 오래전부터 드나들던 놈이 있다고 봐.”

“누군데?”

“외부인은 아닐 거야.”

 

 

우진의 시선이 닫힌 방문으로 향했다. 그 너머에는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네 가족 중에 그쪽과 연결된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고모와 고모부, 삼촌, 작은아빠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래층에서 아빠의 유산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설마, 우리 가족이라니. 말도 안 돼….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의심이 목구멍에 걸렸다. 손에 든 서류가 바스락거렸다.

 

그 순간, 깨지는 파열음과 함께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아랫층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고모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으로 달려갔다. 우진이 뒤에서 내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고모!”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어두운 복도 끝,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불빛이 계단 난간 사이로 흔들렸다. 급하게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발밑의 나무가 요란하게 울렸다.

 

거실은 엉망이었다. 테이블이 옆으로 넘어져 있었고 유리잔과 접시가 대리석 바닥 위에서 산산이 깨져 있었다. 아빠의 이름이 적힌 서류봉투도 밟힌 채 구겨져 있었다.

 

고모는 거실 한가운데 붙잡혀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고모의 목에 팔을 감고,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고모의 입술이 달달 떨렸다. 주변에는 처음 보는 남자들이 여러 명 서 있었다.

 

 

“여주야…….”

 

 

고모의 갈라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발이 굳었다. 뒤따라 내려온 우진이 내 앞을 막아섰다. 그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하자 고모를 붙잡은 남자가 총구를 더욱 세게 밀어붙였다.

 

 

“손 떼.”

 

 

우진의 움직임이 멈췄다. 작은 아빠, 삼촌, 조카. 바닥엔 내 가족들이 쓰러져 있었다. 의식을 잃은 건지 움직임이 없었다. 고모부는 보이지 않았다. 거실 안에 묘한 냄새가 감돌았다. 장례식장에서 맡았던 향 냄새도, 오래된 별장에 밴 나무 냄새도 아니었다. 코끝을 따갑게 찌르는 화학 약품 냄새였다.

 

뒤늦게 숨을 참았지만 이미 늦었다. 시야가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힘이 빠진 무릎이 꺾이려는 순간 우진이 내 몸을 붙잡았다. 우진도 냄새를 알아차린 듯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지만, 내 쪽으로 팔을 뻗은 탓에 대응이 늦었다.

 

남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우진이 가장 먼저 다가온 남자의 턱을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뒤로 넘어갔다. 곧장 다른 남자의 손목을 꺾어 총을 빼앗으려던 순간, 고모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우진의 시선을 뺏긴 그 찰나, 누군가 그의 뒤통수를 묵직한 둔기로 내리쳤다. 우진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나를 붙잡고 있던 팔에서 힘이 풀렸다. 이미 힘이 빠진 나도 덩달아 비틀거렸다. 이내 남자들이 달려들어 우진을 바닥으로 짓눌렀다. 우진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둔기가 한 번 더 떨어졌다. 바닥에 붉은 피가 튀었다.

 

 

“우진아…….”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우진을 쳐다보며 외쳤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달려가려 해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팔을 거칠게 붙잡았고, 곧 코와 입 위로 젖은 천이 덮였다. 지독한 냄새가 숨과 함께 밀려들어 왔다. 천장을 밝히던 샹들리에가 길게 늘어지더니 여러 개로 갈라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닥에 쓰러진 우진이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

 

 

 

*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손목의 통증이었다. 거친 밧줄이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자 나무 의자가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눈을 뜨려고 몇 번이나 힘을 줘야 했다. 시야를 덮고 있던 검은 얼룩이 천천히 걷혔다.

 

낯선 공간이었다. 콘크리트 벽에는 습기가 얼룩처럼 번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전등 하나가 불안하게 깜박였다. 창문은 없었다. 차가운 바닥에서는 눅눅한 먼지와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오래된 창고 같았다.

 

옆에는 고모가 의자에 묶인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고모부가 묶여 있었다. 입술이 터지고 안경이 한쪽으로 비뚤어진 모습이었다. 그 옆에도 내 가족들이 묶여있었다. 다들 맞은건지 조금 다친 흔적은 있었지만, 숨은 붙어있는 듯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리고 그 반대편에 우진이 있었다. 우진은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뒤통수에 묻은 피가 목덜미까지 말라붙어 있었다. 그런데 우진의 손과 발에는 밧줄이 없었다. 왜 우진만 안 묶여 있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도 전에 고모부가 몸부림을 쳤다.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약속이 다르잖아!”

 

 

잠겨 있던 철문 너머를 향해 고모부가 악을 썼다.

 

 

“내가 저 여자를 여기까지 데려왔잖아 배신자까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고모부는 묶인 손목을 비틀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나는 너희 편이라고!”

 

 

깜박이던 전등이 한차례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모부를 바라봤다.

네가 서재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외부인은 아닐 거야.'

'네 가족 중에 그쪽과 연결된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고모부가 우리 아빠를, 우리 가족을 배신했다.

 


 

느와르 넘 어렵네용..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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