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연우는 한참을 서 있었다.
마당 끝,
햇빛이 반쯤 걸린 자리.
아직도,
현실 같지 않았다.
“아씨, 준비하셔야 합니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입궐하셔야지요.”
입궐.
그 단어가
이상하게 무겁게 내려앉았다.
“…궁에요?”
“예, 중전마마께 문안 인사
올리러 가시는 날입니다.”
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들었던 말.
세종 34년.
그 숫자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홍위.
그 이름.
연우는 고개를 숙였다.
“…진짜인가…”
—
가마가 흔들렸다.
천이 드리워진 안쪽,
연우는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었다.
밖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다.
궁으로 가고 있다.
진짜로.
연우는 눈을 감았다.
영화 속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어린 얼굴.
조용한 눈.
그리고—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왕.
“…아니야…”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아직 왕도 아니다.
—
가마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아씨.”
연우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천을 걷었다.
궁이었다.
높은 담.
넓은 마당.
끝이 보이지 않는 기와.
연우의 발이
잠깐 멈췄다.
“…와…”
말이 작게 흘러나왔다.
그때,
“아씨, 이쪽입니다.”
궁녀가 앞서 걸었다.
연우는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걸음 하나하나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익숙한데,
처음 보는 곳.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
대전 앞.
연우는 걸음을 멈췄다.
안으로 들어가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지 않았다.
“잠시 대기하시겠습니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때였다.
—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게.
천천히.
연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
그 가운데,
한 사람.
소년이었다.
곱게 묶은 머리.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눈.
너무 조용했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연우의 숨이
멈췄다.
이상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미 본 것처럼.
소년이 걸음을 멈췄다.
연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
“…아…”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유를 몰랐다.
그냥—
확신했다.
소년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세자저하, 이쪽으로—”
그 말이,
모든 걸
끝내버렸다.
세자.
저하.
연우의 손이
천천히 굳었다.
머릿속에서
어제의 기억이
터지듯 떠올랐다.
세종 34년.
이홍위.
그리고—
단종.
연우의 시선이
다시,
소년에게 향했다.
이홍위.
아직은,
왕이 아닌 이름.
하지만—
곧,
왕이 될 사람.
그리고,
죽게 될 사람.
연우의 입술이
천천히 떨렸다.
“…진짜네…”
아주 작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소년은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그대로 지나갔다.
하지만,
한 번.
아주 잠깐.
뒤를 돌아봤다.
연우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이유 없이,
가슴이
아프게 내려앉았다.
—
연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이제 확실했다.
여긴 조선이고,
저 사람은—
단종 이홍위다.
연우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면,
이걸—
바꿀 수 있을까.
대답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연우의 시선이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했다.
“…지켜야겠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화에 계속 >>>>
